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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권목 Feb 18. 2022

나의 살사 연습기

에세이_그깟, 살사

"퀵, 퀵, 슬로우-, 퀵, 퀵, 슬로우-"

살사를 배운 지 겨우 한 달이 조금 지나 우리 반은 LV. 2가 되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쑥스러운 눈인사와 함께,

수업을 시작하는 그 순간까지 쭈뼛쭈뼛 각각의 스텝을 밟으며 거울 속의 자신만을 들여다봤는데

어쩐지 점점 반가워진다.

'다들 살사에 진심이시군요?'    


정말 살사를 배워야겠다고 다짐한 건 활발히 걸어 다니던 제주에서였다.

평소의 정적인 생활과 다르게 마구 움직이자, 힘들었지만 좀 살아 있는 것 같았고

한라산을 다녀온 날, 자이브를 추다 다쳐 수시로 쑤시고 애렸던 왼쪽 무릎도

이제는 잘 쓸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아무튼 그 살아 있음에 힘 입어,

‘코로나19가 창궐하는 지금도 제주에 있는데 아직 한 번도 코로나19 감염 소식이 없는

동네 댄스 학원(늘 예의주시하고 있었다.)을 마스크 쓰고 다니는 게 어떠한가!!’

라는 다소 이기적인 합리화를 시작했다.

직장 생활 중 잠시 배웠던 ‘자이브’, 그 리듬을 타고 활발하게 움직였던 내 모습이 갑자기 그리워졌다.

춤이라도 추지 않으면 겨울 내내 움직이기 싫어 집 안에 꽁꽁 틀어박혀 있을 내가 떠올랐다.


11월, 서울에 와서 바로 12월 살사 초보반을 등록했다.

역시나 살사를 시작하기까지 한참을 침대에서만, 방안에서만

주로 폰을 보고 가끔 책을 보고 가끔 모니터에 자판을 두드리며

너무 춥다고, 너무 미세먼지가 많다고 핑계를 대며 나가지 않았다.

점점 머리가 아팠고 눈이 무거워졌으며 피부가 간지러웠다.

아프니까 한의사 선생님이 떠올랐다.

아프면 춤이라도 춰서 풀라는, 무당보다 용했던 한의사 선생님...

그렇게 무릎 부상과 코로나19 발발로 졸아 그만두었던 댄스 학원 문을 열었다.     


아주 낯선 이들과 거울을 보고 ‘원, 투, 쓰리- 파이브, 식스, 세븐-’ 스텝을 밟고

초면에 손을 잡고 호흡을 맞춘다.

제법 낯을 가리는 유교걸인 나에게는 역시 이 모든 상황이 거대한 진입 장벽이었지만,

이는 금방 사라질 것임을 안다.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는 몸을 박자에 따라 제대로 움직이기 위해 정신이 없어,

낯선 이의 손과 호흡은 신경 쓸 겨를이 없다.(물론 파트너 댄스에서 교감은 중요하지만...)

사실 우리 초보끼리는 맞춘다기보다는 각각 틀리지 않으려고,

가까이에만 있어도 전해지는 이 초조함과 긴장감을 상대에게 전하고 싶지 않아

숨도 제대로 못 쉬며 마스크 속 입으로만 연신 ‘원, 투, 쓰리-’를 되뇐다.

서로를 못 믿어 알고 있던 스텝이 꼬여 처음에는 당황하다가,


“어차피 옆 사람도 다 틀리고 있으니까 보지 말고 서로에게만 집중하시고 리듬을 놓지 마세요.”


라는 선생님 조언에 그제야 어깨를 내리고 리듬을 타려 한다.

이러다 보니 조금이라도 맞으면 아주 뿌듯하여 평소보다 경쾌하게 파트너와 하이 파이브를 하고

옆 사람에게로 간다.

그리고 비로소 선생님을 만났을 때 ‘이게 뭔가 된다는 느낌이구나!’ 싶어 나는 것 같다.


