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주제 ‘나는 누구인가?’
시카고 한인 학생들이 모여있는 카톡방이 있다. 대학원생들 위주의 카톡방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과학도부터 경영, 경제, 사회를 공부하는 사람들까지. 아마도 더 깊이 공부하고 싶은 마음 혹은 현실적인 이점이 그들을 이곳으로 이끌었을 것이다.
나는 왠지 그 가장자리를 갈지자로 이리저리 휘청이고 있다. 수업 끝나고 시험 끝나고 펍에 가는 것도 체력이 후달리고, 시험 공부한다고 늦게까지 까불었다가 된통 아프기도하는 나는 만학도..
카톡방에 글쓰기 모임을 같이 할 사람들을 구한다는 알림이 왔다. 글을 올린 친구는 한번 본 친구였다. 학기 시작 전 같은 단과대학에 속하는 한인들끼리 우리 집에 모여서 바베큐를 먹었었는데 그때 본 사람이었다.
사실 글쓰기에 동력이 많이 떨어진 요즘이었다. 수업을 듣고 시험을 치고 사람들을 만나는 과정이 꽤나 힘들었다. 하루에 두시간 정도 걸리는 통학도 문제였다. 집에 돌아오면 나는 마른 헹주마냥 퀭했다. 창작의 샘물은 말랐고 글을 쓸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흔쾌히 글쓰기 모임에 참여했다. 어떻게든 쓰기 위해서였다. 글쓰기 모임 이름은 ‘Verba saltant, scripta manent.‘ 말은 춤추고 글은 남는다는 뜻이다. 아무렴 내가 아이디어를 준 건 아니고 우리 글쓰기 모임 방장님이 정한 것 같다. 멋진 뜻!
“우리의 첫번째 글감은 무엇이 좋을까요?“ 처음 대면 모임에서는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글을 쓸지, 어떤 주제로 쓸지 고민했다. 방장님은 노트북을 들고와서 회의록(?)을 남겼다. 글쓰기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은 다들 성격이 좋아보였다. 말쑥한 학자같기도 하고 고민하는 청춘 같기도 했다.
아무튼 우리는 한 달에 한번 다양한 주제로 글을 써보기로 했다. 첫번째 주제는 자기소개였다. 어떻게 나를 소개하면 좋을까? 고민했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서 글로 설명하려 하니 적잖이 당황스럽다. 첫 번째 글쓰기 주제를 정하던 그날의 테이블에서는 나름 괜찮은 글을 쓸 수 있겠다 싶었는데 말이다. 누군가 내게 “너는 어떤 사람이니?”라던가 “너에 대해서 설명해 봐!”라고 묻는 상황들이 더러 있었다. 학교 진학을 위한 글쓰기나 직장을 갖기 위한 면접에서 나는 나에 대해서 설명해야 했다.
나는 오래전 책이 잔뜩 쌓여있던 한 교수의 방에서 나에 대해 설명했다. 대학교 진학을 위한 면접이었다. 당시 유행했던 입학 사정관제도에는 제법 다양한 입시 유형이 있었는데 나는 이틀 동안 대학교에 가서 수업을 듣고 교수와의 면담을 빙자한 면접을 봤었다. 나이 든 교수는 여러 질문을 했고 나는 준비된 이야기들을 했다. 하지만 너는 어떤 사람이니?라는 질문에 나는 왠지 준비했던 자기소개 대신에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말을 했었다.
내가 내놓은 답변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왠지 영 별로다. 부모님의 귀여운 딸이고, 동생의 든든한 누나이며, 친구들의 친구.. 어쩌고 저쩌고.. 내가 면접관이었어도 왠지 고개를 갸우뚱할 만한 답변이다. “좀 더 주도적인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다.”는 코멘트를 끝으로 면접이 끝났다.
그로부터 얼추 십오 년이 지났다. 나는 몇 번의 면접과 시험, 잘게 쪼개져 날아오는 과제, 선배들이 물어보는 너는 왜 이 과를 선택했니라던가 상사들이 묻는 너는 왜 이 직업을 선택했니 따위의 질문들을 수도 없이 겪었다. 이젠 나를 소개하는 질문에 “그냥 편하게 살고 싶어요,” “노력은 적지만 성취는 컸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살고 있어요.”하는 진심을 말해서는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다는 것도 꽤 오래전에 깨달아버렸다. 사회 초년생 때를 마지노선으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묻는 질문을 받는 일이 흔하지 않은데... 자기소개를 하라고하니 왠지 황송하다.
