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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가특별한교육 Jan 29. 2024

도대체, 학력은 무엇인가?

특집 | 학력, 뭣이 중헌디?

'경제가 중요하다.' 이 말에 크게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연스레 무수한 질문이 뒤따른다. 어떤 경제인가? 다같이 잘 사는 방식인가? 아니면 일부만 잘 나가는 방식인가? 첨단산업과 창업경제 중심인가? 아니면 굴뚝산업과 저임금-장시간 노동 기반인가? 

똑같은 문제가 강원교육 현장에도 있다. '학력이 중요하다!'
하지만 도대체 그 학력은 어떤 학력인지, 어떻게 키울 수 있는지 지적인 탐구와 논쟁보다는 시험 확대, 보충수업 확대 등 과거로 돌아가는 모습만 두드러진다. 이에 바람직한 학력 정책을 논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기 위해, 먼저 학력의 개념을 둘러싼 쟁점을 정리해 보았다. - 편집자 주



  2022년 교육감 선거의 최대 화두는 전국적으로 ‘학력 저하 논쟁’이었다. 특히 보수교육감 후보들은 학력이 저하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일제고사 실시와 그 결과 공개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최근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초등 3학년부터 고2까지 전 학년에서 국가수준학업성취도 평가를 실시하겠다고 하면서, 이러한 일제고사가 학력 향상을 위한 올바른 처방인지 다시 논란이 일고 있다.

  

  하지만 평가를 논하기 위해서 당연히 전제되어야 할 질문이 있다. 무엇을, 즉 어떤 학력을 측정하려고 하는 것인가? 그냥 ‘닥치고 시험’만 많이 보면 정말 학력이 높아지는가?


  본 글에서는 학력을 무엇으로 볼 것인지, 2022 개정교육과정이 전제하는 학력은 무엇인지, 기초학력의 쟁점은 어떠한지, 그리고 학력 향상을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는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도대체무엇이 학력인가?     


  학력은 말 그대로 ‘배움을 통해 길러진 힘이나 능력’이다. 따라서 학력은 교육을 통해 기르고자 하는 교육목표와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다. 전통적 학력관은 단편적인 지식과 개념의 습득을 강조하였고 객관식 시험으로 그 결과를 주로 측정하였다.


  반면, 새로운 학력관은 여러 시도교육청과 유관기관에서 참학력, 미래학력으로 칭하면서 구체화하는 노력이 진행되어 왔다. 경기도교육청은 ‘참된 학력’으로 칭하면서 학습을 통해 습득한 교과 지식사고력문제해결력창의력 등의 지적 능력과 성취동기호기심자기관리 능력민주적 시민가치 등의 정의적 능력까지 포함하는 포괄적이고 총체적인 능력으로 정의하였고(김경희 외, 2019), 


성열관 외(2016)는 학교교육을 통해 길러진 지성감성시민성이 조화롭게 발달된 결과라고 하였다.      


  이러한 새로운 학력은 ‘역량 중심 교육과정’과 밀접한 관련을 지닌다. 역량은 지식을 삶에 적용·활용하는 능력을 강조하고 정의적 능력, 태도도 중시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많은 연구들이 새로운 학력을 역량과 관련시키고 있다. 그러나 역량의 실체가 명확하지 않아서 즉, 역량의 구성요소는 무엇이고 어떻게 측정할 수 있는지 그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서 현장에 혼란을 주고 있다.



그러면학력관은 왜 변화하는가     


  교육목표, 즉 학력관이 중시하는 내용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달라진다. ‘새로운 학력’에 대한 요구는 시대적인 요청으로 과거의 학력관에 대한 변화 요구를 담고 있다.


  OECD의 DeSeCo 프로젝트에서는 ‘핵심역량’을 제시하였고, 대한민국 또한 2015 개정교육과정에서 핵심역량과 교과역량을 교육 목표로 도입하였다. 아울러 핵심개념, 일반화된 지식 등을 제시함으로써 개념기반 탐구학습, 역량중심 교육을 강조한다. 


