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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권목 Feb 17. 2022

숨 쉬는 시간

에세이_'나'와 '생각들'

숨이 턱턱 막힐 때가 있다. 분명 쉬고 있을 텐데 코에서만 맴돈다. 

몸이 무겁고 열이 올라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 의식하며 숨을 쉬어본다. 

아랫배까지 전달되도록 깊게 마시고 내쉰다. 

말이 쉽지, 상태가 좋지 않으면 가슴까지도 겨우 닿는다. 

이때 내가 정한 시간은 4초. 

숨이 아랫배까지 닿지 않더라고 일단 코로 4초 들이마시고 다시 코로 4초 내쉰다. 

그럴 때면 어깨가 얼마나 단단히 굳어 올라가 있는지, 

팔과 목에 얼마나 많은 힘이 들어가 있는지, 또 턱은 얼마나 올라가 있는지 알 수 있다. 

숨 쉬는 시간은 그런 시간이다. 

잠깐이라도 가만히 스스로를 알아채는 시간, 

긴장과 불안감에 잔뜩 힘들어 간 나를 의식하고는 잠시 토닥거리는 시간, 

그리고 마침내 진정한 휴식으로 인도하는 시간. 


물론 진정한 휴식으로 가기까지는 험난하다. 말랑말랑한 의지와 실행력으로는 어림없다. 

보기보다 산만하고 잡다한 생각으로 가득 찬 머릿속은 도무지 비워지지 않는다. 

명상이 그렇게 좋다는데 눈을 감으면 더욱 생각들이 꼬리를 문다. 

별로 중요하지는 않은, 이를 테면, 

‘아까 본 당근 마켓 물건 찜 해놔야 되는데, 그때 추천받은 게 뭐였지?, 내일은 점심에 뭐 먹지?, 내일 미세먼지랑 날씨가 어떻다 그랬지? 비 오나? 그럼 신발은 뭐 신지?’ 등등 

끊임없이 생각을 이어간다는 사실이 매번 놀랍다. 

이렇게 오늘도 명상은 실패!! 머리 비우기는 실패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숨은 맘껏, 깊게 쉬지 않았냐고, 모처럼 쉰 것 같다고 합리화를 하며(이조차도 생각을 이어가며..) 스르륵 잠이 든다.

언제 잠든지도 모르게 드는 잠은 늘 반갑다.


이렇게 야매로 숨 쉬는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사실 이를 처음으로 알려주신 선생님은 죄송하게도 대단하신 분이시다. 나의 첫 번째 요가 선생님!! 

그녀가 가르쳐주는 요가 수련법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너무 좋다는 엄마와 동생을 따라 

무작정 지역 청소년 수련관에서 주관하는 단체 강습 요가를 시작했다. 

요가 외에도 에어로빅이나 청소년 활동 연습실로 쓰이던 비좁은 공간에서 

여러 사람들과 함께 해 힐링의 분위기나 일대일 코치 같은 건 없었지만 

냄새나는 매트에서 각자의 몸과 호흡에 몰두하는 것이 좋았다. 

뭐든 시작이 100개, 기본이 1000개인 선생님의 구령에 따라 

다리와 목을 들어 단전을 두드리고 개구리 자세로 엉덩이를 들었다 내리면 땀이 흠뻑 났다. 

분명 내가 생각한 요가는 이런 게 아니었는데... 각종 요상하고 격한 자세로 몸을 움직이고 

어떤 때는 벌을 서는 것 같이 한 자세로 40~50분 동안 버티기도 했다. 

물론 나는 중간중간 꿈틀거렸다.

나중에 알았는데 우리 선생님의 전문 분야는 파워요가로, 

오랜 시간 요가 수련을 하신, 지도자들의 지도자셨다. 

체지방 0%에 달하며 온몸이 근육인 부리부리한 70대 여성의 모습은 

흡사 기인에 가까워 보였고 수련생들은 광신도 마냥 그녀를 따르고 전도했다.

나, 엄마, 동생도 역시 그 무리에 포함되어 이것 해라 저것 해라 아빠를 못살게 굴었다.


고되지만 개운한 수련 후, 마침내 모두가 염원하는 사바아사나. 

매트에 누워 턱을 조금 내리고 골반 넓이만큼 벌린 다리는 힘을 풀고 

손바닥은 엉덩이 옆에 천장을 바라보게 한 후, 역시 힘을 뺀다. 

이어 마음의 눈으로 몸 이곳저곳을 살피고 의식적으로 깊게 숨을 마시고 내쉬다 자연스럽게 호흡한다. 

