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운 노르웨이와 작별
아침 일찍 일어나 숙소에서 약 20분 걸어, 베르겐의 뒤 산 정도 포지션이 되는 듯한 플뢰옌(Fløyen) 전망대로 올라가는 케이블카를 탔다. 저 멀리 피오르드 사이로 들어오는 배들, 저 멀리 보이는 높은 설산, 아기자기한 도심 건물들. 10분 내내, 터널을 지나는 순간부터 탄성이 나오는 절경. 베르겐이 정말 영화 속 풍경이라는 이야기가 거짓말이 아님을 느끼게 된다.
노르웨이의 사실상 마지막 날. 베르겐에서의 하루는 노르웨이에서 찾은 여유로움과 포근한 겨울, 그리고 나만의 취향을 온전히 향유하는 시간이었다. 어쩌면 가장 나만의 취향대로 움직였던 곳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겨울 왕국의 모티프라는 말이 정말인 듯, 겨울 왕국처럼 아기자기하면서도 어딘가에서 엘사와 안나가 나타날 것처럼 생기 넘치는 도시 풍경.
전망대에 올라서서 경치를 감상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날씨가 춥지만 않았다면 앉아서 한 시간 넘게 있었을지도 몰랐을 것 같다. 이곳은 다름 아닌 도시 전체가 예술 작품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산에서 내려오자마자 몸을 녹이러 카페에 들러 커피 한 잔과 함께 당근 케이크. 하루를 바쁘게 움직이기 위해 오늘은 여유보다는 카페인을 위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그리고 아침 겸으로 케이크까지.
약 10분 정도 걸어 브뤼겐(Bryggen) 지역으로 내려왔는데, 어제 넛쉘투어에서 만난 중국인 친구를 우연히 만났다. 하루 일정을 잠시 공유하며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고, 일정이 맞지 않아 다음에 만날 것과 소셜미디어를 교환하고 인사했다. 나와는 또 다른 세계를 살고 있는 친구가 생긴 것 같아 내심 기뻤다.
베르겐의 상징과도 같은 브뤼겐인데, 무엇 때문인진 모르겠지만 큰 감흥은 못 느꼈다. 그냥 유명한 곳에 왔으니 사진 찍어야지 정도? 아침에 본 플뢰옌 전망대에서 이미 베르겐의 아름다움을 모두 본 느낌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관광지 그 자체보다는 여기서의 경험이 내가 더 인상적으로 남는다고 생각해서일지도 모르겠다. 브뤼겐 자체는 관광객 대상 상점가, 즉 한국으로 치면 인사동 같은 곳이라 아쉽게도 크게 기억에 남는 것은 없다. 그래서 베르겐은 풍경보다는, 그 풍경 속에서 생긴 경험이 더 기억에 남는 도시인 것 같다.
베르겐 어시장. 이곳도 관광객 대상이라고는 하지만, 해산물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지나칠 수 없었다. 어시장은 한국의 노량진 수산시장 같은 느낌은 아니고, 오히려 정육점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각 가게는 사실 식당과 함께 영업 중인 곳이다.
자리에 앉아 음식을 주문했다. 이번엔 훈제연어와 그라브락스, 홍합찜, 그리고 할리부트(Hallibut)라는 흰 살 생선회를 주문했다. 기대 이상이었다. 특히 연어들은 한국에서 유명한 연어의 본고장답게 향이 제대로 베여있어서 한국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맛이었다.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건 할리부트라는 생선이었다. 흰 살이라 광어나 우럭과 비슷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식감은 단단하면서도 쫄깃한, 그리고 감칠맛이 매우 강한 맛이었다. 나중에 유럽에 다시 올 기회가 있다면 꼭 다시 먹어야지.
어시장에는 어란도 파는데, caviar라는 이름에 속으면 안 된다. 노르웨이에서는 철갑상어가 아닌 다른 생선의 알도 캐비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다고 한다. 맛은 나쁘지 않다. 해산물 좋아하면 빵에 잼처럼 먹으면 짭조름하면서도 감칠맛이 맴돌아 입맛을 한층 돋운다.
노르웨이의 자연을 닮은 베르겐. 그리고 베르겐 중앙의 이 작은 호수와 광장은, 영화 겨울 왕국에서 본 듯한 그 풍경 그대로 있었다. 평화로우면서도 활기찬 분위기. 크리스마스 즈음 이곳에서 마켓이 열린다는데, 그때의 풍경은 추운 날씨에도 따뜻하면서도 활기 넘치는 풍경일테지.
베르겐은 Kode라는 이름으로 몇 개의 미술관이 있고, 고전부터 현대까지 각기 다른 컨셉으로 전시를 펼치고 있다. 다만 두 개를 돌아보았는데, 내 스타일은 아니라서 과감히 도망쳐 카페로 들어왔다.
Kode 내부에 있는 카페였는데, 휴식하기에는 충분히 따뜻했고, 풍경도 좋았다. 무엇보다 핫초코가 너무 맛있었다.
노르웨이에서의 마지막 날이라는 생각에 너무 아쉬워 정처 없이 시내를 다시 거닐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렇게 돌아다니며, 노르웨이를 기념할 기념품을 찾다, 모자를 생각했다. 그렇게 노르웨이 국기가 그려진 비니 구입.
그리고 노르웨이에서의 이 감정들을 잊지 않고자 기록할 공책을 샀다. 독일로 이동하는 비행기에서 감정을 꾹꾹 눌러 담아 썼다.
마지막으로 노르웨이의 특산품 순록 핫도그. 트롬쇠에서도 있었지만, 노르웨이에서는 순록고기를 먹는다. 크게 특별한 맛은 아니고, 생각보다 향신료로 잡내를 잘 가린 듯했지만, 뭔가 퍽퍽하고 쉽게 물려버리는 맛에 다시 굳이 먹을 것 같진 않다. 그저 노르웨이를 추억할 만한 하나가 생긴 것 같달까.
노르웨이에서의 마지막 밤이 저문다. 너무나도 아쉬웠지만, 그만큼 후회도 없었고 행복한 나라였다. 다음에는 좀 더 여유롭게 다시 올 수 있기를.
다음날 아침, 새벽이라 공항까지는 우버나 택시밖에 갈 수단이 없어 우버를 불렀다. 그랬더니 테슬라가 왔다. 사실 베르겐은, 아니 노르웨이는 거창한 경험이나 관광지보다는 이런 사소한 것들이 더 좋았었다.
베르겐의 상징. 안녕 베르겐, 안녕 노르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