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교대를 갔고 첫 직업으로 초등학교 교사를 14년간 했던 나에게 ‘문화인류학’은 뭔가 조금 쌩뚱 맞은 분야이다. 하지만 이것이 내 삶에 많은 영향을 끼쳤던 것은 분명하다. 학생에서 사회인으로 바뀌었던 첫 인생의 전환기에 접했던 ’문화인류학‘을 교사를 그만둔 제2의 전환기인 지금 다시 읽어보고 싶었다.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다》
한국문화인류학회 편저 | 일조각 | 2006년 8월 25일
어떻게? 왜? 문화인류학을 알게 되고 입문서를 읽었는지는 도저히 기억나지 않는다. 교대를 졸업했지만 교사가 되기 싫어서 무작정 다른 대학으로 편입 준비를 했던 나에게 문화인류학과로 편입하겠다는 목표가 생겼던 기억이 난다. 물론 편입은 실패하고 임용고사를 봐서 교사가 되었다. 다만, 문화인류학에서 배웠던 많은 것들이 내가 교사로서 잘 살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해주었다. 그래서 표면적으로 실패로 보였던 그 당시 1년여의 세월은 내 삶의 여러 가지 자양분을 주었다고 믿는다.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다》를 읽고는 생각나는 말이 있었다. ‘익숙한 것은 낯설게, 낯선 것은 익숙하게 보기’이다. 우리는 자신의 입장에서 보기 때문에 보통 익숙한 것을 편하게 생각하고 있고 낯선 것은 불편하게 생각한다. 그렇지만 내가 보는 것이 세상 그대로는 아니다. 같은 것을 보더라도 모든 사람은 똑같이 인식하지 않는다. 모두 각각 자신이 경험하고 배운 것을 토대로 세상을 판단하고 바라본다. 그러기에 내가 평소에 보던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볼 필요성이 있다.
문화인류학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해 세계의 여러 문화를 비교 연구하는 학문이다. 하지만 문화인류학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보통의 양적 연구와는 달리 그 문화에 들어가 오랜 기간 면담하고 참여 관찰하는 ‘문화기술지’라는 질적 연구 방법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보통 자신의 가치관(문화)이 세상에서 가장 보편적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내 가치관은 전혀 보편적이지 못하며 다른 문화의 관점에서는 대단히 인위적이고 편향적일 수 있다. 상황과 시대에 따라서 또 역사적 배경에 따라서 매우 다를 수 있다. 이러한 문화상대주의 관점으로 내가 아닌 그들의 시각에서 총체적으로 바라봐야지만 그 문화를 제대로 알 수 있고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문화인류학의 관점은 교사로서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아이들과 함께 지낼 때도, 수업을 준비할 때도 내 관점에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관점으로 보기 위해 노력했다.
쉽지는 않았지만, 아이들을 많이 관찰하고 함께 많은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다. 어떤 사건 사고가 있더라도 모든 일들은 상황과 맥락이 있다는 것을 믿었고 그 아이들의 상황과 살아온 역사적 배경을 알아보려 했고, 그래서 정말 본질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찾아보려고 했다. 그 덕분에 다행히도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무엇을 해줘야 하는 ‘대상’으로 보는 것에서 벗어나 하나 하나의 ‘존재’로 인식할 수 있었고 함께 살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수업을 준비할 때도 ‘내가 수업을 어떻게 할까?’라는 고민보다는 ‘아이들이 어떻게 배울 수 있을까?’라고 또 다른 관점으로 고민을 할 수 있었다.
맨날 자동차를 타고 출근하는 나의 관점 대신에 아이들이 등교하는 길을 그 시간에 함께 걸어서 해보기도 하고, 수업 시간에 앞에서 뒤만 바라보고 수업하는 내 시선에서 벗어나 아이들 자리에서 칠판을 바라보고 앉아 수업에 대한 고민을 해보기도 했다. 또 아이들도 다양한 관점과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수업을 준비했다. 무엇보다 나의 이런 생각을 나의 삶으로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 덕분에 사람으로서, 교사로서 조금 덜 부끄럽게 살아올 수 있었다.
문화인류학 책은 대중적이지 않기에 몇 권의 책을 추천하면서 글을 마치고자한다. 문화인류학 입문서로는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다》, 《처음 만나는 문화인류학》, 《인간이란 어떤 것인가》를, 교육을 문화인류학적 관점으로 바라보는 책으로는 서근원 교수의 《수업을 왜 하지》, 《수업에서의 소외와 실존》, 《수업, 어떻게 볼까?(아이의 눈을 찾아서)》김영천 교수의 《미운 오리 새끼(한국 초임교사의 일 년 생활)》, 박남기 교수의 《교사는 어떻게 성장하는가》가 내게 큰 도움을 주었던 기억이다.
문화인류학 덕분에 바뀐 관점은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나의 이해도를 높여줬고 결국은 내가 이 세상을 대하는데, 있어 조금 더 나를 편하게 해주었다. 교사를 그만두고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갈지 고민하는 이 시점에서 다시 읽어본 문화인류학 책은 내게도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글쓴이 : 이동규. 더 잘 살고 싶어서 올해 4월 초등학교 교사를 그만두었다. 14년간의 교직 생활을 여한 없이 행복하게 살았기에 후회 없이 교직을 그만들 수 있었다. 현재는 원주 샘마루 초등학교에서 시간강사를 하고 있다.
매거진 설 특집호 목차
여는 글_모두가 특별한 교육, 설
1. 시론
2. 특집: 학력, 뭣이 중헌디?
3. 학교 이야기
4. 인터뷰: 후쿠이현 왕린펑 교수
5. 책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