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이야기 - 현천고
혹시 여러분들은 ‘정담회’라는 말을 들어보셨을까요? 흔히들 ‘간담회’ 혹은 ‘차담회’라는 말은 쉽게 들어보셨을 듯해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뭐 비슷하답니다.
현천고에서 정담회라는 말이 시작된 시기는 2016년 즈음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해요. 제가 올해로 8년째 몸담고 있는 현천고는 2015년에 강원도 최초의 공립대안학교로 개교했어요. 다양한 개성의 캐릭터들이 다채로운 저마다의 속도로 시공(時空)을 넘나들면서 자유로운 비상을 꿈꾸는 학교를 만들어 보자는 나름대로의 긴요한 뜻을 품었더랬지요.
지금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냐고요? 음... 여전히 시끌벅적 좌충우돌 옥신각신 중이랍니다. 이야말로 살아있다는 역설적 증거이겠죠!
아무튼 다시 정담회의 어원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당시 저희 현천고도 회복적 생활교육을 기반으로 하여 사제동행(師弟同行)하는 학교문화를 일궈 가고 있었어요. 그리하여 수업에서도, 학급이나 학년 단위의 공감소통 프로그램에서도, 동아리 활동에서도 ‘신뢰써클’은 자주자주 눈에 띄는 소담한 장면이었지요. 이러다 보니 아이들 입에서도 “오늘 우리 써클 하는 거예요?”라는 말이 심심찮게 흘러나올 정도로 우리들만 아는 익숙한 메뉴 같은 것이 되었답니다.
응보적 접근을 지양하고 회복적 접근을 지향하는 교육적 선도활동에서도, 배려와 존중을 배우면서 누구 하나 소외되지 않는 안전한 모임인 신뢰써클은 아주아주 유용한 아이템으로 손색이 없었지요. 물론 어떠한 잘못을 하여 신뢰써클에 초대된 금쪽이들의 마음은 사뭇 달랐을 수도 있겠지만요.
하여튼 이 무렵에 저는 몇 분의 선생님과 함께 ‘써클(circle)' 말고 다른 보다 정겨운 말을 찾아내고 싶었어요. 그리고 그렇게 재탄생한 공감소통의 자리가 다양한 용도로 이곳저곳에서 이러한 그러한 저러한 사연을 지닌 아이들을 만나 더 확장되고 더더욱 빛나길 바랐지요. 결국 우리들이 찾아낸 말은 “정(情)+담(談)+회(會)”였던 거예요. 풀이하자면, “정다운 이야기가 오고 가는 소탈한 자리” 정도가 알맞겠네요. 이리하여 현천 정담회는 비로소 걸음마를 떼기 시작했고요, 올해로 여덟 살이 되었던 겁니다.
그러면 이제 정담회란 말의 뜻과 성격은 아셨을 거니까,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고 어떤 아이들을 만나는지 말씀드려 볼게요. 우선 정담회를 운영하는 주체는 크게 두 곳이라 할 수 있는데요, 정담회 교사 동아리 '서른즈음에'와 각 학년부입니다. '서른즈음에'는 또 뭐냐고요? 3년 전쯤부터 정담회 문화를 이왕이면 좀 더 체계적이고 일상적으로 꽃피우기 위해 제가 몇몇 분들과 동아리를 만들어 본 거예요. 우리들이 지금 만나는 아이들이 서른 즈음에는 어떠한 삶을 살고 있을까를 상상해 보는 재미를 곁들여 이름을 지었지요.
이렇게 서른즈음에와 각 학년부에서 정담회를 주로 운영하는데요, 희망하는 아이들로부터 신청을 받기도 하고, 선생님들이 필요한 아이들을 초대하기도 하고, 더불어 각종 교내외 생활 사안 등으로 회복적 선도활동이 필요한 아이들을 불러 운영하기도 한답니다. 주로 방과 후에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정도 한 아이를 여러 선생님들이 함께 만나 소소한 이야기에서부터 묵직하고 깊숙한 사연까지 진솔한 공감과 따뜻한 이해와 따끔한 조언들이 시냇물 흐르듯 넘나들게 되죠. 그러다 보면 하하호호 웃다가도 어느새엔 히힝훌쩍 울기도 해요. 가끔은 부모님들도 함께 참여하여 더 뭉클한 장면을 연출하곤 합니다.
정담회를 먼저 한 아이들이 친구들한테 입소문이라도 내게 되면 갑자기 신청자가 많아져 저희가 좀 곤혹스러워질 때도 더러 있긴 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일에 싸여져 있던 아이를 선물처럼 만나게 되는 날이면 그 짜릿함과 신비함은 순식간에 몇 곱절로 팽창하는 마술이 펼쳐진답니다. 이래서 정담회가 현천 맛집 제일의 시그니처 메뉴로 등극했는지도 모르겠네요. 여러분들도 현천 정담회를 경험하고 싶으시다면, 망설이지 말고 서둘러 『둔내면 경강로 4119호』로 방문해주세요. 매진될 수 있거든요.
[이** 학생 정담회 참여 소감]
정담회는 선생님들과 학생 간의 대화를 통해, 평소에는 좀 딱딱하기만 했던 사무적인 대화가 아닌 내면에 숨겨두었던 속마음을 풀어내면서 선생님들과 한 사람 대 한 사람으로 다가갈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정담회 경험이 여러 번 있었는데요, 그때마다 속에 응어리진 말들을 선생님들과 함께 나누면서 공감하고 소통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답답했던 것들을 어느 정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올 초에도 슬럼프와 기타 문제들로 인하여 왠지 모를 답답함이 쌓여져 정담회를 신청했지만, 선생님들이 올해 유난히 바쁘셨던 상황으로 인해 2학기가 되어서야 정담회를 할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꽤 지났어서 그때 당시의 문제가 아닌 다른 문제들을 이야기하게 되었는데요, 점점 도태되는 듯 한 기분과 우울증 그리고 어른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진솔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이번 정담회를 통해서도 선생님들의 진심 어린 조언들과 제가 잘 몰랐던 저의 소소한 장점들을 발견시킬 수 있게 해주셔서 매우 만족스러웠습니다.
[염** 정담회 참여 소감]
어느 날 지화도 선생님께서 갑!자!기! 저에게 “정담회를 해보는 건 어때? 선생님들이 널 알고 싶어 해.” 라고 물어오셔서 처음엔 좀 당황스러웠어요. 그런데 평소 정담회 얘기를 들은 게 있어서 딱히 나쁘지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하게 되었어요.
정담회에 초대되어 갔는데 예상보다 다양한 선생님들이 많이 오시고 분위기가 약간 어색해서 자꾸만 민망한 웃음이 나왔어요. 선생님들께서 저에 대해 이렇게 관심이 많은 줄 모르고 있었는데, 막상 선생님들과 이야기하면서 너무너무 감동을 받았어요. 민망하고 쑥스럽고 부끄러웠지만 선생님들과 마주보며 진실한 말들을 편하게 주고받아서 선생님들과 사이가 더 친근해지고 가까워진 것 같아서 보람 있었어요. 그래서 졸업하기 전까지 선생님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야겠다고 다짐했고요, 더불어 제 이야기를 들어주신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글쓴이: 지화도 현천고등학교 선생님
매거진 설 특집호 목차
여는 글_모두가 특별한 교육, 설
1. 시론
2. 특집: 학력, 뭣이 중헌디?
3. 학교 이야기
4. 인터뷰: 후쿠이현 왕린펑 교수
5. 책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