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학력, 뭣이 중헌디?
기본학습능력에 있어서 문해력만큼 중요한, 특히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갈 우리 아이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능력이 바로 수학적 사고력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교육 유무에 따라 대도시와 지방 학생들 사이에 가장 두드러진 격차를 보이는 과목 또한 수학이다. 단순히 문제풀이 양을 늘린다고 풀리지 않는 수학교육의 난제를, 수학을 재밌어하는 '개념학습자'를 키움으로써 극복하자고 제안하는 최수일 선생님께서 기고를 보내주셨다. - 편집자 주
공교육에서 '수학책임교육'이라는 문구를 사용한지 제법 시간이 흘렀지만 정말 아이들의 수학 학습을 제대로 책임진 곳은 들어본 적이 없다. 국가도 지자체도 구호에 그치고 말았다. 나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수학교육혁신센터를 만들면서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수학책임교육’을 미션으로 내걸고 핵심 사업으로 수학 수업의 변화를 주장해왔지만, 공교육의 어느 누구도 수학 수업의 변화, 즉 학생의 사고를 끄집어내는 교과서와 그것을 기반으로 시작하는 수업, 그리고 학생들이 개념적으로 학습하는 과정의 큰 틀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수학책임교육은 누가 실현해야 하는가?
가장 쉬운 곳은 학교다. 학교가 수학 수업을 정교화해서 정규 수업 시간만으로 수학 학습을 끝내주고 방과 후에는 사교육으로 가지 않아도 되도록 책임을 져야 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아이들을 방과 후 수학 학습으로 내몰고 있다. 그것은 수업이 부실하기 때문이다. 정규 수업에서 수학 학습을 책임져주지 않기 때문이다. 입시 때문이라고 핑계대지 말자.
돌봄 개념과 비슷하게 지자체나 교육청 차원에서 수학 학습 돌봄 자원을 양성해서 지원하는 방안도 가능하지만, 돌봄에서는 수학 학습에 대한 책임을 지려고 하거나 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찾아보기 힘들다. 기껏해야 문제집 푸는 것을 도와주는 정도는 볼 수 있지만 공교육에서 감당해야 하는 개념적인 이해를 돕는 사례는 거의 없다. 그러니 전국 곳곳에서 사교육 기관이 이를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사교육 기관 중 대부분은 개념적인 학습보다는 문제 풀이 학습을 돕고 있어서 아이들의 학습 고통만 가중되고 있다. 수학 개념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못한 상태로 문제를 풀게 되면 수학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보다는 수학을 싫어하고 회피하는 부정적인 인식만 커진다. 수학에 대한 내적 동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우리 아이들의 수학책임교육은 누가 담당할 것인가?
특히 사교육 등 인프라가 부족하고 부모님의 돌봄이 충분하지 않은 농산어촌 아이들에게 수학 학습 지원이 가능할 것인가? 대답은 부정적일 것이다. 그런데 최근 나는 놀라운 깨우침을 얻었다. 아이들의 수학 학습 지원은 꼭 수학적인 능력이 뛰어난 부모나 교사만 전문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아니 성인이라면 누구나 이 일이 가능하다. 그 이유는 학습의 핵심이 '자기주도성'에 있기 때문이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의 미션은 ‘포용성과 창의성을 갖춘 주도적인 사람’이다. 이게 미래역량이다. 미래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은 포용성과 창의성을 갖추고 주도적인 사람이어야 한다. 아이들의 주도성은 성인으로부터 만들어지지 않는다. 전문가가 만들어줄 수 없다. 아이들 스스로 갖춰가야 한다. 주도성에 대해서는 다들 인정하지만 유독 수학 학습에 대해서만큼은 성인의 도움이 절대적이라고 생각하는 것부터 버려야 수학 학습에서도 주도적인 사람을 만들 수 있다. 오히려 수학 학습도 주도성을 전제로 해야만 가능하다는 인식과 믿음을 가진다면 모든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다.
정리하면 국가나 지자체, 교육청이나 학교가 수학책임교육을 해준다면, 즉 공교육만으로 충분한 수학 학습이 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지만 지금까지 수십 년의 역사에서 그런 것을 볼 수 없었던 과거의 경험으로 미루어 이 일은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다만, 공교육의 변화를 견인해낼 수 있다면 정말 좋은 일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래서 결국은 마을교육공동체에서 아이의 수학 학습을 지원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주도적인 학습을 할 수 있는 여유만 있다면 가능하다. 수학은 개념적인 학습이 중요하기 때문이고, 개념적인 학습은 성인 주도로 이루어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말 주도적인 학습이 이루어지면 수학 학습의 효과는 기존의 공교육에 보태서 더 큰 효과를 보장할 수 있다.
개념적인 수학 학습은 교과서만으로 충분하다
수학 교과서에는 매일 배우는 수학 개념이 있고, 그 개념을 정의와 성질로 구분하는 방법만 가르치면 된다. 수학을 학습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필요할 뿐이다. 아이들이 스스로 교과서의 수학 개념을 정의와 성질로 구분하여 정리하는 것이 개념 정리 학습이다. 수학 개념이 정리되면 우리가 원하는 바, 아이들은 수학을 좋아하게 되고, 수학에 대한 내적 동기가 생긴다. 수학에 대한 지적인 성취감을 느끼기 때문에 중고등학교에서도 성인의 큰 도움 없이도 지속적으로 공부할 수 있다.
개념적인 학습이라는 것은 정의와 성질을 다르게 접근하는 학습이다. 정의는 이해와 암기만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성질은 절대 암기만으로 충분하지 않으며 반드시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남에게 설명할 수 있는 수준으로 학습해야 한다. 본인 스스로의 힘으로 해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리고 해내면 수학을 좋아하게 되어 있다. 이것을 누가 도와줄 수 있을까?
만약 공교육에서 수학교육 활성화를 위한 정책을 편다면 모든 것을 제치고 수학 수업을 고도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수학 시간에 주입하고 가르치려 들지 말고 아이들이 주도적으로 수학 개념을 발견하고 자기 것으로 소화해 갈 수 있는 교수법이 필요하다. 가르치지 않아도 스스로 깨우치는 교수법은 정말 모든 교사가 해내야 할 큰 과제다. 이것을 정책적으로 확고하게 밀어붙이지 않으면 공교육에서의 수학책임교육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 일은 쉽지 않다. 특히 교육 당국이 변해야 하고, 교사들을 설득해야 하고 변화시켜야 하는 엄청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공교육이 이런 시스템을 갖추지 못하는 사이 많은 아이들이 방치되어 흘러갔다. 시급하게 이런 장치를 만들지 못할 것 같으면 과도기적으로 지역사회의 주민들이 나서서라도 메워야 한다.
지금은 수학교육의 위기의 시대다. 모두가 21세기 미래 세대를 양성하는 이 시기에 공교육이 미래역량을 키워주지 못하는 사태를 이제는 방관할 수 없다.
글쓴이: 최수일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수학교육혁신센터 센터장
매거진 설 특집호 목차
여는 글_모두가 특별한 교육, 설
1. 시론
2. 특집: 학력, 뭣이 중헌디?
3. 학교 이야기
4. 인터뷰: 후쿠이현 왕린펑 교수
5. 책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