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후쿠이현 왕린펑 교수
우리는 지난 여름, 『이토록 멋진 마을』 후쿠이를 방문해 교육 현장을 관찰했다. (『이토록 멋진 마을』은 후지요시 마사하루가 후쿠이 사람들이 살아가는 법을 취재해 펴낸 책의 제목) 인구 79만 명의 작은 지자체가 빚어낸 기적 같은 생존 모델 후쿠이는 주민 행복도, 초중생 학력평가, 노동자 실수입, 대졸 취업률 등에서 일본 1위를 차지하며 '행복마을'로 불리고 있다.
지난 여름 연수에서 후쿠이의 교육에 대해 강의해 주신 왕린펑 교수는 중국 국적이지만 일본에서 교육을 연구하며 현재 오사카 교육대학에 재직하고 있는 독특한 경력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이번 겨울 어느 날, 후쿠이 학력의 비결을 듣고자 온라인 인터뷰로 왕 교수를 다시 만났다.
한 14년 쯤 전인데요. 사실은 중국 대학교에 취직도 되고 박사 과정에도 합격해서 중국에서 계속해서 공부할 생각이었어요. 그때 담당 교수님께서 “너 중국에서 공부를 해왔는데 굳이 계속 여기서 공부할 필요가 있니? 한번 다른 선생님께 배워보는 게 어떻겠니?” 하시면서 다양한 나라의 자료들을 가져오신 거예요. 그 자료들 중에 제일 위에 있었던 게 일본 문부과학성 박사 장학금 후보 관련 응모였어요. 그래서 그냥 제일 위에 있었기 때문에 응모를 했는데 그게 된 거예요.
그렇지만 단지 그 일 때문만은 아니고요. 그 당시에 사토 마나부 선생님의 책이 중국에 굉장히 많이 번역되어 있었는데 그 책을 읽고 좀 흥미가 생겼거든요. 대학 교수님인데도 불구하고 1년에 300개에 가까운 학교에 강의를 하러 직접 가신다는 거예요. 왜 그럴까? 실제 보니까 연구자가 현장으로 가서 함께 공부하고 연구하며 같이 수업하는 모습이 굉장히 보기 좋았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좀 배우고 싶었습니다.
학교의 정책이나 제도라는 게 갑자기 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된 상태에서 진행 중이었고 저는 중간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일단 후쿠이현의 특징은 부모님과 교사의 열의가 굉장히 높다는 점입니다. 또 학습 습관이나 기초 생활 예절, 예를 들어 방과 후 숙제, 독서 등 배움에 관한 습관을 아이들이 가정에서 제대로 배워서 정확하게 몸에 배어 있기 때문에 사실 교사의 입장에서 봤을 때 가르치기 좋은 학생을 만난 것도 행운이죠.
또 문부과학성에서 새로운 수업 방식이나 제도를 실시할 때 잘 따라오는 편이므로, 무엇인가 시범적으로 테스트하고 싶을 때 제대로 된 결과물이 확실하게 나올 수 있는 모범적인 지역입니다. 보통 2년 전에 선행적으로 실시를 하는데 아키타현이나 후쿠이현 같은 경우에는 매우 잘 따라오기 때문에 여기에서 어떤 성과가 나거나 하면 다른 지역에서도 이런 부분들을 연결시켜서 진행할 수 있습니다.
시민중학교를 예로 들자면 양쪽 다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시민중학교 자체는 이제 문부과학성에서도 후쿠이 지역에 이런 학교를 지어서 실험을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고, 동시에 지역 주민들이나 학부모들이 항구라는 지역 환경에 특화된 학교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계속해서 요구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잘 어우러져서 이런 변화가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일본 문부과학성에 나와 있는 정의를 일본 전국적으로 동시에 다 같이 쓰고 있습니다. 후쿠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세 가지가 있는데요. 첫째는 지식 능력, 둘째는 사고 판단 및 표현 능력, 셋째가 태도 및 인간성입니다.
이 세 부분에 대해 학습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이 학습한 내용을 어디에 쓰는지에 대해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 바로 일본에서 학력의 정의입니다.
전국 학력 테스트는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3학년이 보는데요. 국어, 수학, 영어, 이과 계열. 이렇게 네 가지 문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A라는 항목은 기본·기초, B라는 항목은 적응 능력을 평가합니다. 학력 테스트에 태도 및 인간성에 관련된 것들은 들어가지 않고 앙케이트 조사를 통해서 참고 자료로만 활용합니다.
