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_사랑할 수밖에 없는 나의 일상들
이 낯선 생명체들과는 올해 처음 만난 것으로 하자.
이전에도 분명 만났겠지만 알아채 버린 것은 올해가 처음인 것 같으니까.
아, 매미는 구면이다!
매미 소리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꽤 많아 놀랐는데,
여름에는 18층 높이의 아파트까지 들려오는 이 울음이,
사실 그 외 들리는 새소리, 풀벌레, 맹꽁이인가 개구리인가 하는 그 울음까지가
세상을 온전히, 제대로 살고 있다는 기분을 들게 한다.
이상한 일이다.
무튼 매미 소리는 여름 그 특유의 강렬함, 청량함, 시원함을 가져다주기에
그 소리가 멀리서 들리면 정말 여름이 왔구나,
그 소리를 배경 삼아 눈 감고 싶어 진다.
물론 가까이서 맞이하는 매미 소리는 이와 다르게,
번쩍 정신을 차리게 하지만
이상하게 신경을 거슬리지는 않더라.
또 유난히 매미를 잘 잡던 아빠 생각도 난다.
아빠는 베란다 방충망에 혹은 복도에 붙어있는 매미를 잘도 찾고 잡았다.
매미의 울음소리만 듣다가 그것을 처음 보던 날에는
익숙지 않은 모습에도 날개를 쓰다듬고 또 쓰다듬었다.
얇고 얇은데 까끌까끌해서 계속 만지고 싶었다.
우리 손에 있던 매미, 채집통의 매미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어떤 것은 날개가 찢어진 채로 죽고 어떤 것은 날려주었다.
성충이 되고 2-3주 밖에 살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그랬나.
어떤 것의 수명을 알게 되면 왠지 애틋한 무언가 생긴다.
너는 이쯤이면 볼 수 없겠구나 하는.
올해의 매미는 소리가 아닌 허물로 만났다.
6월쯤인가, 꽤 이른 여름이었다.
학교의 어린이들은 놀이터에서 매미 허물을 발견하고 흥분하기 시작했다.
평소 벌을 봐도 이것은 호박벌, 저것은 말벌, 또 생각나지 않는 많은 곤충과 벌레를
알려주던 어린이들이었다.
그럼 나는 “아 호박벌, 아 진딧물!”하고 아는 척했다.
그 오트밀 색상의 허물을 한 명이 발견하자 너도나도 경쟁하듯 허물을 찾아 헤매고
찾을 때마다 손에 높이 들고 달려와 보여주었다.
작년 1학년 어린이들도 똑같았다고 했다.
8살의 나는 그것을 만질 수 있었겠지만 32살의 나는 어쩐지 만지고 싶지 않았다.
32살의 나는 누가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결코 매미 허물을 발견하지도 못했으리라.
왠지 그것도 얇고 바삭한데 까끌까끌하고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것 같았다.
하지만 어린이들의 손에 있는 그것은 쉽사리 가루가 되지 않았다.
벌레와 곤충을 무서워하는 선생님 한 분은 기겁하며 가져오지 말라고 했고,
그것을 만지고 싶지는 않지만 무섭지도 않은 남은 어른들은
허물을 들고 신나게 뛰어오는 어린이들에게 신기한 발견을 했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다,
단, 싫어하거나 무서워하는 사람에게는 들이밀지 말라고 했다.
다른 한 선생님은 허물을 옷 위에 배지처럼 달 수 있다고 알려주었고
이제 너도나도 까끌까끌한 매미 허물의 다리 부분을 옷에 걸고 자랑스럽게 다녔다.
그러고는 이내 지루해졌는지 발견한 매미 허물을 야외 테이블 위에 모아 놓고 탑을 쌓았다.
한 주 동안 비가 계속 내려 매미 허물은 모두 어디론가 흩어졌다.
어린이들의 심려가 컸다. 옆에서 보는 나도 괜히 착잡해졌다.
비가 잠시 그치고 교실 창문에 매미 한 마리가 붙었다.
담임 선생님께서는 절대 만지거나 위협하지 말고 관찰만 하라고 하셨다.
매미는 앞의 소란스러운 어린이들과 다르게 침묵을 지켰다.
어린이들은 매미가 산 건지 죽은 건지를 가지고 더욱 소란스러워졌다.
살아있는 매미가 어쩐지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 같아 안쓰러웠다.
