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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권목 Aug 19. 2022

계단식이네

에세이_그깟, 살사

투 턴 연습을 하고 있다.

집에서는 양말을 신고 학원에서는 전용 마루에서 댄스화를 신고 연습하는데,

이게 몇 개월째인지, 어디서든 균형을 잡지 못하고 늘 한 바퀴 1/4 지점에서 멈추고 말았다.

매번 뒤뚱거리며 금방이라도 넘어질 듯한 나를 보고 

선생님은 아직 몸이 만들어지지 않아서-즉, 코어가 없어서, 

어깨를 펴지 않고 앞을 보고 있지 않아서-즉, 시선이 바닥으로 떨어져서 그렇다고 하셨다.

자기 것으로 만들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니까 꾸준히 연습하라고...!

당연한 말씀에 매번 난 고개를 끄덕이는 만큼 실력이 늘 것만 같아 

열심히 끄덕이고는 한숨을 쉬었다.

나 돌기에 바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도는지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나, 

왠지 끝나고 나면 혼자 뒤뚱거리는 것 같아 작아졌다.

이놈의 자의식 과잉이 문제긴 참 문제다.     


즐겁자고 추는 춤이지만 몇 번의 수치스러운 지점들이 있다.

빠른 박자를 따라가지 못해 흐트러지고 마는 스텝, 균형을 잃고 뒤뚱거리는 몸, 

분명 배운 패턴인데 처음 보는 것 같은 생경함, 

그 생경함에 파트너에게 반복 연습 요청을 하지만 그럼에도 낯선 감각,

이내 뻘쭘해져서 “아이고, 모르겠다... 다시 배워야겠네!”라고 말하기까지 모든 것이 그러하다.

연습은 안 하는 주제에 완벽하고 싶은 나는 

한참 속으로 절레절레하다 오랫동안 시무룩하거나 얼른 연습하고 싶거나 

둘 중 하나의 마음으로 집에 간다.

가족들은 내가 뭘 배우고 있는지 잘 모르면서 

“잘하네!!”, “빠르네!!”(대충 빠르면 잘하는 줄 앎.), 

“이상한데?!”, “아직도 그거 해?”, "정신 사나워! TV 가리지 마!" 

“왜 맨날 똑같은 거 해?”라고 한다. 

그 반응 역시 짜증 나거나 웃기거나 둘 중 하나다. 

이번 여름은 에어컨이 틀어져 있지 않으면 몸을 일으키지 않다가,

뒤늦게 수치스러움을 견디지 못하고 가족이 있든 없든 다시 연습을 하고 있는 중이라 

위의 소리를 유난히 많이 듣고 있다.     

그런데 8월 14일 일요일 저녁을 먹기 전 거실에서 투 턴을 성공하고 말았다.

이를 어쩐담...

학원에서 했어야 했는데, 하필 옆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가족들뿐이라니!!

혼자만의 벅찬 기쁨을 나눌 이가 없어 또 돌았다.

와! 이번에도 성공!!

세 번째는? 조금 비틀거렸지만 성공!!

이후 복 달아날 까 봐 돌기를 멈추었다. 

‘내일도 될까? 화요일에 학원에서 할 수 있을까?’ 벅참을 진정시키면서.      


춤과 전혀 관련이 없는 것 같았으나 

알고 보니 마음속에 춤 하나씩 품고 있던 

독서 모임 사람들과 막걸리를 마시며 이야기를 했다.

“춤은 계단식이래요! 우리 선생님이! 지독히 안 늘다가 어느 순간 올라가 있고!”라는 말에

사람들은 수긍하다가 “근데 다 그렇지 않아?”라고 했다.

어쩐지 기시감이 있더라... 

그러네. 공부도 노화도 운동도 뭐든 다 아주 긴 계단식이네.

그날은 비 오는 날 막걸리 때문인지, 오랜만에 공감이 쏟아졌던 대화여서 그랬는지,

잔뜩 신이 나서 연말에 춤 파티를 벌이자고 했다.

OO님은 K-POP, ##님은 걸스 힙합, **님은 그냥 흥이 많으니까 뭐 하나 금방 배워요!!

나는 살사 솔로! 

신이 나서 파트너 없이 홀로 솔로 스텝과 턴을 선보인다고 외쳤고

뒤늦게 다음 달에는 다들 모든 것을 잊기를 바랐다.     


8월 16일 화요일, 살사 동기를 만나자마자 실은 지난 주말 처음으로 투 턴을 성공했노라고,

학원에서는 성공하지 못할 것을 계산하여 괜한 쑥스러움을 더해서 고했다.

그게 뭔지 아는 살사 동기들은 우리 가족들보다 눈이 반짝이는 것 같아 만족했다.

선생님과 동기들은 각자에 바빠 보지 못했지만 괜히 의식을 하며 살며시 투 턴을 시도하였다.

빙그르르 돌았다.

돈 건지 안 돈 건지 헷갈려 다시 집중하여 돌았다.

조금 비틀거렸으나 성공!!

언젠가 투 턴 역시 한 바퀴를 도는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될까? 무섭지 않게 될까? 

어제 배운 패턴을 연습하면서 선생님께 성급하지 말라는 말은 들었지만 수치스럽지 않았다.

긴 계단을 걷다 보면 언젠가 올라갈 곳이 보일 것이다.

어쩌면 ‘나는 원래 ~이래.’라는 속삭임이 자꾸 나를 오래 서서 멈추게 하는 것인지 모른다. 

올라가거나 내려가거나 쉬거나 셋 중 하나일 텐데.

나는 또 무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것도 왠지 재밌을 것 같다.


그리고 8월 19일 금요일 다시 투 턴이 안된다...

그래도 다시 해보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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