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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는 과학일까?

위대한 설계 스티븐호킹을 읽고 생각하다. 2장 법칙의 지배

by 서민혜



이 글은 위대한 설계 스티븐호킹을 읽고 한 챕터마다 마음에 드는 문장들을 뽑은 뒤 저의 의견을 덧붙여서 씁니다. 과학과 철학에 대해서 사유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책에서 인용한 글은 파란색으로 표시합니다. 아울러 제가 강조하고 싶은 저의 개인적인 의견은 분홍색으로 표시하겠습니다.






객관적인 실재가 존재한다고 믿을 근거가 정말로 있을까?



- 위대한 설계 스티븐 호킹,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2010, 초판 1쇄 44p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꿈을 꿀 때면 그 세상에서 우리는 우리의 존재를 잊는다. 꿈에서 깨면 그 생생한 존재를 다시 잊듯이.




어떤 법칙들이 만물을 결정한다는 믿음이 과학사에서 중요한 한 획을 그었다. 그 질서들은 실험을 통해서, 관찰과 사고를 통해서 언젠가 인류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데카르트는 또한 오늘날 우리가 '초기조건'이라고 부르는 것의 중요성을 이해했다. 자연법칙들은 시간이 흐르면 시스템이 어떻게 진화할지를 주어진 초기조건 아래에서 결정한다. 따라서 초기조건이 정해져 있지 않은 경우 시스템의 진화는 특정될 수 없다. 예컨대 비둘기가 당신의 머리 위에 배설한다면, 배설물의 낙하궤도는 뉴턴의 법칙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나 시간 0에서 비둘기가 전깃줄에서 앉아있었느냐, 아니면 시속 30km로 날아가고 있었느냐에 따라서 최종 결과는 전혀 달라질 것이다.




물리학의 법칙을 적용하려면, 시스템의 초기 상태를 알아야 한다. 도는 적어도 어떤 정해진 시간에 시스템의 상태를 알아야 한다.




데카르트는 신이 유일하게 가능한 법칙을 선택해서 우리는 그것을 경험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는 자연법칙들이 변경 불가능한 까닭은 그것들이 신의 고유한 본성을 반영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신의 권위를 옹호하였다.



- 위대한 설계 스티븐 호킹,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2010, 초판 1쇄 44p





책에서는 초기 조건인 비둘기의 이동 여부에 따라 내가 머리에 똥을 맞을 것인지 아닌지라는 멋진 예시를 보여준다. 우주의 초기조건이라는 이보다는 더욱 복잡하지 않을까 싶다가도 비둘기가 나는 것 그리고 그것의 배설강이 꽉 차서 발사 준비인 것, 하필 내가 그 아래에 있는 것이 과연 우주 발생의 아주 초기 단계보다 단순할까? 하는 의문이 든다.



초기 단계가 그렇게 중요하기 때문에 물리학에서는 계속 공기가 없다고 생각하고 탑에서 깃털과 볼링공을 던지다 보다. 법칙이 잘 들어맞고 명료하게 이해하기 위한 초기조건의 세팅이다.




삶에서 초기조건이라 부를 만한 것은 무엇일까?




과학 서적 리뷰에 사주를 얘기해도 될지 모르겠다만, 이에 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 나름대로 사주는 과학이다라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 그리고 포켓몬스터 세대에 살면서 피카추의 눈물에 공감하는 나는 물, 불, 땅 뭐 그런 속성들에 대해서 청소년 시절부터 많은 임상적 경험(포켓몬 카드배틀)을 통해서 익숙해져 왔다. 그래서 잘 몰라도 재미있다고 느끼는 걸까? 명리학에 대해 공부해 본 적은 없어서 깊은 이야기는 하기 어렵다. 다만, 사주와 관련한 소소한 일화와 나의 해석을 소개하고 싶다. 지금부터 서술하는 이야기들은 사주 좋아하는 지인들이 해준 얘기를 나름대로 종합해서 쓰는 내용이라 이 내용에 빠삭하신 분들이 보기에는 좀 이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내 사주 내가 해석하는 건 내 마음이다.




