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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권목 Dec 05. 2021

울 준비

에세이_잠시 여행 2

뚜벅이로 좀 고생해서인지 여행 중 종종 울고 싶을 때가 있었다.

차도와 보도의 경계를 알 수 없는 낯선 길을 홀로 걸을 때,

그 낯선 길에서 순식간에 어두워지는 하늘을 마주할 때,

예상치 못한 변수로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멈출 때, 

그리고 눈부신 날에 드넓게 펼쳐진, 파랗게 빛나는 바다를 볼 때, 

가끔은 여기서 뭐 하고 있지 현타가 올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울까? 울자, 그냥 울어버리자!’였다. 

마치 주문인 냥 중얼거렸다. 듣는 이가 없어 조용히 입 밖으로 꺼내보기도 했다. 

당연히 진짜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마치 최악의 상황이 ‘혼자 울기’인 냥 알 수 없는 감정들을 다독였다.

그 후 한쪽 어깨에는 에코백을, 다른 손에는 핸드폰을 들고 되도록 씩씩하게 양팔을 휘저으며 걸었다.

그러다 보면 아무렇지도 않아졌다. 진짜 운 것처럼 온몸이 시원해졌다. 


처음 가 본 길에는 종종 사체가 있었다.

자전거 바퀴 자국이 남은 뱀, 차에 눌린 아기 고양이, 쥐, 축 늘어진 새들….

낯설지만 아름다운 풍경에 넋이 나가도 이들을 볼 때면 절로 움츠러들었다.

바다를 보며 풀숲을 거닐다가도

‘아! 해안 도로에 진짜 뱀이 있었지!’ 하며 서둘러 발길을 옮겼다.

마음껏 혹할 여유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틈틈이 사진을 찍고 멈추는 시간은 있었다.

‘여행은 원래 목숨 걸고 하는 거였다는데 이 정도면 충분히 사치스러워.’

그리고 죽은 뱀을 생각하며 마저 갈 길을 갔다.

이제까지 풀어보지 않은 뭔가를 아주 샅샅이 보게 된 기분이었다.

이런 날은 진짜 울고 싶어도 울고 싶다는 생각을 꺼내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걷는 게 예의인 것 같았다


걸으면서 그때그때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나눌 이가 없는 건 조금 아쉬웠다.

혼자서는 미소 지을 일도 짜증 나는 일도 많았지만 깔깔 웃고 펑펑 울 일은 없었다.

다행히 중간중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러면 신이 나서 보고 느꼈던, 아껴 담아 두었던 것들을 주절주절 풀어놓았다.

TMI는 왜 이렇게 나누고 싶은 걸까.

주저하는 척하면서 약게도 ‘이건 TMI이기는 한데…’라고 서두를 꺼내면 

무슨 얘기든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마침 제주에 정착한 지 5개월 된 지인은 배우자, PT 강사 외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다고 했다. 

우리는 오랜만에 바닷가 근처 예쁜 브런치 카페에서 5시간 동안 쉴 새 없이 쌓아두었던 것들을 풀어놓았다. 

그이의 배우자는 먼저 떠났다.

그리고 결국 내가 그이보다 먼저 지쳤다.

오랜만에 아픈 입과 광대, 침도 마른 목, 그리고 비워진 지 오래인 장을 만족스레 품고 

털래 털래 집(숙소)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버스를 놓쳐 새로 길 찾기를 해야 했지만 이런 날은 울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미 안에 있던 많은 것들이 터졌다.  


영화나 책을 보며 나만의 포인트에 자연스레 눈물을 흘리지만 

남 앞에서 우는 건 철없고 숨겨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안다.

12살이었던가 유독 눈물이 많은 친구는 그날도 무언가로 속상해 울고 있었다.

반 아이들은 우는 아이에게 “너 또 우냐?”라고 지겨워했다.

20대 내내 진로 고민으로 아빠와 대화를 하다 답답해져 눈물을 흘렸다.

우리는 사이가 괜찮은 편인데도 진지한 대화에서는 늘 눈물이 나온다.

울먹거리며 말을 이어가는 나에게 아빠는 

"무슨 말만 하면 그렇게 울어서 어떡해. 그래서 어떻게 살라 그래?!"라고 타박했다.

많은 사람들이 “울면 다야?”라는 말을 한다.

남 앞에서 한 번이라도 울면 지겨워지고 우스워진다.

이후 아빠 앞에서는 울지 않으려고 꾹 참는다.


누군가와 싸우거나 답답해지면 혼자 울다 아픈 머리를 감싸고 잤다. 

이제 어떻게 하면 안 운 척할 수 있는지 아는 것 같다.


그래도 그런 날이 있었다.

기억도 안나는 누군가와의 말다툼을 계기로 갑자기 아르바이트를 가는 길에서부터 눈물이 났다. 

당황한 동료를 먼저 보내고 그치지 않는 눈물을 닦으며 익숙한 길을 걸었다.

매장에 출근을 알리고 옷을 갈아입고 청소를 하면서도 펑펑 울었다.

모두가 왜 우냐고 걱정하고 물어봐도 나도 이유를 몰라 적당한 답을 할 수 없었다.

누가 죽은 것도 차인 것도 아니었다.

누가 봐도 운 얼굴이었지만 다 쏟아낸 후였기에 그냥 할 일을 했다.

아침부터 울어댔던 나를 위해 신경 썼다는 맛있는 점심이 차려졌다.

머쓱하지만 부은 눈으로 맛있게 밥을 먹었다.

그게 끝이었다. 최고로 시원한 울음이었다.


무언가 펑 터트려야 할 때,

또 그러고 싶은 사람을 위해 

울어도 된다고 해주고 싶다.

울고 나면 남들이 놀려도, 

얼굴이 아파도, 눈이 부어도, 머리가 아파도, 

그냥 시원하면 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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