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남는 따뜻함 3
혼자 하는 여행을 좋아한다. 몇 번의 경험으로 도시보다 농촌 취향임을 알았다. 맑은 공기에 눈이 밝아지는 풍경도, 유명한 음식을 먹는 것도 좋지만 제일 좋은 건 여행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이다. 여행길에선 알 수 없는 용기가 생겨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말을 걸고, 어떤 연유로 우리가 만날 수 있었는지 자꾸 묻고 싶어 진다. 처음 보는 사람과의 스몰톡은 참 즐거운 나라 유럽여행이 잘 맞을지도...?
겨울날, 강원도 동해와 삼척을 거쳐 경북 울진을 둘러보고 서울로 향하는 길이었다. 울진의 작은 동네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안쪽으로 들어가 있는 작은 버스정류장이라 바로 찾지 못했다. 요즘은 보기 드문 철문을 옆으로 열고 들어갔을 때, 가운데 있는 난로와 옆으로 성당 의자처럼 생긴 좌석들이 눈에 들어왔다. 여행을 다녀온 지 3개월이 넘어 느낌 위주로 남아있는 기억을 되새겨보면 추위에 지친 사람들을 따뜻하게 녹여주는 동화 속 작은 간이역에 들린 것 같았다.
"학생이죠?"
할머니가 평일 낮에 홀로 있는 내 모습이 의아하셨나 보다. 크~~ 학생이냐는 말에 금세 기분이 좋아지는 걸 보면 나이가 들었는 게 분명하다.. 직장인이라고 하니 어려 보여서 학생인 줄 아셨다고 했다. 먼저 말을 걸어주신 할머니가 반가워서 어디에서 오셨는지, 어디 가시는 길인지 여쭤봤다. 신나서 묻는 말에 미소 지으며 대답해 주셨다. 거리감 없이 친근하셨던 말투가 참 좋았다.
덕구온천에 다녀오시다 댁으로 가시는 길이라고 하셨다. (덕구온천은 나도 가봤는데, 정말정말정말 추천한다. 누워있을 수 있는 뜨뜻한 온돌바닥도,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즐기는 노천탕도 최고다.) 할머니 덕분에 과거, 울진 북면에 무장공비가 침투했던 아픈 역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할머니와 친분이 있으셨던 사장님이 요 앞 초등학교를 졸업하셨다는 친밀한 이야기도 듣게 되었다. 옆에 앉아 계시던 우리 부모님 연배의 부부분들도 우리 대화를 들으며 미소 지으며 듣고 계셨다. 정류장이 아담해서 얘기를 하면 서로의 표정과 말을 다 보고 들을 수 있었다.
다정한 할머니, 울진 토박이로 박학다식하셨던 사장님, 미소 짓던 부부, 서울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던 커플, 회사원, 이 사람들을 품고 있는 아담한 정류장.
날이 좋았어서 그런가, 다 예뻐 보이는 날이었다.
서울 가는 버스에 올랐다.
이 분들은 왜 서울에 가시는 걸까? 서울에 가는 이유가 나처럼 즐거움을 쫒으러 가는 것이면 했다. 여행이든, 자녀집 방문이든, 맛집 탐방이든, 우리가 무난히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이 이유였으면 좋겠다.
이 부부가, 이 할머니가, 나보다 어려 보이는 청춘남녀의 눈에도 이 날이 예뻐 보였으면 좋겠다.
이 사람들의 하루에 평화와 안녕이 깃들길 바랐다.
짧은 순간 따뜻한 눈길과 대화를 주고받은 사람들이 차가운 곳에 던져지지 않기를,
혹시나 던져져도 서로에 기대어 꼭 다시 따뜻해지기를 진심으로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