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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권목 Feb 23. 2022

그깟, 살사

에세이_그깟, 살사

2022년의 1월을 미루고 미뤄왔던 구직활동으로 시작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마음으로 채용 사이트를 살펴보니 도통 힘이 나지 않았다.

그래도 이곳저곳을 스크랩해놓고 열심히 어필해본다.     


‘저는 경력이 없지만 정말 여기서 일하고 싶어요!!’

‘이곳이 바로 제가 찾던 꿈의 직장입니다. 함께 성장하고 싶습니다!!’     


이런 식으로 머리를 쥐어뜯으며 ‘나’에 대한 소개를 덧붙이자니, 

갑자기 이제 열심히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솟구친다.

그래, 많이 놀긴 놀았지 뭐...     


이 업계는 사람들이 많이 왔다 갔다 하는지,

경력이 1도 없지만 다행히 관련 전공을 가진 나에게도 면접의 기회를 주곤 했다.     

대부분이 대표의 일장연설이 주를 이루는 면접이었다.

가만히 듣고 앉아 있는 것을 잘하는 내가 그 연설에 눈을 마주치며 적절히 호응하는 모습을 보고 

모두 나에게 참 차분하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면 이게 과연 좋은 평가일 것인가 잠시 고민하다 

좀 더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했다. 

일장연설을 마치면 그동안 나름 어느 구석에서 못마땅했던 부분들이 각각 있었는지, 

개인적인 질문과 업무와 관련된 질문들을 섞어서 했다.

나도 진실 1/3, 허구 1/3, 의지 1/3을 섞어 답했다.

이렇게 경력도 열의도 없는 구직자는 붙여주는 데를 가야 하는 것이 맞지만 

왠지 면접을 마치고 혹은 합격이라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진짜 고민을 하기 시작한다.

역시 애쓰지 않고 합격한 곳은 왠지 가기가 무서웠다.

잠시 합리화를 하자면 정말 피를 말려 다 뽑아 먹을 것 같은 곳이 있었고, 

연락할 때마다 근무 조건이 달라지는 곳이 있었고, 

가족 같은 분위기를 앞세워 근무 개시 한참 이전부터 단톡방에 초대해 

그들의 분위기를 보여주는 곳이 있었다.

3년 전의 나라면 이를 감수하고 아무 곳이라도 갔을 것이다.

‘일단 가서 1~2년만 버티는 거야.’하고.

헌데 현재의 나는 이리저리 잴 것이 많아졌다.     


요새 이렇게 산다.

2021년 12월, 

죽은 듯한 날 덮어 주었던 이불에서 나와 

재미있게 잘 살겠다는 마음으로 살사를 배우고 생기가 돌았다. 

2022년 1월, 

보다 생산적으로 놀겠다는 마음으로 코바늘 뜨개를 배우고 

심란할 때마다 뜨개를 하며 평정심을 찾았다.

또 2022년 1월,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구직활동을 시작했다.

2022년 2월, 

혼자만의 시간이 많아지자 사람과의 대화가 그리워 독서 모임을 하겠다고 기웃거린다. 

돈 되는 일 말고 이렇게 다 진심으로 대할 수 있다니, 재미있을 수 있다니... 

나날이 놀라는 중이다.     

그래서 2022년 2월, 

여전히 이리저리 재며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계속 구직활동을 하고 있다.

정말 나이와 경력을 생각하면 붙여주는 데는 아무 곳이라도 가야 할 것 같지만 

끝끝내 언제까지 숨을 수 있을 것인가를 계산하며 숨어본다.


그리고 ‘살사’를 앞세운다.

‘이곳에 다니면 살사를 배울 수 없겠군!’하며 오늘도 채용 사이트를 다시 살핀다.     

‘살사’를 포기하면서까지 같이 일하고 싶은 곳도 밑에서 끄덕이며 배우고 싶은 곳도 없었다.

맞다, 이건 아직 최후의 비빌 곳이 있는 사람만 할 수 있는 말이다.

퇴직 후 정신 못 차리고 있는 나와 Y에게 

자취하는 S는 

“둘은 부모님이 서울에 집이 있으니까 그렇지, 나는 일 쉬는 거 생각도 못해, 그래서 절대 못 그만두잖아.”

라고 말했다.

게으른 우리 둘은 그의 말에 숙연해졌고 할 말이 없었다.

너무나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동생은 근래의 나를 보더니, 

“나 같으면 돈 더 받고 취미생활 포기할 것 같아. 살사가 뭐길래 이렇게 또 이상한 고집이 생겼어? 진짜 나랑 다르네. 신기해.”라고 말했다.     


글쎄, 살사가 뭘까?

뭔데 이렇게 크게 자리 잡게 된 걸까?

이걸로 먹고 살 수도 없고 당연히 엄청 잘하는 것도 아니다.

‘그깟, 살사’가 맞기는 한데, ‘그깟’을 붙일 수 없다. 

아침, 점심, 저녁, 밤, 새벽까지 심란함을 품고 이것저것을 하다 뒤척이고 한숨을 쉰다.

그런데 이런 심란함도 학원에서 같이 몸을 움직이면 풀린다.

     

“코어에는 힘을 주고 골반은 부드럽게, 발은 안짱다리가 되지 않도록 고관절을 조금 연다는 듯이, 상체는 부드럽게, 어깨는 내리고 손에는 힘이 없어야 합니다. 그리고 음악을 듣고 즐기면서 추세요~!!”

     

선생님 말 대로 몸을 움직이려 애쓰고, 

제법 진지하게 했다가 거울에 비친 그 모습을 보며 마스크 안에서 웃고, 

눈을 마주치는 사람과 어려움을 토로하며 웃고, 

가끔은 서로의 동작을 보며 웃고, 

집 가는 길에 “오늘도 팽팽 도느라 고생하셨습니다~”하고 웃으며 헤어지는 게 좋다.

그런 날이면 내일 또 찾아올 심란함이지만 

당장은 다 해낼 수 있고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들어 좋다.

그래서 나중에 땅을 치고 후회해도 ‘그깟, 살사’를 아직 놓을 수는 없다.

‘다음 달이면 놓겠지.’ 하고 생각할 뿐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살사를 배우고 추며 돈을 벌 작은 길이 생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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