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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권목 Feb 07. 2022

밀려 쓰는 일기: 다시 서울로 D-2

에세이_잠시 여행 7

'음… 떠나기 싫어.' 눈을 뜨고 제일 심란했던 아침이다. 

원래 이 날의 계획은 이랬다. 


‘아침에는 참여하고 있는 글쓰기 모임의 글을 마저 쓰고 제출한 후, 간단히 점심을 먹고 

예약한 거문오름으로 향하여 원시림을 감상하다, 평대리 떡볶이 맛집에서 떡볶이를 포장하여 

저녁으로 먹고 모임에 참여한다.’


하지만 끔찍이도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눈앞에 바다만 있었으면 했다. 

밀려났다 다시 오고 파도 소리 외 아무것도 들리지 않게 귀를 꼭 막아 주는 바다.

혹했다.

마음은 무겁지만 글방을 째고 그러기로 했다.

 

당연하게 길을 잃을 때마다, 버스를 놓칠 때마다 이정표가 되어 준 성산일출봉으로 갔다.

대충 이곳은 내 마음속 제주 고향이 되었다.

정이 들어버린 곳에서 실컷 바다를 보고 커피 맛집에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었다. 

오랜만에 동기들 카톡방에 불이 나 킥킥대며 대화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때쯤 버스를 타면 거문오름에 무사히 도착하겠군. 완벽해!!’ 이런 생각을 하며,

거문오름에 가는 길 꽤나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글방 불참 소식에도 나의 남은 여행을 응원하는 초록 빛깔 다정한 마음을 받아 인류애도 충전했고, 

날씨도 걱정보다 괜찮았고 방금 마셨던 커피는 너무 맛있었다. 


혼자 덩그러니 방문자 센터 앞에 도착해 깨달았다. 

예약 시간은 1시 30분이 아닌 1시였다는 것을… 

충격이었다. 

내게 시간이란 이랬다.

며칠 전부터 약속 시간에 맞춰 가기 위한 시뮬레이션을 짜 놓고 

버스를 놓칠까, 지하철을 놓칠까 늘 여유시간을 계산하여 출발하는, 내가 시간을 헷갈리다니…

관리자 분은 “에고 7분 늦어서 못 가네요, 벌써 출발해버려서, 하필 오늘 마지막 타임이라…”라고 하셨다.

적절한 리액션을 찾을 수 없어 발을 빨리 돌렸다. 

다시 버스를 타러 가는 길, 웃기게도 비가 내렸고 버스는 50분 뒤에 온다고 했다. 

이제 이런 시스템에 꽤나 익숙해져 좌절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울고 싶었다. 

이런 하루인 줄 알았다면 집에서 얌전히 글이나 썼을 텐데....

번복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으나 이미 휘향 찬란한 감사 인사를 나눈 터라 너무 늦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카카오 맵만 보다가 택시를 잡고 이번 여행에서 가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던 

근처 책방으로 갔다. 


그때의 택시가 너무나 아늑해서 도착한 책방에서는 ‘아무튼, 택시’를 집었다. 

우연히 오게 된 이 동네는 서울의 ‘서촌’ 같은 곳이었다. 

중산간 지역 아기자기한 가게와 카페가 가득한 곳. 

오늘의 억울함에 보상받고자 이곳저곳 카드를 긁으니 기분이 괜찮아졌다. 

왠지 다 쓸데 있는 것만 산 것 같고 막 그랬다. 

다시 하늘이 파래졌다. 날씨도 마음도 오락가락한 이곳의 시간이 좋았다. 


“인생은 뒤통수 맞는 거야..”(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 중)라는 대사를 좋아한다.


뒤통수는 맞아도 언제든 괜찮아질 것만 같은 이곳이 좋았다.


내일은 제주를 떠나기 전 마지막 하루를 보내야 한다.

심란함에 폰만 바라보니 근처 가고 싶던 카페에 주 4일 아르바이트를 구한다는 공고를 보았다. 

'운명인가?!', 혹해서 웹사이트와 부동산 앱에서 근처 원룸을 알아보다 깨달았다. 

‘여기는 제주지.’, 오일장 신문을 보며 집을 구하고 육지인들은 경계의 대상인 곳. 

이리저리 뒤척이다 서울에 집이 있고 제주에는 세컨드 하우스가 있는 삶을 살고 싶다고 중얼거리며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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