생뚱맞을 수 있지만 나는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궁금하지 않다. 닭을 키울 수 있다면 조금 수고롭더라도 기꺼이 닭장을 설치하고 밥을 먹이고 아프면 약을 먹일 테지만. 역시 나는 딱히 철학적 질문에는 관심이 없다. 또, 닭이 소중히 낳은 달걀을 훔쳐 다양한 요리를 해보고 마음에 드는 요리가 나오면 친구들을 초대해서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싶긴하다. 그 자리에서 누군가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토론하고 싶어 한다면 친구의 의견을 들어줄 것이다. 닭이 먼저라고 하는 친구에게 달걀이 먼저라고 주장하는 다른 친구가 짜증을 내기 시작할 때 즈음 나는 다른 와인을 꺼내와서 대강 이야기를 정리하고 최근에 친구가 했다는 와이너리 투어에 대해서 묻고 싶다. 얼큰히 취하고 내일이 주말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너무 당연하게 다음번에도 만날 것을 기약하면서 그들을 배웅하고 싶다.
이야기에서 처럼 나는 자리를 준비하고 같이 모일 사람들을 모객하고 어떤 이야기들에 그들이 관심을 가질지 생각하는 역할이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행복한 서포터 역할이 잘 맞는 것 같다. 아무렴 직업도 성격을 따라갔다. 닭을 키우고 아프면 치료해 주는 게 좋아 보여서 수의사가 되었다. 병원에서 실습을 하면서 적성에도 잘 맞다고 생각했다. 동물들도 좋아했고 손재주도 좋았으니 말이다. 한 가지 너무나도 아쉬웠던 것은 작은 병원에서 한정된 사람들과 계속 부대끼는 것이었다. 왠지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더 다양한 것들을 보고 싶었다.
그 무렵 나는 때로 뉴스를 볼 때나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내가 너무 세상물정을 모르는 것 같았다. 우물 안에 갇힌 개구리처럼 말이다. 그게 참 답답하게 느껴지던 차에 직업 설명회에서 내 전공과는 다르지만 흥미로운 직업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그 이름하야 공무원. 전혀 흥미롭게 느껴지지 않는 직장이지만 우연히 듣게된 공무원들의 직업 설명회는 내 흥미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사무관으로 일을 시작하면 일 년 동안 몇 백억의 예산을 어떻게 쓸지 계획하고 집행하고 점검하는 일들을 할 수 있고, 새로운 정책들도 계획하고 법령도 바꿀 수 있다는 설명은 내게 다른 세상 이야기 같았다.
지금은 직장 동료이자 상급자인 두 사람의 설명회 덕분에 공부를 시작해서 적성에 잘 맞는 직장을 구했다. 직장에서는 제법 다양한 사업의 예산도 담당하고 법도 여러 개 담당해 보고 국제업무도 해봤다. 때로 일이 버거울 때도 있어서 가끔 나는 그 둘에게 왜 설명회 같은 걸 와서 내가 이 고생을 하는지에 대해 불평했지만, 전반적으로는 만족하면서 일했다.
나는 일도 잘하고 인간관계도 좋은 사무관으로 지내려고 부단히 도 노력했다. 실용적이고 손에 잡히는 것 좋아하는 상사에게는 그가 원하는 당잔 해 낼 수 있는 기획을 가져다주고, 일 벌이는 걸 좋아하는 상사에게는 감당이 되겠냐 고개를 갸웃했다만 5년간 1조짜리 예산안을 써다 줬다. 술 좋아하는 사람들과는 술 마시고, 노래방 좋아하는 사람들과는 노래방에 갔다. 부어라 마셔라를 즐기는 편은 아니라서 술고래들과 함께하는 자리에는 핑계를 대고 두어 시간 늦게 합류했었다. 때로 만취한 직장인들에게 컨디션 사다 주고 집에 데려다주는 날들도 많았던 것 같다.
유학 생활을 하면서 모든 것으로부터 멀어져 있으니 그간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어쩌면 부질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돌이켜보면 왜 저렇게까지 했나 싶지만 나름대로 한국 사회에서 적응하기 위한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아마 대학원 생활 끝나고 한국에 돌아가면 또 승진해야 되니까 일과 사회생활을 또 열심히 하겠지만 잠깐의 유학생활 동안 즐길 수 있는 것들을 많이 즐기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다. 또 여러 사람들의 멋진 모습들을 배우기도 하고 많이 놀고 싶다. 에너지가 많지 않지만 가능한 많이 놀고 싶다.. 진짜로..
짧은 겨울 방학이 왔다. 위의 자기소개는 학기 초에 썼었는데 벌써 한 학기가 지나가버렸다. 미국에서의 나는 조금 여유있게 지내는 편이지만, 학교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 이렇게 살아도 되나?’하는 의문도 든다. 여기서 석사학위를 하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직장을 구할테고 직장 구하려고 회사마다 이력서를 넣고 하는 과정을 지켜보면 내가 너무 속 편한 것은 아닌즤. 고민하게 된다.
사람의 앞 일은 모를 일인데 자기소개와 같이 직업에
대한 자아가 너무 비대한 것은 아닌지도 걱정이다. 아무튼 지금 드는 잡념들에 소중한 시간을 망치지말고, 즐겁게 지내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