이렇게라도 움직이고 오면 얼굴에는 생기가 돈다.

못내 계속 이 리듬을 이어가고 싶으면 가족들이 없는 방구석에서 스텝을 밟아본다.

다른 수강생들 역시 가족 앞에서는 뭔가 쑥스러워

주로 빈 회의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하다가 “방금 뭐 했죠?!”라고 들킨다고 했다.

자이브를 배우던 시절, 점심시간 문을 잠그고 배부른 몸을 일으켜

‘설마 저 창문으로 내가 보이지 않겠지?’라고 생각하며

살며시 연습을 했던, 아주 작은 내 사무실이 갑자기 그리워졌다.

집에서는 낯섦에 굳어있던 몸이 한결 풀려 학원에서 보다 부드럽게 움직이고 몸짓도 좀 과해진다.

양말을 신어 미끄러워서 그런가 몸이 홱홱 돌아가 신나다가도 이내 스스로를 진정시킨다.

거울을 보면서 하니 살짝 현타가 와 웃기지만,

다음 시간에는 덜 긴장하고 매끄럽게 하고 싶은 마음에 계속 발을 움직이고 어깨는 내리려고 노력한다.      


당황하지 않고 계속 리듬을 타며 춤을 이어 가는 건 쉽지 않다.

가끔은 실수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강해져 잔뜩 힘을 주고 턴을 하다 휘청한다.

코어가 1도 없어 그런가 심란했는데 선생님이 힘을 빼면 오히려 정확히 할 수 있다고 말해주셨다.

‘정확’이라는 말에는 늘 힘이 들어가 있다고 생각했다.

실수했다는 말이 듣기 싫어 늘 힘을 주고 잘하려고 부들거렸다.

스스로도 과한 긴장감을 느끼며 힘을 빼야겠다 했지만

힘을 빼면 이조차도 못하게 되는 거 아닐까 하고

다시 힘을 주고 목을 뻣뻣이 세웠다.

추운 아침, 전기장판 밖으로 나가기 진짜 싫은데

좀 더 부드럽고 여유롭게 추고 싶어서 애써 마음을 다잡고 요가도 해본다.

굳어있던 어깨, 목이 풀리고 코어 근육이 단단해지기를 바라며...

제대로 숨 쉴 수 있기를 바라며...


목소리가 큰 왕언니의 주도로 어쩌다 우리 반은 빠르게 연락처를 공유하게 되었고 단톡방이 생겼다.

그곳에서는 살사 연습곡을 공유하기도 하고

빠진 사람을 위해 그날 배운 부분의 영상을 업로드하며 진도에 관한 설명을 덧붙이기도 한다.

단톡방을 만든 건 왕언니지만

어쩐지 그곳에서 제일 어린것 같은 나와 그다음으로 어려 보이는 분이 주로 그 역할을 한다.

어느 집단에서 제일 어린 경우는 아주 오랜만이라 나쁘지 않다.

게다가 백수 생활 중 사람을 대면할 기회가 소중한 터라

친목의 성격보다는 ‘살사’에 대한 열정이 강한,

다른 것에 대해서는 아직 말을 나누지 않은 이 집단이 빠르게 좋아졌다.

집단 형성에 힘 입어, 우리는 LV. 2를 달고 토요 소셜 클래스에 참여했다.

LV. 1일 때는 가면 민폐일까 봐,

또 같은 반 사람들에게 함께 하자고 말하지 못해서 아무도 참여하지 않았지만

기다리던 토요일, 다들 열정이 강해진 김에 숙련자들 사이에서 우리의 춤을 추고 왔다.

가끔은 숙련자들의 자태를 흠모하며...

아직은 헤어지고 싶지 않은 이 집단과 긴장을 풀고 리듬을 탈 수 있을 때까지,

온몸이 저절로 살사를 출 수 있을 때까지 춤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이상 초보자만의 열정이 있는 연습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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