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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권목 Feb 11. 2022

밀려 쓰는 일기: 다시_서울로 D-day

에세이_잠시 여행 9

해가 뜨기 전, 눈이 떠졌다. 

떠나기 전 무언가를 더 하고 싶은 조급한 마음 탓도 있었을 것이다.

고민하다 처음으로 해가 떠버리기 전, 

집(오늘 오전까지 내 집이라 부르기로 한!!) 앞 산책을 나가 나름의 일출을 보기로 했다. 

서울은 제주보다 춥다고 하니 미리 꺼내 놓은 코트를 입고 비가 와 헛헛한 마음에 질렀던 머플러를 매며,

만만의 준비를 하였다.

조금 어둑어둑한 이 길은 이전처럼 낯설거나 외롭거나 무섭지 않았고 

그냥 좋은 이유는 하늘과 구름이 아주 가깝게 느껴져서이다.

이후 한참 동안 이런 기분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해뜨기 전 구름은 푸른색이었다가 분홍색이었다가 점점 주황색이 되어 밝아졌다.

'장갑도 살 걸 그랬다...' 한탄하면서도 얼어버린 손을 주머니에 넣지 못하고 

그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모든 걸 담고자 연신 카메라 버튼을 눌렀다.

해는 뜰 듯 말 듯하며 한참을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았고

결국 그것이 떠 모든 걸 비출 때는 눈이 부셔 오래 보지 못했다.

해를 등지고서야 가끔은 살짝 감은 눈으로 뒤를 돌아보며, 그것이 비추는 것들을 오래오래 쳐다보며 걸었다.


집 앞 하도리 어촌계는 토요일 아침 7시에도 분주했다. 

감상도 그만, 아주 자연스러운 분주함에 나도 이제 자연스레 집에 돌아가야 함을 알았다. 

그렇게 미련은 많이 사라졌다.


어느새 6년 차 도민이 된 지인 B께서 감사하게도 픽업하러 오셨다. 

이 외진 집까지 택시를 어떻게 부를 것인가라는 걱정 없이 

마지막으로 기가 막히게 좋은 날씨 아래 해안도로를 달리며, 

B가 알려준 눈 덮인 한라산을 보며, 

아침을 먹지 못한 나를 위해 B가 제일 좋아하는 빵집에 들려 빵을 사 먹으며,

B와는 못다 한 이야기와 사는 이야기를 나누며, 

나중에는 꼭 제주시에서 술 한잔 하자는 말을 하며,

공항으로 향했다.

20대에 헤어진 B와 30대에 다시 만나 여전히 같은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 

제주와 싱겁지만 좋은 이별을 할 수 있었다.

자꾸 눈 덮인 한라산을 뒤돌아 보는 건 멈출 수 없었지만...


그리고 김포에 도착했다. 

아! 온갖 따뜻함은 1시간의 비행 동안 식어버렸다.

마지막 제주의 하늘은 푸른색이었는데 김포의 하늘은 회색이었다. 

하지만 아직 단풍이 든 가로수와 

명랑 핫도그에 줄 서 있는 구민들을 보며 그냥 잘 걸어가기로 했다. 

언제든 힘들 때는 다른 곳으로 갈 수 있음을 잊지 않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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