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민혜 Jul 16. 2024

여는 글

쓰기에 대해 쓴다.

매일같이 글을 쓰려고 노력하던 오월의 어느 날, 나는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메일의 내용은 여름에 시카고 대학교에서 주관하는 글쓰기 수업에 참여해 보겠냐는 제안이었다. 제목은 '설득력 있는 글쓰기' 정도였다. 나는 답장을 보냈다. "와, 흥미로운 수업이네요. 수업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보내 줄 수 있을까요?" 그리고 나는 메일을 보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중간에 답장도 왔었지만, 대충 읽고 흘려버렸다. 매일 글을 쓰는데 굳이 돈을 들여 수업까지 들어야 하나 싶었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학교에서 어느 날 나에게 합격 레터를 보냈다. "민혜! 축하해. 너의 이력서와 라이팅에 감명받았어. 넌 이 수업을 들을 수 있게 되었어." 어리둥절한 마음도 잠시, 학비를 확인했다. 시카고 대학교 학생은 800달러, 아닌 사람은 1,500달러. 나는 800달러, 얼추 백만 원을 내야 했다. 한 시간 반씩 주 2회 8주 수업에 800달러면 한 주에 100달러씩이라, 시간당 사만 원을 쓰는 수업이었다. 비싸다. 어차피 안 들을 거니까 나는 그냥 합격 레터를 내버려 두었다. 돈을 내지 않으면 알아서 취소하겠지 싶어서 그냥 모르쇠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민혜, 디파짓 잘 받았어. 곧 만나길 기대해."라는 메일이 왔다. 엥? 싶어서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내 상태를 확인했다. 전체 800달러 중에서 선납해야 하는 금액이 500달러인데, 이미 납부했다고 나오는 것이다. 무슨 일인가 보니 남편이 내 등록금을 확인한다고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갔다가 돈을 내야 할 게 있어서 그냥 냈다는 것이다. 글쓰기 수업이 듣고 싶나 보군 하면서 냈다는 것이다. 이런, 세상 스위트한 사람. 이런 식이라면 보이스피싱 당하기 너무 쉬운 가족이 되어버린다고, 돈 쓰기 전에는 꼭 다시 물어보길 바란다고 선포한 뒤에 환불을 받으려 했다. 보증금 개념이라 환불이 안된단다. 남편도 전화해서 자기가 잘못 냈다고 설명했더니, 당사자에게 확인하고 전화 주겠다고 해놓고 확답 없이 시간만 흘렀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나머지 금액을 낼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그냥 글쓰기 수업을 들어보기로 했다. 영어로 글을 쓰는 수업이지만, 정책에 대한 글쓰기를 해볼 수 있고, 여유 있을 때 차분히 들어보기 좋은 수업이라고 정신승리를 했다. 글쓰기 수업에는 짧은 메모 보고를 쓴다거나, 에세이를 쓰는 것도 수업 과정에 포함되어 있다. 나름대로 재미있게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오리엔테이션을 들어보니 강사도 제법 마음에 든다. 강사가 썼다는 책들의 목록이 그의 프로필에 빼곡히 적힌걸 보니 왠지 신뢰가 가기도 했다. 뭐라도 남겨보겠다는 강한 의지로 나는 브런치북도 새로 하나 시작하기로 했다.



이번 브런치 북에서는 글쓰기에 대한 생각들과 어떻게 정책과 관련된 글을 잘 쓸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보려고 한다. 정책과 관련된 글쓰기라고 하면 크게 국가 조직 내에서 만드는 보고서가 있을 것이고, 연구자나 전문가가 쓰는 정책 제언이 있을 것이다. 또한, 필요하다면 내가 이해관계자의 입장에서 이러이러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요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더 가깝게는 동사무소에 민원을 넣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우리 집 앞에 눈이 많이 와서 치워달라는 것도, 눈이 많이 왔다는 문제점과 치워달라는 해결책을 잘 포함한 명료한 글쓰기이다. 눈이 많이 오는 시기에 제설 도구들을 쉽게 구할 수 있도록 편의를 봐달라거나, 제설을 하는 업체들과 연계해서 눈이 오면 빨리빨리 치울 수 있도록 하라는 것도 분명한 정책 제언이다. '기후변화 때문에 북극에 얼음이 녹으면 그곳으로 우리나라 화물선들이 다닐 수 있고, 그렇다면 우리 국적 회사들이 비용을 절감할 수 있으니 그 방법을 고민해봐 주세요.'라는 것도 아직 명확한 해결방법은 없지만 정책 제언이다. 이런 글들이 어떻게 쓰이고 어떻게 다루어지면 좋을지 고민해보고 싶다. 가능하다면 독자들이 아주 사소하게라도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벌써부터 어떤 내용들로 이 브런치 북을 채워나갈지 기대된다. 거창하게 정책학 글쓰기에 대해 쓰겠다고 브런치 북을 냅다 발간했지만, 무언가를 채워나갈 수 있을 것인가 고민된다. 하지만 나름대로 오 년 넘는 기간 동안 다양한 보고서를 써왔으니까 뭐든 쓸 수 있지 않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