  이와 같이 역량 중심의 새로운 학력관이 세계적인 추세인 것은 맞다. 즉, 대공장 - 대량생산 중심의 산업화 시대를 배경으로 형성된 지식의 일방향적 전달과 암기 위주의 선발식 학력관에 대한 반성, 그리고 사회 변화(시민성, 디지털, 4차 산업혁명 등)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학력관은 왜 자리잡지 못했는가?     


  그러나 역량을 상대적으로 강조하는 것이 자칫 지식교육을 소홀히 한다는 오해 내지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실제로 ‘학생 활동중심 수업’이 활동에만 너무 치중해 교과 핵심개념과 원리에 대한 이해를 소홀히 하거나 협업 능력 같은 정의적 영역에만 치우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은 먼저, 지식교육과 역량 함양이 어떻게 연관되는지 불분명했고, 둘째, 새로운 학력에서 강조하는 비판적 사고력이나 문제해결 능력, 창의적 사고, 의사소통 역량 등의 구성요소와 평가기준, 그리고 준거가 명료하게 제시되지 못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다시교육목표는 무엇인가?     


  결국, 학력 논쟁에서 핵심은 학력의 내용, 즉 지향해야 할 교육목표와 이를 평가하는 문제이다. 


  지금까지의 학교교육은 사실(facts) - 주제(topics) - 개념(concepts) - 일반화(generalization)·원리(principle) - 이론(theory)으로 이어지는 지식의 구조에서 단편적 지식에 해당하는 ‘사실과 주제’를 학습의 주된 대상으로 삼아 왔다(임유나 외, 2021). 

 

  이와 달리 2022 개정 교육과정은 ‘개념기반 교육과정’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개념기반 교육과정은 학생들이 일반화와 이론 수준까지 나아갈 수 있도록 개념을 중심으로 하여 하위 지식 요소가 교과 간 통용 가능하고 상호작용적인 개념적 이해로 연결되도록 하는 것을 강조한다(임유나 외, 2021).   


  개념기반 교육과정은 개념적 이해를 위해 사실과 기능을 알고 적용한다는 측면에서 단순 암기와 피상적 수준에 머물던 기존의 전통적 학습과는 대조적인 모습을 띤다(Murphy, 2017;임유나 외, 2021에서 재인용). 교수방법에서는 학생들이 사실이나 기능을 기초로 탐구과정을 통해 개념적 이해에 도달하도록 한다. 



개념적 이해고차원적 사고력이 학력의 본질     


 이찬승(2022)은 <역량을 그 자체로 직접 가르칠 것인가> 아니면 <‘개념적 이해’라는 질 높고 전이 가능한 지식교육을 통해 역량을 갖추게 할 것인가>의 논쟁에서 후자의 방향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개념에 초점을 둔 지식·역량 통합 교육(concept-focused content-competency integrated)’이라는 세계적 흐름(OECD Education 2030 중간보고서)과도 궤를 같이 한다는 것이 중요한 근거였다. 


  한편,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핵심 아이디어’도 강조되고 있다. ‘핵심 아이디어’란 교과 내 영역 수준에서 설정되는 빅 아이디어(Big Idea)로서 해당 영역의 학습을 통해 일반화할 수 있는 내용을 핵심적으로 진술한 것이다. 이를 실제에 적용해본다면, 일단 성취기준을 연계·통합·재구조화하여 핵심 아이디어를 발견하도록 수업을 설계해야 한다. 그리하여 단편적인 지식보다는 각 교과목의 핵심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지식·이해, 과정·기능, 가치·태도의 내용 요소를 유기적으로 연계하는 방향(교육부, 2022)으로 전환해야 한다.     


  결국 새로운 학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개념이나 핵심 아이디어같은 고차원의 지식 그리고 고차원적 사고력(문제해결능력창의적 사고력비판적 사고력 등)을 목표로 삼고 이에 대한 수업과 평가를 강화해야 한다.      



