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멋진 마을>을 읽고 든 교육에 대한 생각
교토 북쪽에 위치한 눈이 많이 내리는 후쿠이현.
후쿠이현에는 일본의 희망이 들어있다고 한다.
다른 여러 대목도 인상적이었지만, 특히나 후쿠이의 교육에 대한 부분이 인상 깊어서 글로 남겨둔다.
1. ‘좋은 괴짜’를 찾는 사회
1996년 1월,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는 일본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며 ‘6대 개혁’을 선언했다. 정치·재정·사회보장·경제·금융·교육 전반에 걸친 개혁이었다. 그는 이 영역들을 따로 나눌 수 없다고 보았다. 재정과 사회보장은 긴밀하게 연결돼 있고, 경제구조와 교육 역시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21세기의 새로운 일본을 만들겠다”는 그의 의지는 젊은 관료들을 자극했다.
그 가운데 교육 개혁은 대학 입시에서부터 시작됐다. 문부성 관료들은 케임브리지대를 찾아가 입시 제도를 조사했다. 그곳에서 만난 줄리아 릴레이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보는 것은 단순한 지식이 아닙니다. 얼마나 응용하고, 얼마나 새로운 발상을 하느냐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건 '굿 엑센트리서티(Good Eccentricity)', 즉 ‘좋은 괴짜’입니다.”
교과서를 넘어 발상과 대응력을 가진 말이었다. 그 말을 들은 일본 관료는 충격을 받았다. 일본 사회는 규정대로, 전례대로 일하는 것으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2. 1998년, 일본 사회의 붕괴
전환점은 1998년이었다. 자살자 수는 이전과 비교해서 급증해 3만 명을 넘어섰고, GDP 성장도 정점을 찍고 멈췄다. 임금과 보너스가 줄며 비정규직과 저임금 문제가 본격화됐다. 이 해는 일본 사회에서 신뢰의 끈이 끊어진 해였다. 정부 정책은 국민의 요구와 어긋났고, ‘내 목소리가 정치에 반영되지 않는다’는 불신이 급격히 확산됐다. 이 시기를 두고 학자들은 “일본의 20세기가 사실상 1998년에 끝났다”라고 말한다. 이후 일본 사회는 ‘성장’이 아니라 ‘유지와 대응’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3. 교육으로 대응하는 사회 ― OECD와 PISA
세계는 이미 다른 길을 준비하고 있었다. OECD는 미래 사회를 살아갈 핵심 역량으로 키 컴피턴시(Key Competency) 개념을 제시했다. 단순 암기력이 아니라, 모범답안 없는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사고력과 창의력이었다. 이를 기반으로 2000년부터 시행된 것이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PISA)였다. 앞으로 필요한 인재는 교과서 속 지식을 잘 암기하는 학생이 아니라,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좋은 괴짜’인 것이다.
4. 후쿠이현의 도전 ― 교직대학원과 원형탁자
그 흐름 속에서 일본 교육의 희망은 지방, 특히 후쿠이현에서 나타났다. 후쿠이는 교사를 바꾸어 학교를 바꾸자는 목표로 교직대학원을 세웠다. 초반에는 우려의 목소리도 존재했다. 교직대학원에 교사를 입학시키면 그 빈자리는 어떻게 하며, 그렇게 해서 어느 세월에 교육을 바꾸냐, 수업료는 어떡하냐 등 문제가 그랬다. 그래서 교수들이 직접 교육 현장에 가서 교사들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고 한다. (난 이 부분을 읽고 상당히 놀라웠다.)
"구성원을 모두 바꾸는 것은 무리입니다. 그런데 기업이든 학교든 조직에는 반드시 영향력을 발휘하는 20~30퍼센트의 주축이 있습니다. 이들이 주위 사람을 자극해 조직 전체를 움직이는 겁니다."
교육을 바꿔보자는 이름으로 모인 네 사람은 서로의 교육적 마인드와 철학을 나누었다. 초반엔 서로의 전공과 영역에 대한 몰이해로 싸움도 잦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찾아낸 핵심이 있었다. 바로 컬래버레이션이었다.
"나 자신의 능력과 전문성이 실제 교과활동을 지원하고 육성하는 데 얼마나 이용될 서 있을까. 전문 분야의 가치는 수업이나 학교활동을 얼마나 도울 수 있는지로 판가름된다."
후쿠이의 교사들은 원형탁자에 모여 전공이 다른 이들과 끝없는 토론을 했다.
"교사는 혼자 바쁘게 이리저리 뛰어다닐 뿐 다른 사람과 토론하는 행위는 거의 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생각이나 소중하게 여기는 교육이념 등을 남 앞에서 말한 경험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수학 교사가 자신의 교육관을 보육사나 국어 교사에게 설명하며 스스로 사고를 정리하게 되고, 새로운 관점을 얻었다. 이 과정에서 교사들은 비로소 아이들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고, 교무실 대화의 중심이 ‘아이들’로 옮겨갔다.
"교사들은 아이들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에 대해 말하지 않는 교사는 성장하지 않습니다." 마쓰키의 설명이다.
교사들로부터 시작된 토론과 서로에 대한 이해는 교육으로도 이어졌다. 아이들은 수업에서 단순히 답을 외우는 게 아니라, 사고 과정을 기록하고 되돌아보며 배우는 방식을 익혔다. ‘왜?’라는 질문을 던지며 토론하고, 서로의 생각을 포트폴리오로 남겨 변화 과정을 확인했다. 이것은 ‘주체적인 배움’ 그 자체였다.
