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진이’가 울었다 / 2000년 4월 6일
아이들이 무척 떠든다. 무엇이 그리 바쁜지 정신이 없다. 점심시간에 진이가 울었다. 김치와 호박을 못 먹는다고 꺽꺽 울었다.
초등학교 1학년 담임을 하면서 썼던 교단일기를 옮겨봤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0년도 더 지난 어느 하루의 일입니다.
부모 품에 있던 아이가 처음 학교에 들어와 급식을 먹는 장면을 상상해 보세요. ‘두 부모에 한 아이’라는 말이 있지요. 부모도 아이에게 김치를 먹여봤겠지요. 매운 것을 못 먹을 것 같으니까 물에 씻어서라도 먹여 봤을 겁니다. 그런데 사실은 매운 맛 때문이라기보다 입안에 들어오면 낯선 음식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겁니다. 온갖 감각이 첫 만남일지도 모르는 여덟 살 아이에게 호박과, 쑥갓, 김치는 어떤 느낌일까요. 다 먹지 않더라도 한 조각이라도 먹어야 한다는 담임 선생님의 엄격함 앞에 아이는 꺽꺽 울고 맙니다.
그깟 반찬 몇 가지 안(못) 먹는 게 무슨 문제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같은 생각입니다. 자신의 건강이나 신념을 이유로 먹고 싶은 것만 골라 먹고사는 게 흉이 아닌 세상이니까요.
안쓰럽지만, 예전이나 지금이나 학교 현장 곳곳에서 마주하는 모습일 겁니다. 체육시간 뜀틀 앞에만 서면 ‘얼음 땡’ 놀이처럼 멈추는 아이, 친구 관계가 서툴러 늘 혼자인 아이, 수학시간만 되면 ‘나는 못 해’하고 포기하는 아이, 리코더에 자신이 없다고 일부러 리코더를 챙겨 오지 않는 아이까지. 어쩌면 모든 아이가 학교 생활 어느 한 부분을 힘들어할 겁니다.
먹기 싫은 음식은 알레르기 때문에, 판화는 손이 베일까 봐, 친구와 다퉈 상처를 받을까 봐, 뜀틀이나 철봉은 손목을 삐거나 뼈가 부러질까 걱정이 앞섭니다. 꼭 배워야 하는 일인데도 이런저런 까닭을 들어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만들어 버립니다. 그렇게 우리 아이들은 김치 포기자, 뜀틀 포기자, 칼·가위 포기자가 되어갑니다. 저학년 때 하지 않던 일을 고학년이나 중학생이 되어 처음 하면 더 많은 부작용이 생길 수 있고, 아주 기본적인 일상 활동조차 두려운 일이 되어 더 멀어집니다. 익숙해져야 하는 많은 일, 다칠까 봐 혹은 아이들이 싫어해서 경험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면 평생 결핍으로 남을 수도 있습니다.
“내 자식은 내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하기 싫으면 하지 말라고 해!”
“그냥 내버려 둬.”
참 무서운 말입니다. 교육은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이 있다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뜀틀을 넘지 못하는 것이 아이의 신체 능력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두려움 때문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덧셈과 곱셈의 원리를 이해하지 못해 구구셈을 외우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처럼, 지금 김치나 시금치를 먹지 못하는 것은 알레르기 때문이 아니라, 낯선 음식이 갖고 있는 맛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 두려움과 낯섦을 선생님의 친절한 단호함과 친구들의 격려 속에서 도전하는 것이 교육입니다. 아이의 손을 잡고 같이 가주는 것도 친절한 것이지만 아이들이 용기를 낼 수 있도록 엄격하게 이끌어 주는 것도 친절한 것입니다.
편안함을 두들겨 불편하게 만들고, 익숙함을 자극해 낯설게 하는 것, 상냥해 보이지 않는 단호한 말이 아이가 용기를 낼 수 있도록 이끌어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런 단호하고 엄격한 친절이 훨씬 더 가치 있는 감정입니다.
서이초 선생님의 안타까운 죽음 이후 강원도 곳곳에 근무하는 선생님들을 만났습니다. 최근 들불처럼 일어났던 교사들의 외침이 학교를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언론을 통해서 들었던 교육활동 침해를 현장의 선생님들은 어느 정도 느끼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아동복지법의 ‘정서학대’ 조항이 학생이나 학부모의 신고만으로 교사의 교육권을 잠시나마 제한할 수 있게 되면서 교육활동 전반이 위축되고 있다고 하십니다. 교과시간 안에 하지 못한 과제를 남아서 하도록 하는 것. 정수기에 입을 대고 물을 먹는 아이에게 다른 아이들처럼 개인컵을 쓰라고 말하는 것. 급식 시간에 편식하지 말고 반찬을 고루고루 먹도록 지도하는 것. 이처럼 교사라면 당연히 해야 하고 할 수밖에 없는 말과 행동까지도 교육적 맥락과 상관없이 법률에서 정한 ‘정서학대’가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다수의 선생님이 느끼고 있고, 실제 사례를 말씀하기도 했습니다.
한 발짝 학교현장에서 떨어진 사람들은 신고된 대부분의 경우가 ‘협의없음’으로 결론 난다고 하지만, 사안 처리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은 상상 이상일 겁니다. 교육계는 큰 절망의 강을 건너고 있습니다. 엄격함을 품은 상냥함은 절망을 헤치고 나온 사람만이 지닐 수 있다는 말을 꼭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수학을 어려워하고 수학 공부를 포기한 학생을 ‘수포자’라 합니다. 수학 교과에 애정이 있는 선생님들과 전문가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냅니다. 수학교육과정의 난이도를 조절해야 하고 초등학교 때부터 수학을 더욱 친근하고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합니다. 개념 학습을 더욱 체계적으로 해야 하고, 아이가 이해하지 못한 경우를 대비해 보충할 시간도 마련하고, 대안 교과서를 만들기 위해 많은 예산을 학교로 지원하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수포자 없는 수학교육을 꿈꿉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김치 포기자, 뜀틀 포기자, 리코더 포기자를 구하기 위해 어떤 고민을 하고 있고 어떤 지원을 하고 있는가요. 상냥함이나 친절 속에 꼭 있어야 할 엄격함과 단호함을 다시 교실에 불러오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찬찬히 생각해 봐야 합니다. 김치를 포기하고 뜀틀을 포기하고 리코더를 포기하는 것이 바로 ‘학생을 포기하고, 자녀를 포기하는 교육입니다. 단호함과 엄격함이 친절과 상냥함 속에 다시 자리 잡아야 한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교육이 가능합니다.
“선생님, 김치 다 먹었다요.”
‘진이’는 한 학기도 지나기 전에 김치를 먹을 수 있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하지 못했던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자랑하는 빛나는 아이들을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가요. 우리 교육은 반드시 그 길을 가야 합니다.
글쓴이: 강삼영 모두가특별한교육연구원 원장
출처 : 교육언론창(https://www.educhang.co.kr)
매거진 설 특집호 목차
여는 글_모두가 특별한 교육, 설
1. 시론
2. 특집: 학력, 뭣이 중헌디?
3. 학교 이야기
4. 인터뷰: 후쿠이현 왕린펑 교수
5. 책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