다른 지역의 선생님들께서 ‘왜 후쿠이는 이렇게 학력이 높은가?’ 질문하시면 후쿠이의 선생님들께서는 ‘우리는 그냥 당연한 걸 합니다’라고만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수업 연구 같은 것을 제도화해서 굉장히 엄중하고 철저하게 진행하는 게 큰 부분인 것 같아요. 실제로 교재 연구라든지 매일같이 진행되는 부분에 있어서 선생님께서 표현하시기를 ‘굉장히 차분하고 철저하게 수업이나 교육 활동들을 준비하고 진행한다’라고 하세요.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매뉴얼스럽게 진행한다’는 느낌이 굉장히 강해요.
또 학부모들이 많이 협력합니다. 단순히 말로만 협력하는 게 아니라 학교에 도울 일이 있으면 실제로 와서 적극적으로 도와주세요. 예를 들면 2회의 공개 수업을 하는데 당연히 보호자가 오고 다른 지역의 교사분들께서도 일부러 휴가를 내서 공개 수업에 참여하는 경우도 많은데요. 공개 수업 때 손님이 오면 접수하거나 안내하거나 테이블 세팅하거나 이런 것들을 부모님들이 자원봉사를 하시는 거죠.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교사의 하고자 하는 의지. 이게 가장 크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수업을 준비하는 것도 그렇고요. 연구회가 많은데 교사 한 명당 연구회에 기본 3개 이상 소속되어 있어서 교과 연구에 참여하는 비율도 굉장히 높고, 실제로 같이 연구하는 활동에 시간을 많이 쓰세요. 주말에도 이런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시는 분들이 많고요.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학교 문화’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대부분의 선생님들께서는 교육이 좋고, 학생들이 좋고, 가르치는 게 즐겁고, 스스로도 잘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선생님으로서의 삶을 선택하셨을 텐데요. 실제로는 학교 문화가 교수-학습 활동을 가장 중시하는 방향으로 형성되어 있지 않으면 점점 교사의 열의도 떨어지기 쉽고, 자연스럽게 선생님께서 학생을 가르치는 상황이 굉장히 안 좋아져요. 결국은 학교 문화를 어떠한 식으로 계속해서 좋은 방향으로 끌고 가는지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에서는 교사를 희망하고 지원하는 학생들이 적다 보니까 고등학생들을 타깃으로 한 이벤트들을 하고 있어요. 예를 들면 고등학생들을 교원 양성을 위한 대학의 학생들과 매칭을 해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대학교를 견학하거나, 수업에 참여해 보는 등 여러 경험을 통해 교사라는 직업에 대해 관심을 높일 수 있게 하는 이벤트들을 매년 실시하고 있습니다.
덧붙이자면 일본에서 선생님은 공무원 중에서 높은 급여를 받는 공무원 축에 속하기 때문에 실제로 급여 자체를 더 올리는 것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지금 일본은 전체적으로 텍스트 중심의 교육에서 탐구 중심의 교육으로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고요. 기존에 있는 전달식 방법으로는 앞서 말한 학생의 능력을 키워주는데 교육적으로 좋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탐구 학습으로만 이 부분을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데요.
다만 이 탐구 학습이라는 것도 기본적으로 선생님이 직접 경험하고 체험해 보지 않으면 아이들이 탐구 학습을 하는 데 있어서 적합한 도움을 줄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학생 때부터 또는 선생님이 되고 나서도 탐구 과정에 대해 본인이 경험함으로써 아이들이 어려움을 겪을 때 옆에서 정확하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얼마나 깔끔하게 정리해서 아이들이 이 지식을 굉장히 쉽게 외울 수 있게 하느냐, 어떻게 잘 전달하느냐가 교원의 핵심 능력이었다면 이제는 그게 통하지 않는다고 일본에서는 판단합니다. 그러면 지금은 뭐가 필요한 것이냐… 아이들의 지금 표정, 요즘 저 아이의 어떤 행동들을 보면서 일종의 카운슬러와 같은 느낌의 선생님이 되어야 하는 거죠. 지식만을 전달한다면 구글이나 챗 GPT가 훨씬 더 잘 알려줄 수 있기 때문에, 이제는 배움 속에서 최적의 개별 학습을 위한 배움의 과정을 잘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정말 좋은 선생님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도농 복합이 더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한 군데만 치우치지 않고 농업이면 농업, 도시면 도시, 이렇게 복합적인 부분들이 후쿠이랑 환경 자체가 거의 같아요. 강원도에서도 그것은 강점이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돼요.
보통 수업이 끝나면 학생의 반 정도는 학원으로 갑니다. 학생들이 교내에 많이 남는 경우는 흔치 않고요. 여름방학 겨울방학에 핀 포인트로 어떤 학생들한테 필요한 무언가를 제공할 수는 있죠.