가만히 내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 어린이는
“아이고 저렇게 시끄럽게 하면 매미 죽지. 너무 시끄러워서 죽지.” 했다.
비가 완전히 그치고 어린이들은 다시 매미 허물을 찾아 탑을 쌓았다.
비가 온다면 이미 쌓은 탑은 부질없다는 것을 알아버린 듯
이번에는 쌓아놓고 발로 잘근잘근 밟아 으깼다.
금방 오트밀 색 가루가 되었다.
또 나무 위에 붙은 매미를 보고 살아있는지 죽은 건지 열띤 토론을 하였다.
저렇게 힘을 주고 매달려 있으니 당연히 살아있다고,
있는 힘껏 붙어있으니 절대 손대거나 위협하지 말라고 끼어들었다.
어린이들에게는 매미 말고 장수풍뎅이가 있다.
어린이들은 구면인데 나는 초면이다.
어느 날 1학년 교실 중앙에 두 개의 투명 케이스가 놓였다.
안에는 각각 암컷 두 마리, 수컷 두 마리의 장수풍뎅이가 있었다.
역시 담임 선생님께서는 미리,
절대 케이스를 두드리거나 옆에서 소란스럽게 하지 않도록,
장수풍뎅이가 스트레스받지 않도록 주의 주셨다.
몇몇 어린이들은 이미 장수풍뎅이를 키운 경험이 있었고
몇몇은 관련 책을 읽어 이미 척척박사였다.
나는 아는 게 없어 그냥 어린이들의 설명을 듣다 적절히,
“어머 그렇구나~” 하고 맞장구쳤다.
수컷 장수풍뎅이는 뿔이 있고 암컷은 없고,
장수풍뎅이는 정말 힘이 세고,
수컷은 짝짓기를 하고 나면 죽고,
하지만 결국 수명이 한 달이라는 말이 오래 남았다.
(찾아보니 수명은 1~3개월까지이고 사육 환경이 좋으면 5개월까지도 산다고 한다.)
어느 날 출근을 하니 한 선생님(벌레와 곤충을 무서워하시는 선생님)의 비명 같은 게 들렸다.
암컷 장수풍뎅이 두 마리가 탈출하여 복도 바닥에 있다고 했다.
어떻게 문을 연 건지... 정말 힘이 셌다.
보나 마나 아침부터 소란스러워질 테니 어린이들이 등교하기 전 쟤들을 다시 넣어야 했다.
한편으로는 그냥 저 나무가 많아 그늘이 찬 화단으로 놓아주고 싶었으나
CCTV가 있었다.
바퀴벌레 빼고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휴지로 감싸
암컷 장수풍뎅이를 하나씩 집어 옮겼다.
날카로운 다리가 손가락을 움켜잡아 생각보다 아팠다.
어쩐지 등교 시간 이후 바로 1학년 선생님들 모두
내가 장수풍뎅이를 다시 넣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 학교에서는 소문이 빠르구나, 늘 말과 행동거지를 바르게 하기로 다시 마음먹었다.
그날 이후 어린이들도 이야기를 들었는지,
나에게 정말 장수풍뎅이가 정말 밖으로 나왔는지,
내가 거짓말을 치는 것은 아닌지,
어디까지 나왔는지, 손으로 만져 봤는지 많은 질문을 했고
몇몇은 박수를 치기도 했다.
하지만 그날 이후, 탈출의 실패 때문인지 암컷 한 마리가 죽었다.
다시 학교에 가면 남은 장수풍뎅이 3마리는 여전히 살아 젤리를 먹고 있을까.
짝짓기를 시킨 지 꽤 오래인데 알은 낳았을까. 수컷은 살아 있을까.
개학하고 우리는 만날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어렸을 적 지독히도 과학/곤충 도서류는 쳐다도 보지 않았던 나는
이제 ‘세계의 장수풍뎅이 특별전’에 반응하는,
진지하게 개학 전 가서 어린이들한테 잘난 척 좀 해볼까 하는 어른이 되었다.
허나 그 장수풍뎅이들이 살아 있어도 죽은 박제여도 어쩐지 마음이 좋지는 않을 것 같아
그만두고 우리의 만남은 학교에서 이어지기만을 빌어본다.
*방학이 끝나고 학교에 가니, 케이스는 깨끗이 비었고 흙 속에 알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