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1] | 따로 또 같이

같이하는 여행도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다

by 구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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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도 뜨지 않은 새벽, 베르겐을 출발해 코펜하겐에서 환승해 베를린에 도착했다. 베를린은 8년 전 식과 군대 동기인 현과 함께 셋이서 전역 기념으로 여름에 왔었던 곳이다. 베를린을 이번 여행에 넣은 이유는 그때의 기억이 짧아 너무 아쉬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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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도 느꼈지만, 베를린은 다른 유럽 도시와는 다른 바이브가 있었다. 이쁘고 아기자기하진 않지만, 투박하면서도 본인만의 개성을 고고하게 뽐내는 모든 것들이 모인 곳. 현대적인 것 같은 외부 도시에 80년이 넘은 원목 인테리어의 지하철. 이스트사이드 갤러리, 서방식 상점들과 동구권의 아파트가 섞여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한꺼번에 모인 곳. 해외의 "보여지는" 다양성이 아닌 자신을 뽐내는 다양성. 그 감성이 베를린에 대한 기억이었다.


당시 23살이던 나는 지금 생각하면 아직 자아가 형성되지도 않았을 때라고 생각한다. 군대를 전역하며 이제 막 나에 대해 조금씩 알아간다고 생각했지만, 대학교, 대학원을 거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가며 나만의 색깔을 찾아갔다. 그리고 31살이 된 지금은 남들을 좇지 않고 온전히 나만을, 아직 찾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찾으려고 노력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베를린은 무언가 기억에 남는 곳이었다. 아직 남들의 눈치만을 보고 살던 23살, 유럽 같지 않은 유럽 도시에 투박한 베를린은 나에게 무언가 메시지를 던지는 듯했다. 그때는 아직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래서 지금 회수해 보고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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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에 도착해 빈과 지를 만나 짐을 풀었다. 친구들과의 여행의 제1장점이라 함은 같은 비용으로 더 좋은 숙소에서 묵을 수 있다는 것 아닐까.


유럽여행을 생각하고 있던 차에, 빈 역시 기나긴 학업을 마치고 리프레시 여행을 고려하고 있었다. 우연히 일정이 겹친 것은 아니지만, 비슷한 시기를 생각하고 있었기에 베를린 일정을 일부러 겹치게 해서 이곳에서 만났다. 함께 해외여행은 이곳저곳 많이 다녔지만 유럽여행은 또 처음이라 한편으로 빈과의 베를린도 매우 기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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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츠다머 플라츠(Potsdamerplatz)를 지나 관광지로 가는 길, 유대인 학살 기념비를 만났다. 겨울의 베를린은 정말 추웠다. 공기도 차고, 바람도 정말 많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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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의 상징, 브란덴부르크 문. 승리의 여신은 우리가 베를린에 온 것을 반겨주지만, 두껍게 입은 옷을 에고 들어오는 추위는 그렇지 않다. 예쁘고 친절하진 않았지만, 예상했던 그 투박한 느낌 그대로였다. 그래서 오히려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다급하게 카페로 들어가 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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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나 뻥 뚫려있는 운터 덴 린덴(Unter den Linden) 거리는 바람을 정면으로 맞아 너무 추웠다. 카페에 앉아 잠시 휴식하며 여행 중에 있었던 일들을 풀었다. 사실 나는 이번 여행이 그야말로 정말 순조로웠지만, 빈과 지는 파리에서 암스테르담으로 가는 길에 폭설을 만나 온갖 곳을 돌아서 암스테르담으로 간신히 들어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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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친구들과 쇼핑. 친구들과의 여행은 혼자 여행만큼 사색에 잠길 수는 없어도 지금을 즐길 수 있는 여행이 된다. 같이 있는 1분 1초가 모두 즐거운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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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로 들어가 물을 샀다. 8년 전 기억으로 마트에서 물을 살 때마다 탄산수를 잘못 고른 기억이 있어 AI를 동원해 탄산수를 골라내려 애썼는데, 이런. 이번에도 고른 건 탄산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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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독일이 제일 맛있는 프레첼(Bretzel)을 먹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독일 프레첼은 정말 맛있다. 너무 맛있어서 사실 귀국할 때 마트에서 한 움큼 사서 한국으로 들고 왔는데, 생각보다 맛있지 않았다. 오래돼서 그랬던 건지, 아니면 여행의 맛으로 맛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프레첼만 보면 독일의 즐거운 기억이 떠오르고, 그래서 맛있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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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플라츠(Alexanderplatz)로 발걸음을 옮겨 베를린의 대표 먹거리인 커리부어스트(Kurrywurst)까지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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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도 내가 좋아하는 이 베를린 감성을 이해해 줄 수 있기에,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나만의 사색을 나눌 수 있어서 좋은 것 아닐까. 어느 도시를 가든 그 도시의 감성은 바로 대중교통, 그중에서도 지하철에서 나온다. 무언가 오래된 것 같으면서도 내부는 현대적이고, 다양성이 가장 모이는 곳, 베를린의 지하철은 바로 그런 베를린의 느낌을 바로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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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런 베를린의 느낌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케밥, 독일어로는 되너(Döner)가 아닐까 싶다. 이민자이면서도 베를린의 일상이 되어버린 터키인의 정체성을 받아들여, 독일인이 가장 즐기는 음식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진은 Rüyam Gemüse kebab. 그 유명한 무스타파 케밥보다 훨씬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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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취향이 맞는 친구들과 여행을 할 때 즐거운 점은 어떤 음식을 먹든 함께 맛있고, 함께 마시고,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알렉산더 플라츠에서 먹은 이 스페인 요리는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베를린은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까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산다. 강아지들도 천국처럼 돌아다닐 수 있는 곳. 물론 내가 본 강아지들은 훈련이 매우 잘되어 있어서 짖지도, 달려들지도, 다른 강아지에 반응하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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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재래시장까지. 혼자 돌아보면 10분 만에 빠르게 보고 지나갈 곳도, 친구들과 함께 보면 한 시간은 넘게 있는다. 하나하나 구경하며, 친구들이 나에게 맞는 옷들, 액세서리들을 찾아준다. 런던에서 그렇게 많은 재래시장을 돌아다니면서 이렇게 오래 구경한 적이 없었는데. 친구들과 있을 때의 나와 혼자 있을 때의 나는 그렇게 완벽히 다른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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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나는 나다. 미술관에 함께 가면 또 그림을 보고 사색에 잠기는 나를 볼 수 있다. 다만 친구들과 생각을 이야기하며 독특한 것을 발견하는, 한 발짝 더 나아간 나를 발견한 것뿐일지도 모르겠다. 다른 내가 아닌, 더 깊숙한 곳의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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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여행은 혼자라 즐겁고, 친구와의 여행은 함께라 즐겁다. 여행을 즐기는 방식은 다르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기억에 남는 베를린이었다. 그리고 8년 전의 그 베를린의 감정을 조금은 알 것 같은 베를린이었다. 혼자만 여행하던 내가, 친구들과 함께 걸으면서 결국 '나'를 또다시 보게 된 베를린이기도 했다. 다음에 다시 오면 또 어떤 느낌이 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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