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학년 담임 선생님과 추억
가끔 정말 이유 없이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을 떠올리곤 한다. 겹겹이 쌓여가는 무수한 기억 속에서 의미 있다고 새긴 순간들이 불쑥불쑥 샘솟는 것이다. 언제는 초등학교 때 기억이 선명하게 튀어 오른 적이 있다. 그 장면 속에서 나는 분주하게 뛰어다녔다. 나는 무엇이 그렇게 즐거워서, 무엇이 그렇게 기뻐서 날아다녔을까?
커다란 돌을 들고 운동장에서 놀고 있는 나도 있고, 무언가를 오리고 붙이는 나도 있었다. 흰색 가운을 입고 있기도 했고, 피구공을 들고 있기도 했다. 책상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기도 하고, 붓을 들고 있기도 하다. 급식소 계단에 줄 서 있기도 하고, 시험날 수학 점수가 부족하다며 선생님께 혼나며 억울해하던 나도 있다. 6년을 꼬박 지낸 곳이라 그런지 상당한 기억이 아직까진 남아있는 것 같다.
초등학교 졸업식이 얼마 안 남았던 시기였다. 중학교에 입학을 한 뒤였을까?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중학교에 가기 싫은 마음이 너무 커서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시골의 작은 학교에서 전학 오는 친구가 거의 없이, 같은 반 친구들과 6년을 지냈다. 중학교 입학이라는 이벤트는, 내게 낯선 아이들과 선생님을 만나야만 하는 두려운 일이었다.
새로운 환경에서 무언가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건 기쁨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갖고 있던 '알 수 없는 두려움'은 난생처음 '교복'을 입게 된다는 설렘과는 또 다른 것이었다.
나는 중학교에 들어가기 직전 어느 날,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 선생님과 점심을 먹게 되었다. 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약간은 어둡고 조용한 레스토랑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선생님께 졸업하는 게 너무 싫다고 했다. 정들었던 학교와 선생님들과 헤어지는 게 싫다고, 중학교에 가는 게 무섭다고 말이다.
그때 당시 중학교에서는 겨울 보충 수업이 있었다. 입학조차 하지 않았던 예비 중학생을 학교로 불러 배치고사도 보고, 수업을 했던 거다. 울며 겨자 먹기로 새 학교를 가서 눈치보기도 바쁜데, 낯선 아이들과 친해져야 하고 한층 어려워진 수업도 들었어야 했다. 내가 중학교에 가서 강렬하게 느꼈던 첫인상은 다른 학교에서 온 친구들의 센(?) 기운이었고, 초등학교와는 다른 중학교 선생님들의 어딘가 차가운 느낌이었다.
그리고 내가 중학생이던 2009년 당시에는, 왠지 모르게 선배라는 존재가 너무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지역이 좁아 건너편 집 아는 언니 오빠임에도 불구하고 선배가 위계를 세우고 싶어 했다. 겨우 한 살 차이 나는 후배에게 깍듯하게 존댓말과 인사를 시키고, 눈밖에 나는 녀석은 즉시 화장실이나 으슥한 골목에서 '훈육'을 해주었다. 이미 쫙 퍼져버린 소문은 나를 겁먹게 하는 가장 큰 이유기도 했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그래서 점점 더 두려워졌던 것 같다. 14살, 나는 주변에서 알게 모르게 쌓아온 중학교에 대한 두려움을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내 이야기가 끝나니 선생님은 내게 '나도 그랬어'라고 말씀해 주셨다. 낯선 환경과 아이들에 적응하고, 낯선 선생님과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을 자신도 했었노라고. 선생님은 걱정과 달리 금방 적응할 수 있었고, 당신 기억에 중학교 때가 가장 좋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좋은 시간을 보내셨다고 하셨다.
그때의 나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마냥 어렵기만 했다. 겨울 보충 수업이 너무 힘들었기에 공감이 잘 되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가장 좋았던 순간이 될 수 있다니, 정말일까?
선생님은 내게 이어서 말씀하셨다.
