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슬로 | 새로운 취향의 발견

내 취향이 구체화된 곳

by 구민기

"아 나 이거 좋아했었네." 여행지에서 이런 말을 외쳐본 적이 있는가? 오슬로에서 나는 이런 말을 연속으로 외치며 돌아다녔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곳 단 하루만 꼽으라면, 나는 단연코 오슬로를 꼽을 것이다. 급하게 하루만 머물렀던 것이 후회로 남을 정도로, 그리고 훗날 신혼여행을 올 수 있다면 오슬로로 오고 싶을 정도로 나에게는 행복한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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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슬로 공항에서 시내까지 약 30분, 중앙역에 도착하니 트롬쇠와는 다른 수많은 인파와 다양한 식당들이 노르웨이 수도임을 단번에 알 수 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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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에 짐만 맡겨두고 바로 나와 점심을 먹었다. 노르웨이는 역시 해산물이다라는 생각으로 식당에서 홍합스튜와 가리비, 그리고 가벼운 술 한 잔을 주문했다. 홍합은 신선했고, 가리비는 런던의 그것과 비슷하게 매우 부드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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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내 입맛에 맞았던 건 식전주(Apéritif). 식전주로 베르무트 비앙코(Vermouth Bianco)를 주문했는데, 간단한 핑거푸드로 송어 절임과 올리브가 같이 나왔다.


짭조름하면서 퀘퀘하지만, 민물고기 향이 퍼지면서 딱딱하면서도 부드럽게 질겅 씹히는 송어의 식감이 나에게는 너무 취향 저격이었다. 거기에 원래 좋아하는 올리브, 그리고 처음 먹어보는 베르무트에 어울려서 노르웨이에서의 첫 끼니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가격도 다소 환상적이었다... 저렇게 한 끼로 10만 원 정도를 써버렸다.) 화이트 베르무트에 반해서 한국으로 돌아올 때 면세점에서 한 병 샀다.