학력은 어떻게 기를 수 있는가     


  일부에서는 일제식 평가를 확대하여 객관적인 진단과 평가, 그리고 경쟁을 강화해서 학력을 제고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한다. 그러나 새로운 학력관이 강조하는 고차원적 사고능력은 객관식 위주의 일제식 평가로는 측정이 어렵다. 객관식 평가가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가성비는 좋다. 다만 진정한 의미의 학력을 측정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결국 서‧논술형 평가, 프로젝트 평가 등 개방형 과제를 제시하는 다양한 평가방법의 비중이 확대되어야 한다. 그리고 핵심 아이디어 같은 고차원의 지식, 역량·기능 영역에 대한 평가기준과 평가 방법을 마련하고 지원해야 한다. 더불어 평가의 타당도 확보를 위해 교육목표와 수업-평가의 연계성을 강화해야 한다. 


  거칠게 요약하면 고차원의 지식과 사고력을 키울 수 있는 수업, 그에 어울리는 수준 높은 평가를 통해서, 개념적 이해와 적용·활용 능력도 뛰어난, (최소한 인지적 차원에서는) 지성을 갖춘 아이들로 키워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기초학력 보장은     


  기초학력의 정의는 다양한데, 흔히 일종의 조작적 개념으로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나 교과학습 진단평가에서 ‘기초학력’, ‘기초학력 미달’로 표시되는 주로 교과에서의 최소 성취수준으로 정의된다(박일수 외, 2019).


  기초학력보장법령에서는 학생이 학교 교육과정을 통하여 갖추어야 하는 최소한의 성취 기준을 충족하는 학력으로서 <최소한의 성취 기준>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43조 제1항에 따른 국어, 수학 등 교과의 내용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데 필요한 읽기·쓰기·셈하기를 포함하는 기초적인 지식, 기능 등으로 정의하고 있다.      

  기초학력 보장이 공교육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데에는 모두 동의하지만 그 방법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분분하다. 우선 표준화 평가 실행, 평가결과 공개, 경쟁 유발을 강조하는 입장이 있다. 이에 반해, 기초학력 저하는 다양한 원인에서 비롯되기에 정확한 원인 진단과 이에 따른 다중적이고 전문적인 지원을 더 강조하는 입장이 있다.


이대식(2022)은 기초학력 부진 학생의 특성으로 

- 첫째, 난독·난산증을 갖고 있는 학생들, 

- 둘째, 경계선 지능 및 경도 지적장애 학생들, 

- 셋째, 심리 정서적 문제가 있는 학생들 즉, 무기력함, 불안함, 회복 탄력성 부족, 낮은 자존감, 돌봄 여건 열악, 스트레스에의 내성 부족, 불리한 가정환경, 목표의식 부재, 자기관리 능력 부족 등을 지닌 학생들, 

- 넷째, 해당 교과의 핵심 개념, 어휘, 관련 선행 학습이 미흡하거나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의 학생들로 분류하고 있다.      


  이처럼 기초학력 부진의 주된 원인은 주로 경계성 지능 등 개인적 특수요인, 심리·정서적 요인, 건강·환경적 요인이므로 전문적인 진단과 이에 따른 전문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증상을 재는 기초학력진단평가는 하나의 과정일 수 있지만, 마치 특정한(전문성이 검증되지 않은) 시험을 강제로 보는 것이 궁극적인 처방인 것처럼 구는 것은 논리적 오류에 가깝다.     


  아울러, 기초학력과 밀접한 지능, 언어 발달은 유아기와 초등 저학년 시기에 급격히 이루어지므로 조기 진단과 개입, 그리고 예방적 접근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아동기의 읽고 쓰기 교육, 즉 문해력 교육의 강화는 기초학력 보장 측면에서도 매우 긴요하고 유용하다.     


혼란이 계속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과거의 학력관에 대한 비판은 무성한데 새로운 학력관으로 과감히 변화하지 못하고 머뭇대는 것이 현재 한국 교육의 현주소이다. 현재 강원교육은 아예 한발 더 나가서, 노골적인 과거 회귀(객관식 시험 확대, 일률적인 보충수업 및 야간 자율학습 강화 등)를 강조한다.  


