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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권목 Feb 09. 2022

밀려 쓰는 일기: 다시 서울로 D-1

에세이_잠시 여행 8

심란한 밤을 보내고 나니 마음이 많이 정리되었다.

어제의 마음은 더 놀고 싶다는 최후의 발악 같은 것이었을까?

아니면 날씨 덕분일까?

아무튼 소리 없는 발악을 마치고, 창문으로 보이는 하늘은 딱 하늘색이었다.


‘오늘은 많이 걷고 쭉 바다만 봐야겠다.’ 정말 그렇게 되었다.

단, 비를 제일 많이 맞은 하루이기도 했다.


과연 연인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차를 타고 헤맬 만한 오조 포구를 거쳐 

광치기 해변으로, 성산일출봉으로, 성산항으로 계속 걸었다. 

그 길을 성산일출봉이 함께 했다.

성산이 왼쪽으로, 우도가 보이는 곳을 향하여 숨어있는 길(올레 1길 코스)을 걷다 보면 

“호오이” 숨비 소리가 들린다. 

비가 내리는데 바닷속은 생각보다 잔잔한가 보다.

온몸으로 일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지금 이런 생각을 하며 걷는 내가 조금 부끄럽다.


인적 없는 길, 눈으로만 예뻐하고 싶은 들개와도 만났다.

아니 들개가 아닌가? 중년의 남자 앞에서 주춤하던 개는 그가 지나가자 안심하고 나를 따라다녔다.

우리는 같이 비를 맞았고 개는 내게 더 가까이 왔다.

임신을 했거나 출산을 한 듯 보이는 개에게 줄 것은 없었고 나는 개가 낯선 사람이다.

'너를 더 잘 아는 사람을 만났으면 좋았을 걸....'

같이 비를 맞으며 동질감을 느꼈던 것도 잠시, 

막무가내로 다가오려는 개를 큰 에코백으로 가로막으며 매정히 택시를 탔다.

보이는 풍경마다 지우고 싶은 개와 애틋한 성산일출봉이 따라다녔다.


오늘이 제주의 마지막이라면 종달리의 당근 케이크를 빼먹을 수 없다.

케이크 속 크림치즈는 늘 참지 못하고 먹어버린 걸 후회하게 하지만 마지막이니까 크게 잘라먹는다.

역시 인생 당근케이크이다.

구좌의 당근주스는 어디서나 맛있지만 비를 맞은 탓에 따뜻한 당근 차를 함께 했다. 

온몸이 금세 나른해졌다. 

오래도록 그곳에 있고 싶었는데 마지막으로 세화의 바다를 걷기 위해 세화리로 갔다.

제주에서 제일 선명한 기억으로 남은 세화리 해안도로를 걸었다. 

해질 무렵 바람이 센 해안도로는 그 기억과 달랐지만 가능한 눈에 많이 담으려고 애썼다.

애썼지만 센 바람에 금세 이것저것이 날아간다.

정신 차리고 싶을 때는 이 바람을 되새겨야겠다. 

뭐 짐을 싸다 보니 비우기는커녕 이것저것 많이 샀다는 것을 깨달은 게 현실이지만...


오늘은 28,585보를 걸었고 제일 많이 걸은 날이라 신났다.

마지막은 이렇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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