해산물에 여유롭고 원목 중심의 따뜻한 인테리어, 노르웨이에서의 첫 식사와 식당은 내 취향을 조금씩 자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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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난 뒤 도시를 둘러보러 돌아다녔다. 사실 노르웨이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과대평가가 되었다고 생각했었다. 예쁘고, 아기자기하고 그런 건 한국, 일본에도 충분히 있다고 생각했으나 이곳은 거기에 무언가 포근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노르웨이 사람들은 여유로웠다. 여유로움과 포근함, 날씨는 추웠지만 도시는 따뜻하다고 느껴져 매력적인 여행지라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돌아다니면서 눈에 띈 건 제설을 전혀 하지 않는다. 물론 도로는 제설을 하지만, 인도는 제설이 안되어있어 신발이 더러워진다. 게다가 오슬로를 돌아다니는 내내 눈이 왔는데 유모차를 열어놓고 갓난쟁이들도 눈을 맞고 있었다. 정말 눈의 나라인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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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슬로 성당. 확실히 영국이나 다른 유럽 국가의 성당에 비해 소박한 것이 노르웨이의 특성을 보여주는 듯했다. 노르웨이는 기본적으로 루터교로, 프로테스탄트이긴 하지만 한국의 교회나 다른 개신교에 비하면 가톨릭의 느낌을 많이 간직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그런지, 내부는 스테인드글라스와 샹들리에, 그리고 모자이크 벽화로 채워져 있어 노르웨이치고는 화려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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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슬로의 가장 중심이 되는 상권임에도, 신기한 건 백화점이나 명품가게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단지 내가 못 찾은 거일 확률이 더 높겠지만.) 유럽은 기본적으로 부를 드러내는 것을 꺼리는 편이라고 들었는데, 노르웨이는 특히 그 정도가 강한 것 같다. 그럼에도 아크테릭스나 캐나다 구스 같은, 실용적인 목적의 럭셔리 아이템을 착용하고 있는 사람들은 많았다. 아니면 초고소득인 이 나라에선 그렇게 럭셔리 아이템이 아니라 그냥 조금 퀄리티 좋은 무언가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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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잠시 녹일 겸 카페에 들어와 커피 한 잔에 시나몬롤을 먹었다. 트롬쇠, 오슬로를 돌아다니면서 발견한 또 다른 한 가지는 노르웨이에는 시나몬롤을 파는 곳이 정말 많다는 것이다. 어느 카페를 가든 문을 열면 시나몬 향이 퍼진다. 부드러운 카푸치노와 쫀득한 시나몬 번. 이들이 여유를 찾는 방식으로 나도 잠시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한국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거의 항상 즐기고 실제로 가장 좋아하는 커피도 아이스 아메리카노이지만, 여기에서도 그것을 마시면 여유를 즐길 수 없을 것 같았다. 맛과 별개로 나에게는 여유보다는 카페인을 충전하는 존재 정도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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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치도 못하게 오슬로에도 지하철이 있었다. 사실 한국으로 치면 광역시 정도라 지하철이 없을 줄 알았는데 (생각해 보면 광역시에도 지하철이 있는데, 왜 없을 거라 생각했던 건지 모르겠다...) 있었다. 독특한 점은, 반 층 만 내려가면 바로 승강장이 나오고, 비록 사진에는 계단이 있지만 항상 계단이 없이 경사로로만 출입이 가능하게 되어있었다. 거기다가 독일처럼 개찰구가 전혀 없어 고신뢰사회의 특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왜 노르웨이를 그토록 선진국이라고 하는지, 지하철 탑승 한 번으로 바로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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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궁이라기엔 소박한 노르웨이 왕궁. 독립 당시 공화국을 염두해서 검소하고 소박하게 지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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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약 20분 정도 걸어서 아커 브뤼헤(Aker Brygge) 쪽에 있는 국립박물관으로 왔다. 본격적으로 입장하기 전 카페를 들르게 되는데, 노르웨이식 건축과 인테리어의 전형을 보여준다. 널찍하고 큰 통유리창에 원목 가구가 중심이 된 인테리어. 보다 보면 나도 여기에 앉아 여유를 부리고 싶은 인테리어다. 트롬쇠, 오슬로, 그리고 다음날 간 베르겐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인테리어였다. 이런 스타일에 반해버려 공부를 하고 집도 꾸미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야말로, 새로운 취향을 발견하게 됐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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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작 뭉크의 절규. 사실 이 그림은 유화, 판화 등 여러 버전이 있고 그중 가장 유명한 버전은 국립 박물관에 있다고 하여 이곳으로 왔다. 뭉크미술관에도 절규가 있지만 다른 버전들이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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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를 대표하는 작가인 만큼 뭉크의 방이 아예 따로 있었다. 뭉크의 다른 작품들도 감상할 수 있었는데, 특유의 작풍으로 그려진 다양한 작품들을 오디오 가이드와 둘러보는 것이 꽤나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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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는 뭉크 외에도 모네, 고흐, 세잔과 같은 다른 나라의 위대한 미술가들의 작품도 있었다. 거기에 시대에 관계없이 고전, 현대미술이 모두 있어 기대 이상으로 흥미로웠다. 여기가 이렇게 좋을 줄 알았으면 시간을 좀 더 분배해 충분히 관람을 했을 것인데, 안타까웠을 따름이다.


특히 고전미술이 전시되어 있는 공간에서 현대미술 공간으로 넘어가는 이 긴 복도의 연출은 소름 돋을 정도로 좋았다. 시간의 터널에 들어온 듯한 괴상한 소리가 들리나, 터널을 나오는 순간 현대 작품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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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을 모두 둘러보고 나오니 어느새 밤. 아커 브뤼헤 지구를 잠시 둘러보고, 다음날 넛쉘투어동안 먹을 간식 장을 보고 숙소로 들어가 저녁을 먹었다.


오슬로를 한 바퀴 돌아보며 든 생각은, 노르웨이식 무언가 또는 북유럽식 무언가라고 하면 그냥 이쁘고 허세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와서 보니 실용적이면서도 절제된 아름다움을 살리는 디자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완전히 내 취향임을 발견했다.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하고, 그 속에서도 실용성을 살린, 따뜻하면서도 포근한 겨울스러움.


하루 동안 새로운 취향을 발견한 것 같아 내심 들떠있었지만, 이곳에 하루만 있는다는 것이 꽤나 아쉬웠다. 다음에는 오슬로만 꽤 길게 와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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