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설계 스티븐호킹을 읽고 생각하다. - 3장 실재란 무엇인가?
이 글은 위대한 설계 스티븐호킹을 읽고 한 챕터마다 마음에 드는 문장들을 뽑은 뒤 저의 의견을 덧붙여서 씁니다. 과학과 철학에 대해서 사유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책에서 인용한 글은 파란색으로 표시합니다. 아울러 제가 강조하고 싶은 저의 개인적인 의견은 분홍색으로 표시하겠습니다.
* 이번챕터에서는 특별히 책에서 인용한 부분이 없습니다.
아무도 없는 스터디룸에서 그제 보았던 책에 대해서 리뷰하고 있다. 원래 이렇게까지 공들여 독후감을 쓰는 타입은 아닌데.. 가끔 어떤 콘텐츠는 가슴에 날아와 박혀서 그 열감이 오래 지속된다. 내게는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와 만들어진 신이 그랬고, 이번 책 위대한 설계가 그렇다. 그리고 칼 세이건의 에덴의 용, 소설으로는 눈먼 자들의 도시, 이상의 소설들, 드라마 스위트홈 시즌1, 곡성이 그랬다. 내가 어떤 좋은 작품들을 접할 준비가 되었을 때 만난 훌륭한 작품이었다.
'위대한 설계 스티븐 호킹'의 3장에서는 실재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고민한다. 실재한다는 것은 어떤 믿음일까 사실일까?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쉽게 설명하자면 어떤 독이 들어있는 상자에 고양이를 넣어놓는다. 상자에는 독이 있어서 고양이가 독에 의해 죽음을 맞을 확률이 50%이다. 상자를 밖에서 지켜보는 우리는 고양이가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렇다면 그 고양이는 살아있는가 죽어있는가?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은 얘기로 보인다. 스티븐 호킹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하는데 '슈뢰딩거 고양이 얘기를 들으면, 내 총을 쥔다.(When I hear of Schrödinger's cat, I reach for my gun.)' 그는 이미 슈뢰딩거의 고양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백번 이상 받아서 답답하셨던 게 아닐까?
슈뢰딩거는 고양이는 살아있는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상태라고 말하는데, 우리는 상자를 열어 고양이가 살아있는지 보기 전에는 어떤 상태인지 알 수가 없다. 처음 슈뢰딩거는 양자중첩상태의 여러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을 비꼬기 위해서 고양이 사고 실험을 했지만 또 읽다 보면 야 맞는 말이기도 하다 싶기도 하고.
조금 심심하다면 그냥 아무거나 맘대로 하나 정해서 슈뢰딩거의 고양이와 비슷한 이론을 만들어보자! 물리학자들은 머리를 짚을 수도 있겠다..
사고실험 1 '서민혜의 여권' : 존재의 위기
지금 나는 한 가지 커다란 위기에 봉착했다. 여권이 내 서랍에 실재할 것으로 믿었지만 그곳에 없다는 사실이다. 나는 철썩 같이 당연하게 그것이 사실이라 믿어왔지만 정작 여권을 찾을 때 없으니 황망하기까지 하더라. 마지막으로 여권을 썼던 건 아파트 렌트 오피스에서 신분을 증명할 때였다. 이후에 나는 집으로 들어왔고 서랍에 분명 잘 넣어 둔 것 같은데 여권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같이 들고 다니던 다른 서류들은 있는데.. (나는 우선 신분증으로 사용하는 여권과 비자가 있어야 미국에 합법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여권이 집의 어딘가에 실재한다고 믿는다. 믿음의 이유는 우리 집에 새로 입주한 장난꾸러기 아기고양이 나르의 호기심 어린 발차기에 여권이 어디 구석에 처박혔을 가능성과 늘 무언가를 다른 자리에 놓고 깜빡깜빡하는 내 무신경함, 그리고 아니라고는 하지만 가끔 나 대신 청소를 해주거나 여권 번호 입력이 필요한 일이 있어서 여권을 가져갔을 수도 있는 남편 때문이다. 이런 가능성에 근거하여 나는 여권이 여전히 집에 실재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아닐 수도 있다.
