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희랍어 시간>에 대한 단상
다 읽고 나서 입술이 버석하게 마르는 기분이 들어 바세린을 고쳐 바르고 급하게 몇 자 적어두려고.
"우리 사이에 칼이 있었네" 보르헤스의 유언을 빌려 이야기가 시작된다. 세계와 나 사이에 놓인 칼들.
소설 속에 두 사람은 세계와 자신 사이에 칼이 놓인 채로 무언가를 기다리거나, 기다리지 않은 채로 있다.
내게 자취방이 폐허나 다름 없는 모양새를 했을 적, 미동 않기 위해 죽음과도 같은 수면을 간절히 바랄 적 그때 내가 잠식된 불안은 어쩌면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착각처럼 느껴질 때 였겠다. 아니면 착각이었음을 깨달은 거다. 잃는다는 두려움과 가진 게 아무 것도 없다는 두려움이 맞물려 구분 지을 수 없게 되고 결국 텅빈 감각만 남아버리게 된다.
그래서 텅빔을 향해가는 사람의 말과 텅빔을 곁에 두고 사는 사람이 보는 것들이 나에게 감정적 동요를 겪게 했다. 그 누구보다 섬세한 작가의 눈으로. 나한텐 그런 의미가 있었다.
꿈과 기억
말을 기다리는 마음
무언가를 기다리는
기다리지 않는
기다릴 것이 없는
기다리는 것 자체의
잃은
잃을 것임을 아는
그리고 아직 모르는 것들 어쩌면 앞으로도 모를 것들
할 수 있지만 할 수 없고
할 수 있지만 해야만 하는 것들
여자는 자주 얼굴을 닦아낸다.
어떻게든 헤쳐나갈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여자. 하지만 말할 수 없는.
내가 읽은 다른 한강의 소설보다 조금 더 다정하고 풀어서 설명하는 친절함이 느껴졌는데 그것은 아마도 "단순히 생리적이었던 눈물이 어째서인지 멈추지 않을 때"가 있는 때의 사람들을 이야기하고 있어서일 것이다. 성립 불가능한 오류가
남자는 그 여자가 소리를 들을 수 없기 때문에 도움을 청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 생각에서의 오류들은 오히려 그를 구해낸다.
우리가 잃어갈 때 돌아갈 곳은 기억과 꿈
이윽고 몸은 떠오르면서
시간이 내게 입맞추고
나도 어떤 단어들도 문장들도 완성짓지 못 하겠고
결국 사랑이라고 귀결될 이야기라고 생각 못 했는데 작가의 말처럼 ... 그런 각별함들...작은 배려들 몸짓들
타 비평문에서 두 인물을 '어긋난 사람들'이라는 표현을 썼길래 적는 문장
나는 우리가 잃어가는 것들에 대한 상징으로 눈과 말이 소재가 됐다고 생각했을 뿐 특별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어쩌면 기다린다는 마음으로 사람은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수차례 꿈과 기억을 일으키면서
저마다의 희랍어 시간에서
사랑에 초점화해서 봤을 때의 단상
결국 막연함을 글자와 언어라는 구체적인 사물로 마주할 때 왠지 느껴지는 안도감을 위해서 나는 읽는다
그 막연함이 모든 걸 덮어서 어떠한 안도감도 비집고 들어올 자리가 없는 시간을 흘리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사랑은 그런 막연함을 지긋하게 바라보거나 들어주는 거라고
그런 충동이 자꾸 새어나오는 거라고 그 과정에서 진지한 태도로(남자의 엄마) 오만함을 철저히 경계하는 마음이 애틋하고 처절한 사랑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