  새로운 학력관으로의 변화를 제한하는 요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수학능력시험 등 국가 수준의 평가가 여전히 새로운 학력관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대학수학능력 시험에서 서·논술형을 도입하자는 의견이 많았지만 이번 2028 대입개편안에서 이루어지지 못했다. 특히 올해는 킬러수능 논란을 일으키며 학생·학부모의 수능에 대한 두려움만 키우고 있다. 즉, ‘수능이 중요하므로 시대적 요구와 새로운 학력은 큰 의미가 없다’ 류의 비전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 


  또한, 정합성의 문제가 있다. 교육목표-교육과정-수업-평가가 연계되어야 하는 데 그렇지 못하다. 수업방법은 토의토론식, 문제해결 중심, 소집단 학습 등으로 일부 변화되었으나 평가는(특히 중등에서) 여전히 교사의 평가 재량권을 최소한으로 하는 객관식 내지는 단답형 위주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다. 2028 대입개편안 시안에서는, 고교 내신에서 논술형 평가를 강화하겠다고 했지만, 수능 정책 등과 상호 충돌하는 부분이 많아서 아직 방향이 불분명하다. 


  그리고 학교 현장에서는 아직 교과서 중심 수업이 여전히 대세이다. 교과서 중심 수업은 진도 나가기, 즉 ‘무엇을 빠뜨리지 않고 가르쳤나’ 중심의 지식 나열과 암기를 강조한다. 이를 교육목표와 교육과정 중심 수업으로 전환해야 한다. 교과서의 지엽적인 내용을 넘어 성취기준과 핵심 아이디어, 개념적 이해와 이를 통한 역량 함양을 교육목표로 교과서를 재구성해야 한다. 


  이러한 교과서 중심 수업과 객관식 시험이 강력하게 작동하는 이유는, 실은 교권 추락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교사의 소신 있는 수업 재구성과 정성적 평가, 추가적인 지원보다는 학부모 민원이 잘 제기되지 않는 수업-평가의 표준화를 선호하는 구조가 있는 것이다. 더불어 쓰기 교육의 주요 수단이었던 일기 검사를 인권침해로 본 인권위 결정 등 학교의 교육활동을 옭아매는 외부의 규제도 지나치게 많아졌다.


  이 모든 한계와 저항을 뚫고 학력관의 선진화, 강원도 학생들의 진정한 학력 향상을 이루어낼 수 있을 것인가? 교육청의 변혁적인 리더십과 적극적인 지원, 이를 바탕으로 학교 현장의 분발이 요구된다. 


글쓴이: 이준희 모두가특별한교육연구원 정책팀장



<참고문헌> 

교육부(2022). 초⋅중등학교 교육과정 총론.

김경희 외(2019). 새로운 학력 지표 구성 및 측정 방안.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박일수 외(2019). 기초학력 향상을 위한 평가지원 도구 개발:2015 개정 교육과정을 중심으로. 강원도교육연구원.

성열관 외(2016). 새로운 학력 개념 정립 및 구현 방안.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이대식(2022). 기초학력 보장 정책의 방향: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차갑게. 출처: https://21erick.org/column/8934/

이찬승(2021). 개정 교육과정의 '교육목표와 수업지도', 이런 면이 중시된다! https://21erick.org/column/7399/에서 2023. 12.10일에 인출.

임유나, 한진호, 안서헌, 장소영(2021). IB PYP 기반 학교 교육과정 개발. 대구교육대학교. 

이준희 외(2021). 강원미래교육 2030 비전과 과제. 강원도교육연구원.




매거진 설 특집호 목차


여는 글_모두가 특별한 교육, 설
1. 시론
2. 특집: 학력, 뭣이 중헌디?
3. 학교 이야기
4. 인터뷰: 후쿠이현 왕린펑 교수
5. 책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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