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상상, 놀이를 사랑해

발행물9, 군에서 누군가에게 쓴 편지

by 민성


꿈을 좋아해요. 비슷한 결의 상상과 놀이, 이야기는 공통점이 있죠.


허구라고 말하기는 애매해요. 진짜라 믿는다면 이게 아니라는 걸 구태여 증명할 사람이 없을 테죠. 언젠간 또 보편적인 사실이 될지도 모르고요. 그래서 이 친구들은 힘이 세요. 현실보다 훨씬 재밌고요. 그만큼이나 와해된 꿈과 믿음은 위험하겠지만, 그래도 현실만으로 살아갈 순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꿈을 계속 갈고닦아야 해요. 끊임없이 의심하며 이성적으로 생각해야 하지만, 그럼에도 꿈을 계속해서 꿔야 해요. 끝없이 상상해야 해요. 지금만 해도 봐요, 이렇게 지치고 힘든 걸.


디즈니 애니메이션 <모아나>에서 섬의 황폐화를 막기 위한 모험을 마친 모아나는 자연의 신 테피티가 꽃으로 만들어준 배를 타고 섬으로 돌아와요. 하지만 섬에 도착했을 때 그가 타고 온 배는 테페티의 꽃배가 아닌 그가 섬에서 나올 때 탔던, 심지어 모험 중에 부서진, 배의 모습과 일치합니다. 여기서 그의 모험이 사실 한바탕의 꿈이었을 수도 있다는 걸 암시하죠. 섬의 황폐화는 다시 자연에 의해 해결되었고, 그의 모험은 그저 그의 상상 속 놀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얘기하고 있어요. 모아나의 작은 상상으로부터 시작된 모험이 150분짜리 멋진 영상과 함께 좋은 노래들을 남겼으니 디즈니로서는 결코 손해 볼 게 없죠. 그 인물 자체에게도 큰 성장이 되어줬을 거예요. 무엇보다 그 모험 속에서 얼마나 즐거웠겠어요. 인생의 즐거운 추억이나 경험으로 남았을지도 모르죠.


KakaoTalk_20200907_161215592.png 디즈니 공식 Youtube



저는 놀이를 참 많이 했어요. 하나하나 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의자와 책상에 이불을 둘러놓고 하는 텐트 놀이는 정말 많이 했어요. 신호등 용암 놀이, 무슨 놀인지 상상이 가시려나요! 하얀 부분만 밟을 수 있고 검은색 아스팔트는 용암인 거예요. 자매품으로 보도블록 용암 놀이도 있답니다. 모아나의 모험이 그의 놀이였다고 가정을 해보면, 그는 그냥 우리보다 더 확장되고 재밌는 놀이를 한 거예요. 그렇게 큰 꿈을 꿀 수 있는 용기와 상상력이 부러워요. 얼마나 더 다채롭고 재밌을까요, 하루가. 그리고 본인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참 멋져요. 중간에 현실과의 간극을 이기지 못하고 꿈에서 깼다면 놀이는 완성되지 못했을 거예요. 물론 어디까지나 그의 모험이 놀이었다는 가정 하에 말이죠.


더 넓게 볼까요. 상상과 놀이는 연극과 닮아 있어요. 처음 무대에 올랐던 연극은 시각장애인이 그의 애인과 함께 앞으로의 인생을 상상하고 만드는 놀이에 관한 극이었어요. 연극 자체도 한 편의 꿈과 같은데 그 속에서의 또 놀이라, 몰입한 세상 속에는 또 몰입해야 할 세상이 있었죠. 작은 여관방 화장실에서 시작하는 결혼식과 함께 그들의 놀이는 시작되어요. 침대에 앉자 아이를 가지고, 저녁을 먹고 아이들의 운동회에 가고, 바다에 가고, 또 놀이 속 그가 죽어버리며 연극은 끝나요. 그의 애인이 마지막까지 이 놀이를 고집하며 함께한 이유는 이 놀이가 주는 상상과 환상을 통해서 둘의 삶의 희망을 품으려고 했던 거죠. 하지만 그 간극을 이기지 못하고 작은 여관방에서 그들이 함께 만든 환상과 꿈은 깨지고 그가 방을 나오며 작품이 끝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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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이런 꿈과 상상 일련의 것을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는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뭐 정말 색채감이 넘치지 않아도, 구조물이 이질적이지 않더라도, 마법을 쓰지 않아도, 꿈속의 세상은 아름다울 때가 많아요. 직접 개입할 수 없는 꿈뿐만 아니라, 우리가 직접 만들어내는 상상과 놀이도 역시 그래요. 현실에서는 전혀 불가능한 장면을 만들 수 있고, 수십 년의 시간을 단번에 흘러가게 만들 수도 있죠. 미래를 그리고 과거를 되돌릴 수도 있죠.


하지만 제가 놀이와 연극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것이 부단히 아름다워도 찰나고 환상이라는 것, 곧 사라질 것이란 것, 영원히 놀이 속에 살 수는 없기 때문이기도 해요. 그 놀이와 현실의 간극조차 저는 정말 사랑했어요. 잠잘 때 꾸는 꿈과 우리가 만들어낸 놀이는, 그 끝이 있다는 것도 정말 매력적이에요. 저는 영원한 것과 사랑에 빠질 수 없나 봐요. 유한한 것이 애틋해요. 늘 그 자리에 있지 않는 것. 옛날에 게임 아이템 살 때 기간제 아이템을 그렇게 싫어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싫어할 이유도 없었네요.


결론이 좋은 게 좋은 거죠~ 하는 것 같은데, 미묘한 차이를 아시겠나요? 사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이게 제 결론인 것 같아요. 한때는 이상과의 간극이 너무 커서 회의감에 절어 살며 애초에 꿈을 꾸지 않아야 하나, 상상하지 않는 법을 배우고 익혀야 하는가에 대해 자문했던 적이 있어요. 근데 안됩니다. 꿈은 계속 꿔야 하고, 계속해서 갈고닦는 것이 차선책인 것 같아요.


우리는 무언가를 모를 때 두려움을 느낀다고 해요. 처음의 이야기는 그렇게 탄생되었다는 얘기도 들어본 적 있어요. 요즘엔 두려움의 양상이 조금 바뀐 것 같아요. 저는 무료함에 두려움을 느껴요. 두려움을 이길 즐거움을 찾기 위해 허구를 만드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건강한 허구를 만들자. 자극적이지 않고, 어떤 선입견을 굳히지 않을 수 있는 그런 콘텐츠를 만들자 싶기도 한 날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