후쿠이에서 기초 학력을 위해 특별한 제도를 딱히 시행하고 있다기보다는 탐구 학습이야말로 굉장히 중요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교과서에 나와 있는 게 아니라 스스로 체험하고, 자연을 느끼고, 어떤 것에 대한 의문이 생기거나 호기심이 발동하면 탐구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거예요. 강원도처럼 적은 인구가 오히려 훨씬 더 강점으로 작용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도농 복합 지역이면 논이 많으니까 논에만 가더라도 엄청나게 탐구 과제는 널려 있죠. 자신이 궁금한 것에 대해 탐구 과정을 활용해서 지역에 돌아다니면서 사람들한테 물어보면 지역사회에 있는 분들이 굉장히 많이 협력해 주시거든요.
당연히 저는 후자, 탐구학습을 하는 것이 당연히 낫다고 생각하는데요. 학원에 가서 시간을 잔뜩 들여서 지식만 열심히 외워서 시험을 보면 점수가 올라가는 건 당연한 거죠. 그런데 단순히 그런 방식으로는 학생들의 주체성이나 스스로 탐구하고 공부하는 능력, 스스로 공부하고 책임지고 탐구하는 자세가 절대로 생겨나지 않아요. 그런 주체성을 기르지 않고서는 아무리 지식만을 외워서 시험을 본다 한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항상 후쿠이에서는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냥 아주 기초적이고 당연한 것을 한다.’ 이게 너무나 당연한 거죠. 아마 한국도 비슷하겠지만 일본에서는 3년에서 7년 안에 무조건 교원이 다른 학교로 이동을 해야 되는데요. 이렇게 이동시키는 이유 중 가장 큰 목적은 여기에서 좋은 활동을 했던 선생님이 다른 학교에 가셔서 또 다른 리더가 되어서 그 학교의 분위기와 환경을 만들어내는 데 있습니다. 그렇게 학교 문화를 형성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실제로 후쿠이 자체가 그렇게 큰 현은 아니기 때문에 그 선생님들이 돌고 돌면 결국 후쿠이현 자체가 교육 환경의 변화를 비롯하여 기존에 해왔고 앞으로도 지속하고자 하는 탐구 학습을 좀 더 제대로 끌고 갈 수 있지 않나 이렇게 생각합니다.
학생들이 암기 위주로 자리에 앉아서 수업 시간은 계속 늘어나면서 문제집만 푸는, 이러한 방식 속에서는 실제로 학습 부담을 줄여줄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게 딱히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이 흥미를 갖기는 어렵다고 생각하고요.
그럼에도 교사 입장에서는 교재의 선택이라거나 숙제를 낼 때, 또는 아이들한테 말을 걸 때의 기술적인 부분에서 흥미 유발을 위한 궁리를 해야 할 것 같아요. 아이들이 지루하지 않도록 최신의 자료를 이용한다든지 관심사를 반영해야겠죠. 일단 부담을 갖는 순간에 그 아이는 이미 공부하고자 하는 의욕이 확 떨어지기 때문에 그럴 때일수록 선생님이 아이들한테 그 주제에 대해 관심있는 친구와 연결해주거나, 선생님이 말하는 방법을 통해서 아이들이 흥미가 떨어지지 않게끔 하는 방법들을 계속해서 고민하시는 게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본은 지방 소멸에 대한 우려가 많습니다. 후쿠이도 마찬가지인데요. 인구가 많이 줄고 있기 때문에 예를 들어 초등학교나 중학교 같은 경우에 학교에 아이들이 부족하니까 하나로 통폐합하고, 폐교시키고 이런 일들이 진행되는데요. 일본에서 중학교까지는 의무 교육이니까 초등학교랑 중학교를 통합시켜서 9년제로 일관되게 수업을 끌고 가는, ‘의무 교육 학교’라고 부르는 학교들을 이제 중앙에서 정책적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한 가지 꼭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어요.
예를 들어 탐구 학습 같은 경우에 실제로 학생들한테 지도를 하다 보면 바로 눈에 보이는 변화가 있지 않잖아요. 제대로 안 되는 것 같으면 마음이 초조해지고, 또 위에서는 빨리 이전 방식으로 돌아가자는 압력이 오기도 하고, 그래서 전달식 교육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사토 마나부 선생님께서도 말씀하셨고 저도 현장에서 많이 느꼈는데 정말 그런 모든 것들을 극복하고 교사가 본인이 목표했던 방식으로 한 가지를 3년간 포기하지 않고 진행하면 반드시 변화는 나타납니다. 그래서 그 부분을 꼭 유념하시고 최소 3년은 계속해서 진행 해주셨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매거진 설 특집호 목차
여는 글_모두가 특별한 교육, 설
1. 시론
2. 특집: 학력, 뭣이 중헌디?
3. 학교 이야기
4. 인터뷰: 후쿠이현 왕린펑 교수
5. 책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