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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권목 Jan 20. 2022

밀려 쓰는 일기: 다시 서울로 D-5

에세이_잠시 여행 4

제주를 떠나는 주부터 심란해졌다. 날씨가 한몫했다.

떠나기 전 가고 싶은 곳이 아주 많았는데 아무리 머리를 싸매도 모두 갈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 와중에 수시로 태풍주의보 알람이 왔고 

11월 8일 월요일, 처음으로 나가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아무래도 서울보다는 제주 살이가 느슨해 스스로 나태해졌다고 우려했던 것은 사실, 

그러면서 나가기 전 햇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는 방을 바라보며, 

"이 좋은 데서 왜 여유롭게 쉬지 못하고 아침마다 쫓겨 나가기 바쁘니..."라며 자책을 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그날은 설거지도 분리수거도 걸레질도 밀어둔 채 침대에서 폰만 봤다.

계속 뒹굴 거리다 보니 머리가 아팠고 눈이 빽빽해졌고 모든 시간이 아까웠다.

아니, 시간이 아깝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비가 그친 오후, 언뜻 창문을 보니 파도와 바람이 잠잠해진 것도 같았다.

뒤늦게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았다. 

눈여겨보던 평대리 쪽 카페에 가기 위해 호기롭게 버스를 타러 가다 깨달았다. 

‘사람이 정말 바람에 날릴 수 있겠구나!’ 

다행히 구불구불한 머리카락만 날렸고 어떤 혼돈도 정리하지 못한 채 저절로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었다. 

죽어도 이대로는 집으로 들어가지 않겠다는 이상한 고집을 품고 겨우 집 앞 카페로 피신했다. 

왜 제주 바닷가 앞 카페와 식당의 문이 미닫이인지 저절로 알게 되었다.


카페에는 사장님 부부와 나밖에 없었다. 

한쪽 귀로는 그들의 대화를 대충 엿들으며, 

또 다른 쪽으로는 곧 가게를 덮칠 것 같은 파도와 바람 소리를 들었다. 

집에서 보다 크게 들렸는데, 이상하게 카페는 집보다 평화로웠고 그래서 자꾸 기지개를 켜게 되었다. 

조금이라도 생산적이고 싶어 책을 가져왔지만 눈으로는 바다만 봤다.

제주에 와서 처음으로 본 칙칙하고 성난 바다였다. 

바다 주변의 모든 것들은 끊임없이 소리를 냈다. 

그때는 내 마음속 제주 커피 맛집이었던 진한 커피도 맛이 없었다. 

평소라면 시키지 않았을, 오직 따뜻한 기분을 느끼고 싶어 충동적으로 주문한, 

스콘의 버터 풍미가 역겹게 올라왔다.

뒤늦은 후회와 울렁거림을 참으며 그것을 진한 커피와 함께 꼭꼭 씹어 욱여넣었다.

아기자기하고 평화로운 카페보다는 다시 바다에서 조금이라도 더 먼 집으로 돌아가 웅크리고 싶었다.

 

늘 해가 비추던 월요일, 모두가 일하는 시간, 

난 한참 일도 안 하고 해를 만끽하며 잘 놀고 있었는데 

막 주에 이럴 수가...

미친 듯이 장기가 조이는 새 고무줄 바지에, 더 미친바람에 

이곳저곳을 얻어맞다 보니 정신이 들었다. 

‘그래, 언제 맞아봐 이런 거’ 

아는 게 늘어 잠깐 좋았지만 시간이 가고 있음은 변하지 않았다. 

그냥 집에 돌아가 바닥을 쓸고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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