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 베를린을 뒤로하고 베를린 브란덴부르크공항으로 향했다. 라운지에서 프레첼로 마지막 독일을 느끼고 몸을 비행기에 태웠다.
비행기는 베를린을 곧 이륙하여 약 한 시간 반, 파리로 날아간다. 파리공항에서 잠시 시간을 보낸 뒤 한국행 비행기를 타야 한다.
파리. 약 여기도 약 8년 만에 와본다. 그때는 일주일이나 와서 파리를 제대로 즐기고 갔더랬지. 에펠탑 앞에서 기억이 끊길 때까지 와인을 들이붓기도 해 보고, 해장으로 쌀국수도 먹고, 교환학생 왔던 친구랑 점심도 먹고, 쇼핑도 하고.
사실 대학생 유럽여행의 낭만을 제대로 이뤄본 것은 파리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 여행에는 파리가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좋았기 때문에, 해보고 싶은 것은 다 해보고 가보고 싶은 곳은 다 가봤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에 반해 이번 여행지에 넣은 런던과 베를린은 아직도 아쉬운 것이 많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직도 그 도시에 가서 무엇인가 하고 싶고, 어딘가로 가고 싶다. 해보고 싶은 것을 만들고, 가보고 싶은 곳을 만들면서까지.
무언가 원하는 것은 결핍에서 오는 감정이라고들 한다. 여행은 그렇다면 어딘가를 가고 싶은 감정이겠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그냥 가고 싶으면 그곳을 가야 할 이유를 만들어낸다. 마치 이번 유럽여행에서 오로라라는 핑계로 유럽을 오고, 다른 도시까지 간 것처럼.
잠시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으나 에어 사이드임에도 들어와있는 비둘기 몇 마리가 눈길을 끈다. 도대체 여기에 어떻게 들어온 건지 매우 의문스럽다.
비행기가 다소 지연되었지만 곧 탑승한다. 지연 안내를 보고 마지막 담배 한 대를 태우러 갔다 왔다.
아는 사람이면 알겠지만, 나는 담배를 피웠다 끊었다. 그런데 해외여행만 가면 담배를 태우고 싶다. 해방감에서 오는 감정이라고 할지, 일상의 나를 벗어나고 싶어서 일지.
어쨌든 마지막 한 대를 태우고, 라이터와 담배를 쓰레기통에 던지고 비행기로 올라탔다.
비행기에서 나오는 한식을 보니 이제 정말 여행이 끝났음이 실감 난다. 다만 한 가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비행기에 탑승하기 전부터 수하물 중 하나가 실리지 않음을 알고 있었고, 한국에 도착해서 확인해야 했다. 그리고 당연히도, 수하물 하나가 도착하지 않았다. 다행히 일주일 정도 걸려 받을 수 있었지만 행복했던 여행에 한 가지 작은 흠이 생겨버렸다. 아니, 어쩌면 그래서 더 기억이 남을 여행일지도 모르겠다.
한동안 몸에 힘도 없이 영혼 없는 삶을 사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여행에 기대도 되지 않았다. 그래서 여행의 시작, 런던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때까지만 해도 여행에 대한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여행지에 도착하고, 설렘을 느끼며 살아있음을 느끼기 시작했다. 생각이 작동하기 시작했고, 사색하며 여행지와 상호작용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그 에너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이번에는 얼마나 작동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전보다는 훨씬 오래갈 것 같다. 여행에서 돌아온 지 세 달 지난 지금도 여행에 대한 그리움보다는 그때의 설렘이 더 남아있고, 그래서 즐거운 마음으로 생활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작년처럼 가까운 곳으로 자주 여행을 가고 싶다는 마음이 크게 들진 않는다. 적어도 결핍된 무언가가 채워졌기 때문이 아닐까.
가끔씩은 이렇게 오로라 같은 핑계를 대며 혼자 여행을 다니며 생각하고 설렘을 채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