사주에서 초기조건의 세팅은 태어날 때 이미 끝난다. 60 갑자 중에 하나를 정해서 '나'라는 축으로 삼는다. 그건 내 기본적인 성질을 의미한다. 수정일자나 초음파를 처음 본 날짜가 아니라 태어난 날짜가 기준인 것은 아이의 우주가 빛을 본 날이라 그럴까? 사주에서 나라는 축 주변의 다른 색깔들은 내 성질을 더 강하게 할 것인지, 기운을 좀 죽일 것인지 결정하고 조화로울 것인지 아니면 어느 쪽으로 치우친 사람이 될 것인지를 알려준다.




나는 최근까지도 내 사주에 대해서 잘 몰랐다. 친구들과 떠난 강릉여행에서 사주를 공부하던 동기 하나가 요즘 예시들을 모으고 있다며 생년월일시를 알려주면 사주를 봐주겠다고 했다. 오 신기하다며 나는 생년월일시를 알려주었다. 옆에 있던 다른 친구도 동참했다. 사주를 봐주겠다는 지인은 자세히 보더니 오 병신일주구나!라고 말했다. 묘하게 기분이 상했다. 그리고는 병신 일주에 관해 자세히 설명해 놓은 블로그 글을 보내주었다. 읽어보니 그래도 나름 나랑 비슷한가? 하는 기분이 들었다. 좀 있다 그는 옆에 있는 다른 친구에게는 식신이 있다고 했다. 흠..




아무튼 사주는 내게 햇살이라고 했지만 내 햇살 주변에는 물을 의미하는 글자들이 과하단다. 온통 물로 둘러싸여서 꺼지기가 쉬워 스스로를 아껴가면서 일해야 한다고 한다. 아니 근데 태양에 물을 부으면 바다를 들이부어도 미스트가 될 텐데.. 뭔가 이상했다. (이과는 동의하지 못했다.) 나는 직업도 물고기 돌보미로 정했는데 말이다. 수영도 좋아하고 뱃멀미도 없는데.. 핫요가를 시작해야 하나.




하지만 사주가 내게 말하는 것이 그렇고, 내가 저런 초기조건을 타고났기 때문에 이러이러한 방식으로만 살아야 하는가? 또 사주처럼 딱 맞게 살아왔어라고 미래와 과거를 해석할 수 있을까? 그 가능성이 한 가지밖에 없을까?




나는 우주를 상상해보고 싶다. 어떤 우주의 초기조건이 내 사주와 같은 성질을 지닌다면 철과 불이 있는 어떤 행성이 있었으나 주변에 물이 잔뜩 부어져서 끝나는 엔딩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 그건 실패한 우주로 남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진짜 실패할까? 어떤 철을 쓰는지 불은 또 어떤 것들을 태워서 나는 불인 지, 물은 진짜 H2O인지 혹시 에탄올은 아닌지. 명리학 연구가가 우주의 비밀을 지구의 관점으로 잘못 해석해서 유동성을 가진 액체를 지구에 가장 흔한 물로 해석한 것은 아닌지. 너무 궁금하다.




반면에 땅과 철, 나무가 있고 물과 불이 있는 곳에는 문명도 시작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조화되어도 실패한 우주로 남을 수 있고, 망할 것이 자명한 우주도 어느 순간 크게 터져서 상상할 수 없는 크기로 확장되어 갈 수도 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는 나는 누가 내 사주 봐주겠다고 하면 굳이 보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저도 좀 알려주면 안 되나요? 묻고 싶은 때가 가끔 있긴 하다. 그 사람이 세상을 보는 관점이 따뜻하고 철학적인 깊이가 있는 사람이라면 좀 물어보고 싶기도 하다.




다음은 2장에서 인상 깊었던 데카르트의 두 번째 주장이다.




인간의 정신은 물리 세계와 다른 어떤 것이며 그 세계의 법칙을 따르지 않는다.



- 위대한 설계 스티븐 호킹,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2010, 초판 1쇄 39p





우리가 자유의지를 갖는지 아닌지, 또 그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도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나는 데카르트의 생각이 좋다. 물리적인 어떤 것과 다르게 우리의 정신은 몸에 속해 있지만 그보다 큰 것들을 규정할 수 있는 도구이며, 이 우주가 존재 가능하든 아니든 간에 그건 상관없다. (는 벌꿀 오소리와 같은 쿨함)




자유의지와 생각이 샘 솟아나는 어떤 곳으로부터, 갈 수 있는 최대한 멀리, 유추할 수 있는 가장 먼 과거부터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먼 미래를 오가는 정신은 우리가 늘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사유하고 탐구할 수 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