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동생, 남동생, 아이, 아기 등 표현에 혼동이 있습니다만, 다 같은 고양이를 대상으로 합니다.)
무거운 마음을 지고 함께 살겠다 결심했던 남동생(고양이)가 아팠을 때 나는 필사적으로 죽음을 참았다. 고양이(동생)는 겨우 한 살이 된 나이였다. 가는 병원마다 동생이 가진 종양의 크기를 의아해했다. 1년을 겨우 살았는데 어떻게 이런 게 자라났지? 하는 의아함이었다.
나는 그 시절에 필사적으로 죽고 싶어했다. 그러나 내가 행복하게 해주겠다 다짐한 고양이가 있기에 죽음을 견뎠다. 얘가 있기 때문에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다. 만약에 이 아이가 죽는다면 나도 그때는 홀가분히 죽을 수 있겠다고 꿈꿨다.
막연히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동생이 아프고 나니까 외려, 강하게 필사적이었다.
아이가 밥을 점점 먹지 않자, 검진 차 병원에 갔을 때 종양을 발견했고, 수술을 결정해 개복을 했지만 도저히 잘라낼 수가 없는 크기의 종양이라는 말을 듣고 아이의 배를 닫았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져 내 어깨를 짓누르는 것 같았다. 잠시간의 강렬한 처참함을 느끼고 나는 곧바로 방법을 찾아 헤맸다. 이런 사례, 이런 경우, 이랬을 때는... 하고. 병원에서는 대학병원에 가볼 수는 있지만, 아마 가도 다른 방법이 없을 거다, 라고 했다. 그렇지만 그때는 눈에 별이 도는 듯 무조건 가야한다라는 필사적인 마음 뿐이었다. 고민하던 가족들 헤치고, 무조건 가야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살면서 그렇게 강력하게 주장하는 일이 드물었을 거다. 어떤 확신을 가진 것도 내 기억 하에 처음이었던 것 같다.
나의 확신 탓인지, 모두가 그렇게 낯선 생명체라는 가족을 처음 가져봤기에 생기는 아집인지는 몰라도 대개 동의하고 대학 병원에 갔다. 경기권에 위치한 나의 집과는 상당히 먼 거리였다. 가는 동안에 고양이가 받을 스트레스는 고려할 수가 없었다. 당장에 함께 살기 위한 온갖 방법을 동원해보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함이 모두에게 최우선이었다. 과연 이 아기가 '차라리 죽고 싶다'고 느낄 수 있을까? 함부로 재단할 수 없다는 것쯤 알지만, 아무래도 어린 나이이기 때문에, 나와 내 가족들은 보다 확신있게 행동했다.
길게 항암 치료를 했다. 오랜 시간의 거리를 오가며. 그동안 나는 병원을 함께 다니기 위해 운전 연수를 시작하고, 함께 병원에 다녔다. 아기가 죽고는 더이상 운전을 하지 않았다. 딱히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 했다.
병원에 가야한다고 확고하게 말했던 것처럼, 이제 보내주어야 할 것 같다는 말을 내가 먼저 했다. 왜 가족들이 내 말을 곧이 곧대로 바로 따라주었는지는 모른다. 아이의 눈이 너무 탁해서, 그리고 마치 그 눈빛이 이제 버티기 힘들다거나, 이제 충분하다거나, 놓아달라거나 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뭔가에 홀린 듯이 지금 보내주어야할 것 같다고 가족들에게 내가 이야기했다. 그 새벽의 처참함을 기억한다. 그 공허한 공기 속에서 가족들은 각자 분주하게 움직였다. 아빠는 차를 준비시키고, 언니와 나는 필요한 것들을 챙기며, 심야에 운영하는 장례식장에 연락을 하고, 처음 아이의 종양을 발견했던 병원에 연락했다.
상자에 담겨진 아이를 싣고 가는 차 안에서 우리는 크게 울지도 않으며 얼마나 고요했던지. 내가 인간이라는 것에 또 한번 처참함을 느끼며.
그 당시에는 분명 확신이 있었는데 거즌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후회한다. 내가 아이의 눈빛을 잘못 읽은 거였더라면. 마지막에 더 함께하고 싶다고 외친 거였다면. 더 버틸 수 있다고 나에게 눈빛을 보낸 거였다면. 내가 그걸 잘못 읽은 거였더라면.
모르겠으니까, 일단 열심히 살았다. 만약에 나와 같은 애정을 이 아이가 나에게 느꼈다면 나는 열심히 해야겠다. 이 아이에게 열심히 하지 못 한 만큼. 그런 막연한 생각 속에서 애썼다.
아마 나의 경우에
나를 죽고 싶게 하는 건 사랑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