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인생을 살고 싶어서
1. ‘안부’라는 소재에 관하여
<눈부신 안부>는 상처로 마음이 닫혀있던 주인공 해미가 자신의 ‘마음’과 얽혀있던 관계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진솔한 감정을 찾아가는 내용의 소설이다. 해미가 생애 전반에 영향을 줬던 다양한 사람들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자신을 이해하고 시간의 틈을 넘어 옆을 지켜준 우재에게 눈부신 안부를 전하기까지의 과정을 다룬다. 이 작품에서 파독 간호사의 역사적 이야기나 언니의 죽음, 아빠와 엄마의 이혼 위기, 놓쳐버린 우재라는 존재, 선자 이모의 사랑같은 건 사실 해미를 설명하고 각성시키기 위한 장치로 활용된다. 소재가 독특해서 각각이 튀어 보이는 듯 싶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국 주제는 하나로 모아졌다. 우리가 얼마나 한 번뿐인 찬란한 삶 속에서 다정한 안부를 용기있게 건넬 수 있느냐를 말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소재가 독특하고 많아 산만하다는 인상이 있었다.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갈지 기대되는 동시에 너무 억지로 이어붙인 작위성이 드러나지 않았으면 했던 것 같다. 중간중간 삽입된 편지글의 글씨체가 작아서 잘 안보이고 흐름을 좀 깨는 느낌이 나서 아쉬웠다.
그러나 인물 형상화와 일련의 흐름속에서 주인공이 성장하는 것은 몰입도가 좋았다. 우재와의 관계성이라든지 우재 캐릭터가 애매한 기분이 들어서, 과연 40대가 느낄만한 현실적인 애정인가 이상하긴 했다. 어쨌든 이것은 심리적 성숙과 관계에 대한 의미를 깨닫게 해주는 따뜻한 소설이었다.
소설에서 해미는 다섯 단계를 거쳐 오랫동안 묵혀두었던 ‘문제’를 깨고 자신만의 찬란한 삶으로 뛰어들게 된다. 소설은 문제적 개인을 다루며, 주인공 해미가 가진 ‘결핍’은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것의 두려움(소중한 이의 부재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작가는 이러한 해미라는 캐릭터의 결핍을 ‘안부’라는 장치를 통해 해결해가도록 하고 있다.
해미는 소중한 가족의 갑작스런 죽음과 이별로 인해 커다란 트라우마를 갖게 된다. 안부를 묻지도 못하고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언니’라는 존재에 대한 죄책감과 부재에 대한 고통이 해미에게 결핍을 만들어냈다. 이후 연달아 이어진 부모의 불화와 이혼 위기 속에서 다시 한 번 ‘영원하지 않은 관계성’을 의식하고, 언제도 끝나버릴 수 있는 소중한 것들과의 단절이 결핍을 더 강화하게 된다.
그런 마음으로 자라게 된 해미는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과 거리를 좁히고, 큰 존재감으로 다가오려 하는 ‘우재’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존 볼비의 ‘애착이론’에서 회피형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게 된다. 자신의 진실한 감정과 모습을 보여주기 힘들어하며, 적당한 거리에서 가깝고 친밀해지기를 두려워하는 성격이 된 것이다.
그러나 어릴 때 독일에서부터 시작됐던 ‘선자 이모의 첫사랑 찾기’가 마흔이 가까운 나이가 되어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K.H.의 정체를 밝히고 어떻게든 알아가 보기로 한 순간의 계기가 해미의 성장의 발판이 되었다. 아무리 어려운 환경과 마음을 다 전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서로에게 진솔했던 ‘선자 이모’와 ‘K.H.’의 관계성을 경험하며 자신도 바뀔 수 있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그저 친구를 돕기 위해 시작한 장난스러운 일일지 몰라도, 결과적으로는 해미라는 인물의 한 삶을 통틀어 영향을 끼친 사건이 된 것이다. 이러한 해미의 각성에는 큰 이모라든지 엄마와 아빠라든지 다양한 인물의 지나가듯 새겨진 한 마디의 영향도 크게 작용했다.
직면과 도전의 전환점에서 해미는 ‘더이상 도망치지 않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 끝지점에는 재회한 우재를 향해 있었고, 그동안 자신을 괴롭히면 ‘관계가 깊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결핍을 이기는 과정이 필요했다. 해미는 결국 제주행 비행기를 타고 자신의 ‘찬란한 삶’을 살아가기를 선택한다.
2. 책을 읽고 느낀점
“사람의 마음엔 대체 무슨 힘이 있어서 결국엔 자꾸자꾸 나아지는 쪽으로 뻗어가?”