"그렇게 좋은 시기가 네게도 오겠지. 그럼에도 지금 이 순간에 꼭 내게 해줄 말이 있다면, 학년이 올라가고 더 큰 고민들이 생기고, 가끔은 주변에 휩쓸릴 수도 있어 하지만 그럴 때마다 너 자신을 지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단다."
당시에는 말들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를 지킨다는 게 무엇일까?'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서 전해주는 선생님의 말씀을 곱씹으려 노력했다.
여러 이야기를 해 주시고, 무엇보다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공감을 해 주셨다. 완전히 같은 형태는 아니지만 비슷한 상황에서 자랐고, 비슷한 고민을 하며 커간다는 것을 내게 알려주고 싶으셨던 것 같다. 그리고 식사를 마친 뒤 마지막으로 선생님은 자신의 꿈을 말씀해 주셨다. 가까운 듯 먼 미래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는 마흔쯤 되면 향기와 혜안을 가진 사람이 되어 있고 싶어."
선생님의 그 말을 듣고, 정말 멋진 꿈이라고 생각했다. 책을 좋아하신다고 말하셨던 선생님의 말씀은 내게 언제나 지혜로운 마법사의 격언 같이 느껴졌었다. 마지막까지 내게 남겨주는 말은 한 편의 긴 동화 같았고, 나와 겹쳐진 선생님의 미래처럼 느껴졌다.
신기하게도 선생님의 그 말은 내게 '씨앗'이 되었다. 자기 예언도 아니고, 그냥 '예언'이었다. 그때 해 주신 그 말들이, 완전히 소화가 되었든 아니든 나는 실제로 중학교에 적응을 훌륭하게 해냈다. 많은 활동과 즐거운 시간을 꽉꽉 채워서 3년을 보냈다. 수년이 지나 그때의 선생님 나이를 넘긴 나는, 선생님과 같이 중학교 때를 가장 그리워하고 있다.
성인이 된 나는, 그때 선생님께 들었던 말들을 여전히 곱씹고 있다. 무엇보다, 이제는 그 말들이 이해가 되어 나 자신을 지켜가며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때 담임 선생님은 20대 중반이셨다. 내가 5학년일 때 초임이셨으니까, 대학을 갓 졸업한 것과 다름없는 사회초년생이었던 거다. 지금의 나와 비슷한 나이의 그 시절 선생님은 어떻게 제자에게 그런 말들을 해줄 수 있었을까? 나는 그날을 돌이켜볼 때마다 '이해의 선물'을 받은 것 같다는 감상이 남는다. 어쩌면 그때 이미 선생님은 오래기억 될 향기와 곱씹게하는 지혜를 가졌던 건 아닐까?
살면서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하게 된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생각지도 못한 낯선 상황도 만나고, 때로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나 자신이 누군지 모르겠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자신감이 떨어지는 경험도 한다. 그런 여러 상황 속에서 내가 지키고 싶은 나 자신의 모습을 지키는 것이 중요했던 거다. 나의 본질을 지키고 꿋꿋하게 서 있는 것, 그것은 참 어려운 일이었다.
선생님은, 인생이라는 길을 먼저 걷고 계셨던 거다. 나는 이제 그 말이 얼마나 삶을 관통하는 것인지 안다. 14살의 나뿐만 아니라, 성인이 된 나에게도 깊은 울림이 되는 그 말들. 이제 내가 바라보고 나아가야 하는 것은 '나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일 테다.
가끔 카카오톡을 통해 선생님의 근황을 보곤 한다. 여전히 그때의 선생님의 모습이다. 나는 훌쩍 자라 버렸는데, 선생님은 여전하신 것 같은 그 기분. 단지 결혼을 하셨고, 아들과 웃고 있는 모습이 더 해지신 그때 그 향기의 선생님. 언젠가 꼭 다시 찾아뵙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만나게 된다면 나도 어릴 때보다는 몇 뼘 성장한 게 눈에 보였으면 좋겠다.
나도 40대가 되어 가면서, 선생님과 같이 향기와 혜안을 가진 사람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