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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권목 Jan 31. 2022

밀려 쓰는 일기: 다시 서울로 D-3

에세이_잠시 여행 6

비가 올지도 모른다고 했다. 

'서울로'를 앞두고 Y를 만났다. 


Y는 나보다 한 살 덜 먹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그이를 '동기'가 아닌 '친구'라 명명한다.

나보다 보름쯤 일찍 퇴사한 Y는 라식 수술을 하고 회복하자마자 탈색을 했고 

제주도에 있는 친구 집으로 내려왔다고 한다.(참고로 나는 퇴직하자마자 히피펌을 했다.)

평일에는 돌봄 노동을 하고 넷플릭스를 보다가, 

주말에는 친구 차를 타고 나들이를 나가거나 제주에 내려오는 친구의 친구들과 관광지를 돌아다니고 

술을 마신다고 했다.

Y는 가끔 서울에 올라가기도 하는데, 그곳에서는 제주에 있느라 못 만난 지인들과 술을 마신다.

 

서울에서는 분기 별로 한 번 만나기도 힘들었는데, 제주에서는 Y를 두 번이나 만났다. 

지난번에는 우도에 갔고 오늘은 김녕에서 맛있게 먹은 후 바닷길 산책을 하기로 했다. 

역시 계획대로 될 만큼 제주의 날씨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막 도착한 김녕은 눈부시게 파랗고 풍력발전기는 눈부시게 하얬지만 

바람에 눈을 뜨지 못해 제대로 감상할 수 없다는 게 문제였다. 

찜 해놓은 식당과 카페는 문을 열지 않았다.  

아무 곳에 들어가 밥을 먹고 나니 비가 내렸다. 

우리는 수많은 카카오 택시들에게 거절을 당한 후, 겨우 택시에 탈 수 있었고 

유명하다는 카페에 갔지만 만석이어서 나올 뻔하다 마침 일어서 주는 사람들 덕분에 

겨우 자리에 앉아 따뜻한 커피를 마셨다. 


비가 내리는데 차는 없어서 유명할 만한 그 카페에 눌러앉아 오래도록 얘기를 나눴다. 

대부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뭉뚱 거리다

서로가 아는 사람들의 업데이트된 소식들, 

20대 초 파릇파릇한 시기에도 학교 생활에 지쳐 둘이서만 반주를 하며 돌아다니던 추억들, 

결국 그런 뻔한 얘기를 하며 즐거워했다.

 

Y는 12월까지만 제주와 서울을 왔다 갔다 하다 다시 서울로 올 것이라 했다. 

그러고는 하루 종일 비 때문에 김녕을 즐기지 못한 나를 걱정했다. 

나는 이제 ‘김녕’하면 Y와 이 카페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기에 괜찮았다. 

‘술’하면 ‘Y’가 떠오르는 것처럼. 

그래서 술을 못 마시지는 않지만 ‘Y’랑만 마신다고 얘기하고 다녔던 것처럼. 


우리는 다음 주에 다시 학교 앞에서 만나기로 했기에 쿨하게 인사를 하고 각자의 집으로 갔다.   

밀린 일기를 쓰고 있는 지금까지 

우리는 약속대로 서울에서 만났고 카톡으로는 크리스마스, 신년 인사를 나누었지만, 

또 내일은 '새해 복 많이 받아♥'라는 카톡을 주고받겠지만, 

Y가 어디인지는 묻지 않을 것이다.

서울에  있을 것만 같은 Y가 아직 서울이 아니기를 속으로만 바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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