또 다른 가능성은 내가 보는 세상이 실재하지 않는다면 또는 왜곡되어 있다면 내가 여권을 눈으로 보았을지언정 그것을 믿을 수 있을까? 열심히 연재하고 있는 내 소설 거울상에는 멋진 세계가 나오는데 이는 실재하지 않는 홀로그램 세계이다. 동시에 그 인물들은 이 세계가 너무 정교해서 그냥 거기에서 잘 산다. 그 세계에는 창조자 A라는 엔지니어가 있어서 시스템의 오류를 고쳐준다. 만약 내가 그 세계에 산다고 가정했을 때, 어느 날 A 씨가 거울상 내의 세계에 존재해서는 안될 여권이 오류로 생겨난 것으로 보고 없앴을 가능성도 있다.
사고실험 2 '서민혜의 고양이' : 내 고양이는 컵이 바닥에 떨어지면 깨진다는 것을 알면서 던진 것일까?
조금 다른 이야기이지만 내가 보는 세상은 우리 집 세 고양이가 보는 세상과도 조금 다르다. 색을 인지하는 방식이 다른데 내가 보는 예쁜 색깔이 그들의 눈에는 우중충하게 보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 애들과 나 사이에는 무시할 수 없는 종의 차이가 있어서 외모도 아주 다르고 그만큼 시신경이 모양도 다르다.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고양이가 그 시신경으로 받아들인 정보를 어떻게 처리하는지도 우리는 명확히 알지 못한다.
나는 나의 방식대로 창 밖을 날아다니는 새를 보고, 나뭇잎이 순을 낸 것을 본다. 그리고 그걸 보면 봄이 왔나 싶다. 내 고양이는 무엇을 느낄까? 그는 그의 방식대로 세상을 보고 어떤 법칙들을 배울 것이다. 새가 날아오를 때 이렇게 뛰면 잡을 수 있겠다 하는 법칙을 세울 수도, 아침에 집사가 일어나서 캔을 까준다는 건 그들에게는 사과는 아래로 떨어진다는 것과 같은 법칙일 수도 있다. 때로 내 고양이는 자신이 보는 것을 내가 보지 못하는 걸 보며 저 무지한 인간..이라고 생각할 지도.
내가 보는 세계와 고양이가 보는 세계는 동시에 존재한다. 나는 내가 본 어떤 시점을 중심으로 과거에 일어났을 여러 가지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다. 미래도 마찬가지로. 내 고양이도 여러 과거의 가능성을 알고 있고 미래도 알고 있겠지. 우리 생은 결국 단일하지 않고 같은 과거를 갖지 않는다.
최근 입양한 귀여운 치즈고양이는 나에게 약간 골칫거리이다. 노묘 둘은 아주 예의 발라서 9년을 같이 살면서 뭘 깨거나 부수거나 잠든 나를 때려 깨운 적이 없다. 나는 그게 고양이 평균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왔다. 작은 녀석은 어디 올려져 있는 것들을 발로 쳐서 떨어트리는데 혹시 이 녀석은 컵을 앞발로 만져도 바닥으로 추락하지 않는 미래를 의도했거나 아니면 오히려 우주의 기본 속성인 무질서함을 추구해서 물리를 사용한 것이 아닐까..
슈뢰딩거의 고양이의 생사여부는 사실 궁금하지 않다 내가 요즘 제일 궁금한 건 홍해인 생사여부
나는 요즘 드라마 눈물의 여왕을 참 재미있게 보고있다. 스토리도 재미있고 연출도 재밌다. 홍해인이 기억하는 엘리베이터 앞의 대화와 백현우가 기억하는 그것이 같지 않듯이 과거의 실재 또한 너무도 다양한 가능성이 있고, 작가님이 눈물의 여왕을 어떻게 마무리할지 또한 너무나도 다양한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그 세계 또한 양자중첩 상태인가? 결말을 보기 전까지는 그녀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도무지 알길이 없다.
+ ) 여권은 다행스럽게도 지난번 외출에 사용했던 가방에 들어있었다.
* 야심차고 소심하게 준비한 제법 재미난 비판적 사고 매거진에 매미님이 참여해주셨습니다! 다른 작가님들의 참여도 기다립니다. :)) 초반 글을 과학서적 후기로 잡아버리긴 했는데, 책, 영화 드라마 등 모든 이야기에 대해 고민하고 쓴 글들로 매거진을 채워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