어느 날은 온갖 잡생각이 끊이지 않고 도저히 빠지지 않는 힘 때문에 영원히 가라앉을 것 같은 무게감을, 

다른 날은 잠시 낮잠을 잔 것 같은 개운함을, 

또 다른 날은 이대로 세상이 멈췄으면 좋을 것 같은 나른함과 함께 온몸이 훈훈해짐을 느꼈다. 

새삼스레 숨 쉬는 법을 배우고 연습하며, 

나는 왜 이 시간을 그렇게 아까워하고 다른 것들을 해낼 거라는 핑계로 

조급함만 키웠는지 정말 모를 일이라고 씁쓸해했다. 


수업이 끝난 후, 한 번은 어려운 자세를 묻기 위해 그녀를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녀를 많이 좋아하면서 어려워했기에, 평소에는 인사만 했었기에 

나름 용기를 내어 다른 수련생들과 이야기 나누는 그녀를 기다리기로 했다. 

어떤 대답을 듣고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희미하지만, 

참지 말고 쏟아내고 자기처럼 제멋대로, 승질대로 행동하라는 말에 울었던 것만 기억난다. 

아마 형식적인 질문 뒤에 숨겨 놓은 고민과 변하고 싶다는 마음을 읽어낸 것이겠지. 

쏟아낸다는 것이 어떻게 하는 것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이거나 힘이 들 때는 숨을 쉬기로, 

한숨이라도 시원하게 내쉬기로 마음먹었다.


첫 번째 요가는 어떻게 끝이 났고 2019년 취업을 했다. 

이후 두통과 헛구역질을 달고 살았다. 

수유시장 명의를  찾아간 결과, 산소가 머리까지 잘 전달되지 않아 그런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침 치료는 필요하지만 약은 필요 없다고 했다.

그리고 숨차게 달리는 것과 클라이밍을 추천하지만 

보기보다 속에 흥이 내재된 듯하니 클럽이라도 가서 춤을 추라고 했다. 

속에 있는 것도 좀 풀고 땀도 내고 흥도 발산하라고!! 

역시 명의다. 진료도 해주고 맘도 알아주고 해결책도 제시해주다니!! 

명의 선생님도 흡사 자연인 혹은 락커와 같은 기인의 모습이었다. 

내 귀인들은 왜 이리 다 인상 깊은 모습으로 나타나는 걸까… 내가 너무 무난해서 일까... 

아무튼 맘에 맞는 점쟁이라도 만난 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고, 

난 클럽은 못 가고 3개월쯤 건전하고 신나게 자이브를 추었다. 

헛구역질도 안 하고 한참 신났었는데 뻣뻣하게 굳은 골반을 움직이지 못해 힘을 주다 무릎을 다쳤다. 

무릎이 괜찮아질 때쯤 2020년 코로나19로 댄스교습소는 죄인이 되었다. 

무거운 1년이 지나갔고 2021년 설날쯤에는 정말 겨울 곰이 되었다. 

어디를 가도 꽁꽁 싸매고 웅크리고 싶었다. 

더욱이 연초 무언가 라도 해야 될 것 같은 부담감과 갈팡질팡하는 마음에 지쳐 모든 것을 놓아버렸고 

몸도 함께 놓았다. 

숨 쉬기 어려운 날들이 반복되었다. 다시 헛구역질을 시작했다.

사는 모습이 맘에 들지 않아 요가를 시작했다.


유튜브 요가는 신세계였다. 

이번에는 나만 깨어있는 고요한 시간에 불을 끄고 몸에 집중하며 숨을 쉬고 땀을 흘렸다. 

수리야나마스카라, 빈야사, 하타 등등 전에는 몰랐던 기본 요가 용어들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오랜만에 숨을 쉬고 몸을 깨우는 시간이 좋아 

1년 조금 넘게 남보다 일찍 일어나 따뜻한 물을 마신 후, 

좋아하는 것들을 하다 숨 쉬는 시간을 이어가고 있다. 

날씨가 너무 좋은 날에는 요가 대신 아침 산책을 했다. 

내가 바라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경우는 드물지만, 

그래도 '숨은 쉬고 있잖아.' 하며 전보다는 한결 편하게 보내는 나날이다. 

숨을 잘 쉬고 있음에도 가끔 막힐 때도, 아니면 이 시간을 다시 소홀히 여길 때도, 

숨을 쉬는 척하며 스스로를 기만할 때도 물론 있다. 

하지만 늘 되돌아와 위안을 받은 것처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지. 

대체할 수 없는 휴식을 나에게 선물해야지. 

내일도 봐요 나마스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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