요즘 삶을 생각하며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구절이다. 사람의 마음에는 대체 무슨 힘이 있어서 수많은 어려움과 걱정이 드는데도 나아가는 쪽으로 뻗어가는 걸까. 지난 2주동안 정말 많이 되새긴 구절이다. 이성을 잡고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면 마냥 ‘도전’하기에는 어려운 것들이 많다. 나이가 들수록 경제적인 것이라든지 시간과 효용의 문제라든지 샅샅이 따지고 들수록 안정적이고 평탄한 선택을 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게 된다. 예전의 나는 이러지 않았는데 하며 낭만이 죽었다고 느끼지만, 선택을 바꾸진 않는다. 포기가 많아지고 숙고하는 버릇은 더욱 강화된다.
사랑이 특히 그렇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대체 무엇이 있길래 이렇게 자꾸자꾸 더 좋아하고 싶은 쪽으로 뻗어나가는 걸까. 멈추려고 해도 내 마음은 멈추기라는 버튼이 없이 ‘GO’ 만 누를 수 있게 되어있는 것 같다. 현실적인 것들이 걸리는 게 있음에도 그런 것 따윈 눈에 보이지 않게 되는 것. 호로몬의 농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그 에너지가 강력해서 나 자신이 인간인지 기계인지 구별이 가지 않게 되는 것 같다.
타인의 사랑에도 그 에너지가 전해지기에 이 책 속 ‘해미’는 선자 이모의 사랑의 에너지를 간접적으로 느꼈고, 그것이 자신의 사랑의 에너지로도 이어질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전혀 하지 않던 행동을 하게 만들고 전혀 하지 않던 생각을 하게 만드는 ‘애정’이라는 감정을 요즘의 나도 느끼고 있다.
해미를 보면 내 내면과 닮은 점이 느껴졌다. 나는 가까워지는 것이 두렵지는 않다만, 친밀해지는 데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소중한 존재가 생긴다는 것이 늘 두려운 편이다. 있었다가 사라져버리는 고통을 아주 어릴 때부터 체감했던 것 때문일지도 모른다. 있었다가 사라져서 10배 아플 거, 아예 처음부터 없어서 0인게 훨씬 나으니까. 늘 그런 생각을 마음 속에 무의식적으로 품고 살았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해미가 K.H. 찾기를 통해 용기를 내고 각성했던 것처럼, 나 역시 해미가 우재에게로 나아가는 과정을 보고 용기를 얻었던 것 같다. 책의 구절들은 내 마음에 직접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았다.
그때 내가 원했던 건 누군가의 삶에 내가 또다시 영향을 미치게 되리라는 그 무시무시한 가능성으로부터 도망치는 것뿐이었으니까. (…) 생각해야 해. 내 안의 누군가가 다시 속삭였다. 생각해야만 해. 너는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나는 어떻게 살고 싶지? 더이상 도망치기만 하면서 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ㅡ <눈부신 안부> 263~264p
나는 내게도 똑같이 물음을 던졌다. 내 삶에 누군가 큰 영향력을 행사하며 어떤 존재로 자리잡는 것을 허락할 수 있는지 말이다. 무시무시한 가능성과 부재했을 때의 고통도 다 감안하고 내 삶에 ‘선택’을 할 수 있는지 생각했다. 모든 것을 감안하고 사랑하기를 선택하느냐, 모든 것이 두려워서 사랑하기를 포기하느냐. 어쨌든 선택은 내 손아귀에 놓여있었고, 의미부여는 의미가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에서 ‘정답’을 찾기를 좋아했고, 본능적으로 그렇게 사고하는 나로서는 이에 대한 답을 내리기가 너무 어려웠다. 나는 나의 지극히 인간적인 면을 대면할 수밖에 없었고, 두서없는 생각과 감정의 뒤죽박죽한 상황 속에서 가장 알맞은 답을 찾고 싶었다. 하지만 애초부터 정답이 없는 질문이었다면?
“네가 찬란히 살았으면 좋겠어. 삶은 누구에게나 한 번뿐이고 아까운 거니까.”
어떤 선택을 한들 후회라는 것은 필연적이다. 더 잘하고 더 좋고 싶은 마음에 아쉬움은 늘 남는 법이니까. 그렇기에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거나 시작하지도 않고 후회하는 것만큼 안타까운 것은 없을지 모르겠다. 기왕 마음 먹고 하늘이 도와서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상황이 만들어졌다면, 스타트 라인에 발을 딛고 박차고 뛰어나가봐도 좋지 않을까.
기대와 초조, 설렘과 불안, 확신과 의심. 이 모든 것들이 마구잡이로 적혀 내려간대도 나는 공책을 펼쳐보기로 선택했다. 나는 한 번뿐인 아까운 삶을 찬란히 살아보고 싶어졌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