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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권목 Dec 13. 2021

수평선 안에서_<수평선>을 읽고

에세이_잠시 여행 3


주위에는 낮은 집과 밭이 전부여서 하늘이 참 가까웠다. 

하늘이 가까워진 만큼 흰 구름도 커졌다. 

가까워지니 모두와 친해진 것 같았다. 

마음이 알 수 없는 것들로 꽉 차 벅찼다. 


안으로는 저 멀리 한라산, 그 주위에는 설문대 할망의 치마에서 흘러내린 

흙이 모여 만들어졌다는 이름 모를 오름들이 솟아 있었다. 

밖으로는 파란색, 하늘색만 있다. 

해에 비출 때마다 그것들은 눈부시게 빛나며 잔잔히 움직였다. 

저 끝의 끝을 봐도 끝은 없었다. 

끝이 없는 것이 공허하면서도 이상하게 좋았다. 

가로막히는 것 없이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로 저 멀리 발을 내디뎌 보고 싶다는 욕망과 

정말 막아주는 것이 하나도 없을 까 봐 걱정되는 마음이 그냥 바다를 바라보게만 했다. 

반짝이는 물결 위 배들이 통통 떠 있었다. 

그 광경에 아름다움과 평안함을 느끼면서도, 

바다로 나갈 수 있는 사람들은 무슨 마음으로 나가게 된 걸까 참 용감하다는 생각을 했다. 

늦은 오후 갑자기 사나워진 바다를 보며 안 친한 사람과 대화를 나눴다. 

"이렇게 계속 보니까 바다 무섭지 않아요? 바다로 처음 나간 사람들 진짜 대단한 것 같아요." 

”네, 정말 그러네요.”


멍의 양대 산맥 불멍과 물멍, 난 물멍이 더 좋은데 물멍은 사람을 우울하게 만든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너무 오래 보려 하지 않았으나 

깊으면 깊은 대로, 넓으면 넓은 대로 눈은 그곳으로 향해 빠져 들었다. 

밀려오는 물소리는 파도든 강물이든 냇가든 좋았다. 

볼수록 생각을 사라지게 만든다는 점도 좋았다. 

물을 보면서 하는 생각은 정신을 급히 다른 곳으로 돌리려 하지 않았다. 

직시해야 할 것을 직시하게, 흘러갈 것은 흘러가게 했다. 

그래서 생각이 사라진다고 느끼나 보다. 

눈과 머리가 충분히 맑아지니 손과 발이 차가워져 이내 자리를 떴다. 

묵중한 무언가는 여전히 지고 있으면서 

자질구레하다고 여긴 것들은 탈탈 털어내 

식은 몸이 어쩌면 우울한 것인지도 모른다.


바다에는 하루 종일 통통배가 떠다녔다. 

분명 하루 종일 떠있었지만 

깜깜한 밤 수평선을 빛내는 작고 동그란 불빛으로 비로소 거기에 있었음을 안다. 

‘아직까지 저기에도 사람이 있구나, 

내가 하지 못하는, 생각지도 못한 일을 하고 있구나, 

열심히 생활을 하고 있구나.’

 

비와 무관하게 바닷속과 파도가 괜찮은 날에는 주황색 테왁이 둥둥 떠 있었다.

해녀들은 줄을 서서 바다까지 가고 저마다의 준비를 마친 후, 빠져든다. 

‘휘이익’ 휘파람 소리 같은 것이 난다. 

숨비소리다. 

파도소리와 어우러지면서도 또렷이 들린다. 

가끔 넋을 잃고 ‘보는 좋음’에 빠져 있다가도 

그 또렷한 소리와 현장에 나 역시 두 발 딛고 서서 가야 함을 안다. 

주위에는 쉴 수 있는 숨만큼 정직하게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저 끝이 없는 광경이 꼭 그만큼의 자유 같아 

그 속에서 그만큼 기지개를 켜면 되는 줄 알았다. 

때로는 그런 마음으로 보고 지나쳤다. 

그런데 정말 끝이 없다면, 

기지개를 충분히 피고 이곳저곳 쭉쭉 켰지만 그 수평선 밖으로 나갈 수 없다면…. 

갑자기 이 광활한 광경이 거대한 유리 돔처럼 느껴졌다. 

이곳에 갇혀 있다. 

어딘가 출구가 있을까? 그곳이 이어도일까? 

영화 '트루먼 쇼’와 같이 저기 수평선 어딘가 작은 문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곳으로 빠져나가면 뭐가 달라질까. 

정말 나가고 싶은 사람만 알겠지. 

아직 찾지도 못한 문을 열 준비가 되지 않아 

한숨과 함께 안도한다.



수평선-양중해


제주도 사람들은 

수평선 안에서 산다.


까마득한 옛날부터 

한라산의 발치라면 어디에라도 터를 잡고 

수평선을 등지면 한라산

한라산을 등지면 수평선

그 누구도 

길고 짧은 한 평생을 

수평선에 갇히어

수평선 안에서 살다가

수평선 안에서 삶을 마친다.


제주도 사람들은 

수평선 밖 어디쯤에 

이어도가 있다고 믿어왔으나

다녀온 사람은 아무도 없다.


수평선 안이 답답하면

이어도를 찾아 배를 띄워 보지만 

노를 저어 나가다 보면

앞으로 나갔던 만큼씩

다시 밖으로 물러서 버리는 수평선

제주도 사람들은 

그 누구도 

수평선을 한번도 건너보지 못하고 

이어도에 가보지 못하였다.


제주도에서는 해도 수평선에서 뜨고 

달도 수평선에서 뜨고는 

해도 달도

수평선으로 진다.

구름도 수평선에서 일어나

수평선 안에서만 떠밀려 다니다가

수평선에서 사라진다.


제주도의 수평선은

저렇게 아름답고

저렇게 조용하게 보이지만

수평선에서는, 지금도

거센 파도가 일고 있다.

제주도 사람들의 

기쁨과 눈물

삶의 맥박이

쉬임 없이 고동치고 있는 수평선,


수평선은 

제주도 사람들의 숙명이다.

선택이 주어지지 않는

한정된 우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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