5. 상호장애 상황 ― 교육의 본질
우메즈 하치조 교수는 말했다.
"사람에게 장애란 게 있는 걸까요? 귀가 들리지 않는 것은 장애가 아니에요. 내가 인연을 맺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나 사이에 장애가 생겨나는 것이지요."
그는 대화를 하지 않아 생기는 교류 장애를 "상호장애상황”이라 말했다. 학생이 배우지 못한다면, 그것은 학생의 문제가 아니라 교사의 문제일 수 있다. 어쩌면 서로 이해가 안 되는 것이 기본전제인지도 모른다. 교육은 이렇게 서로의 장벽을 걷어내는 과정 속에서만 가능하다. 후쿠이의 실천교육은 이 원리를 체화하고 있었다. 교사는 혼자가 아니라, 동료 교사와 지역 사회와 협력하며 배우고 가르쳤다.
6. 향토애와 지역이 키우는 교육
후쿠이 교육의 특징 중 하나는 지역과의 긴밀한 연결이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돼지를 키운다고 하면, 농협, 수의사, 정육점, 사료 업체까지 온 지역이 함께 참여한다. 아이들은 “지역이 나를 키운다”는 경험을 하고, 정체성을 얻는다. 그 경험은 훗날 그들을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만든다.
이것이 후쿠이가 보여주는 교육의 힘이다. 학교는 지식을 주입하는 공간이 아니라, 지역을 육성하는 곳이라는 신념을 단단히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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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오랜만에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죽어 있던 혼에 자그마한 촛불이 켜진 것 같았다. 더 이상 꿈이라는 건 없다고, 이미 관에 넣고 묻어버린 줄 알았는데, 그 죽어 있던 혼이 다시 살아 있다고 말했다. “너는 잊지 말라, 너는 다시 꿈꾸라, 다시 소망하라, 지독하게 빛나는 마음을 가지라”는 듯이. 심장이 두근거렸다. 후쿠이가 너무너무 가보고 싶었다.
늦은 새벽, 나는 다시 깨달았다. 내가 바라봐야 할 것은 시험이라는 좁은 문을 넘어선 어딘가라는 것을 말이다. 내 인생이라는 손바닥에 그 모든 것을 쥐고 싶다면, 이깟 시험쯤은 얼른 통과해버리고 싶다는 열망이 미친 듯이 치솟았다. 대학생 때 특강을 들으며 마음이 반짝이던 순간, 그리고 은사님이 보여준 모든 것이 떠오르며 세상이 넓어지던 그때와 똑같았다.
후쿠이 실천교육에 담긴 모든 것은 결국 내가 이미 선생님을 통해 보고, 듣고, 체험했던 것들이었다. 내게 선생님은 기적을 보여주고 가능성을 증명하는 분이었다. 세계를 넓혀주고, 교육의 의미를 몸소 증명하는 존재였다. 그리고 결국 질문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교사란 무엇인가?"
"학교란 무엇인가?"
뒤늦게 알았지만, 2023년에 누구나 후쿠이를 직접 방문할 수 있는 연수 기회가 있었다. 모두가 특별한 교육연구원에서 교사 학부모 가릴 것 없이 교육에 관심 있는 사람이면 참여할 수 있도록 한 거다. 아아.. 뒤늦게 알았다는 사실이 너무 속상하다. 몰랐으니 어쩔 수 없었지만, 그만큼 간절하게 가보고 싶다는 열망이 내 안에서 커졌다.
나는 사실 누구보다도 교사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음을 깨닫는다. 교육이라는 것, 아이들이 자라는 과정에 대해 누구보다 진심으로 대할 수 있는 사람인 거다. 난 후쿠이의 교육을 읽으며 은사님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선생님은 만날 때마다 25년 넘는 교육의 길에서 얻은 엑기스를 내게 보여주셨다. 그 소중한 경험은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교육 사례를 함축해 놓은 것과도 같았다. 단순한 이론이 아닌, 진심이 담긴 실천이 보여주는 결과 ― 바로 아이들이었다.
이 책 안에는 학교, 지역사회, 학생, 교사, 교육이라는 모든 키워드가 담겨 있다. 내가 꿈꾸는 교육, 내가 해내고 싶은 교육의 핵심 원리이자, 미래로 나아가는 길이기도 했다. 세상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변할 것이다. 그 변화 속에서도 진짜 필요한 것을 가르치는 교육, 사람으로서의 기본과 질서를 갖추고, 튼튼한 마음과 능력을 키워주는 교육을 이뤄내고 싶은 거다. 그리고 나 역시 그 길 위에서 계속 배우고 성장하며, 깨닫고 실천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이 있다.
후쿠이의 교육가들이 자신들의 교육을 “실천교육”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인상 깊었다. 그건 은사님이 살아오신 방식과 닮아 있었으니까.
그래서 마음이 복잡해졌다. 아름답게 설레고, 동시에 답답했다. 내게는 어깨너머로 보이는 현실이라는 게 있어서였을까. 아직 닿으려면 너무나 멀게 느껴져서였을까. 난 무엇을 위해서, 뭐가 좋다고 이렇게 마음 뜨거워짐을 느끼는 걸까. 새벽에 괜히 책 읽으려 했다가 잠이 안 온다. 이건 설렘일까 두려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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