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_단상
당당당당 당당당-
전주가 시작되면 이미 어디든 그 지하의 수영장이다.
서늘한 긴장과 익숙한 시간에 대한 설렘이 공존하는 그곳으로
조심조심 한 발씩 내려간다.
어린이들이 맨발로 내려가기에는 지나치게 길고 찬 계단이다.
그곳에는 철썩거리며 물살을 가로지르는 팔과 다리, 호루라기, 남자 선생님들의 낮은 고함, 다시 철썩,
킥판으로 누군가 맞는 소리가 웅웅 울린다.
낯설고 무섭다.
공기는 차갑고 아직 물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
하지만 선생님들은 금방이라도 추워 덜덜 떠는 어린이들을 퐁당퐁당 밀 듯하다.
미적거리다 슬금슬금 언니들을 따라 풀 가장자리에 앉는다.
발을 담갔다 팔과 다리에 물을 적시고 천천히 들어가면
이 노래가 나왔다.
1998년에 나왔다는 디바의 <왜 불러>는 1998년부터 2000년도까지 금호스포츠센터의 준비 체조 음악으로 알차게 쓰였다.
어쩌면 그 이후에도 계속 사용되었을지 모를 일이다.
무튼 음악이 시작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그 기분 나쁨은
흥과 함께 물러가고
나는 곧 까만 수경과 까만 모자를 쓴 대장 선생님을 따라 신나게 물속에서 파닥거렸다.
이 시간에는 흡사 조폭 같았던 선생님이 금세 살찐 바다사자 아저씨가 되어버리는
마법을 경험하게 된다.
그 마법을 지나야 만 다시 이곳에 익숙해질 수 있다.
테리우스 시절 안정환을 닮은 우리 선생님과 인사하고,
(여러 선생님을 거쳤겠지만 왠지 이 선생님만 또렷하다.)
수영을 하고 가끔은 틀렸다고 혼나고,
자주 막내라고 귀여움을 받고,
수업이 끝나면 엄마가 일러준 대로 도날드 덕 샴푸로 머리를 깨끗이 감고,
언니들을 따라 여름에는 자판기에서 컨피던스를, 겨울에는 금방 만든 공갈빵이나 핫초코를 먹고,
허겁지겁 버스에 타기 전 테리우스 시절의 안정환을 닮은 선생님을 찾아 수줍게 안겨 인사하고,
비로소 3호 차에 타 기사 아저씨와는 다정히 인사를 나눈다.
수영은 엄마가 내게 시켜준 다른 예체능과 같이 별다른 재능을 발휘하지 못한 분야다.
엄마는 내가 첫째라는 이유로 동네 아주머니들을 따라 이것저것 열심히 시켰지만
후에 모두 부질없음을 깨닫고 동생에게는 덜 시켰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 졸임 덕분에 나는 무용해서 즐거운 추억들을 쌓았다.
수영은 취미라고 적을 수 없는, 결코 뽐낼 수 없는 것이지만
그 시끄러운 곳에서도
물에 잠길 때면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던 고요함,
배영을 하며 느꼈던 물에 둥둥 뜨는 평안함,
그 평안함이 순간이 아닌 영원이 되기를 바랐지만 곧
누군가의 발에 머리를 세게 맞고는 깨어났던 번쩍이는 감각,
그리고 역시 여름 노래는 90년대가 짱이라는 확신을 얻었다.
덕분에 무용함에 기대어 여전히 추억팔이를 할 수 있다.
접영이 어려운 김에 이제 그만 공부를 하라고 수영을 그만두었어도,
동생마저 그 수영장 얕은 풀에서 다이빙을 하다 이마가 찢어져
수영장과 불화를 겪고 결국 그 수영장과 잘생긴 선생님과 연을 다하게 되었어도,
(되새길 때마다 쑥스러워지는 것을 보니 이 분이 망가지지 않은 내 첫사랑인가 보다.)
늘 같은 곳을 다니는 3호 차 아저씨와는 반갑게 인사를 했다.
아저씨는 손을 흔들어 주거나 경적을 살짝 울렸고
우리는 손을 흔들다 한 살 두 살 더 먹으며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조금 더 커서 어린 시절과 보이지 않는 금을 긋기 시작했을 때도
금호스포츠센터의 하얀 3호 차가 나타나면
아저씨는 아직 그 아저씨일까 티 나지 않게 눈으로 살폈다.
아저씨도 이미 클 만큼 크고 살이 쪄 중닭과 같은 우리를 알아볼 리 없었지만 괜히 그랬다.
어쩌면 알아봐 주기를 바랐던 것일까.
아직 아저씨가 아저씨면 반가워했고
희끗해진 머리를 보았을 때는 조금 슬펐고
언젠가 아저씨와 3호 차가 보이지 않게 되어서는 많은 것이 끝났음을 알았다.
수영도, 아저씨도, 파마머리의 잘생긴 선생님도, 수영 다닐 때만 먹을 수 있었던 공갈빵도.
아저씨는 우릴 볼 때마다 동생의 이마를 걱정했다.
동생의 이마는 어릴 적 유난히 다친 곳이 많았던 그의 수많은 흉터 중 하나일 뿐이었는데.
괜히 가기 싫은 날에는 땡땡이를 꿈꾸며 떼를 썼지만
사실 전혀 푸르지 않아도 푸르게 보였던 수영장이 좋았나 보다.
아직 여름임에도 지하철 창문 밖의 물 빠진 회색의 한강 수영장을 보니 슬픈 것을 보면.
그래도 아직 <왜 불러>가 남아있다.
노랫말과 같이 아픈 나를 불러 자꾸 그때 그곳으로 데려다 놓는,
더불어 수영장 냄새, 아니 향이라고 해야 하나.
그것까지 온전히 대령하는.
90년대생의 희미한 90년대 사랑이 계속될 수 있도록,
순간이 아닌 영원할 수 있는 그런 사랑을 할 수 있도록,
그 시절이 <왜 불러>를 내게 보내준다.
지금 들으니 이미 세상에 데일만큼 데어 기껏 자신을 부르는 이에게
‘난 진정한 사랑도 받은 적 없고 꿈도 없는 아픈 사람인데 왜 자꾸 부르냐. 너 실수한 거다.’라고 외치는,
그러면서도 그 사랑을 믿고 싶어 하는 이의 슬픈 말인데,
사연은 너무 슬프지만 90년대 여름 노래가 그렇듯 멋대로 어깨와 손가락, 발가락이 움직인다.
결국 둘은 시작하고 결혼하기로 했단다.
그랬다니 맘껏 여기저기를 흔들며 이 노래를 마저 사랑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