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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권목 Aug 17. 2022

냅다 안아버리기

에세이_사랑할 수밖에 없는 나의 일상들

‘냅다’에 당해낼 재간은 없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 다행이지 하마터면 크게 웃을 뻔했다.

아니... 이미, 

잠시나마 엄격, 근엄, 진지했던 눈이 풀려 버려 알아챘을 것이다.

까까머리 완두콩과 곱슬머리 미니언즈와 사랑둥이는 그렇게 스멀스멀 표정을 풀고 냅다 

눈부터 웃는다.

그럼 단호히 떼어내기는커녕 정해진 수순처럼 나도 

눈과 목을 풀고 그저 어깨를 안고는 토닥거릴 수밖에.

     

“OO, 할 수 있지요?! 다음부터는 알고 있는 규칙 지키도록 노력할 거예요!!”

“네!!”     


아... 지쳐서 나와버리고 마는 이 의미 없고 부자연스러운 당부의 말. 

일단 오늘 한 번은 넘어가겠다는 마음으로 스스로부터 다독인다.

어린이들은 이미 모든 것을 잊고는 저 멀리 신나게 뛰어가고 있다.

그럼 나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 괜히 한숨을 푹 쉬어보고 웃는다.

저 ‘냅다’ 할 수 있는 행동이 부럽다.

한 번도 거부당하지 않은 듯한 저 사랑스러움과 자신감으로 일단 부딪히는 것!

직무유기이긴 한데 언젠가 흩어져버릴 것이라면 나는 되도록 그것에 손대지 않기로 한다.     


“즐겁게 춤을 추다가~”노래가 나오면 어린이들은 냅다 개다리춤을 춘다.

분명 너희 세대 춤이 아닌데... 팔딱거리는 흥을 뿜어낼 수 있는 건 

오직 개다리춤밖에 없다는 듯이 이마를 세게 치고 손으로 머리를 쓸며 신나게 다리를 흔든다.

한 명이 시작한 개다리춤에 질 수 없다는 듯이 너도나도 일어나

일어나지 못하는 어린이들은 손가락으로 이곳저곳을 가리키며 박장대소하고 

순식간에 교실이 웃음으로 가득 찬다.

어른들도 서로 눈을 마주치고 같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잠시 웃다 

오직 웃는 어린이들만을 바라본다.

자, 이제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 때 살짝 찬물을 부어본다.

어린이의 시간은 어른의 시간과 달라서 충분하지 않았을까?

충분하지 않았던 어린이들은 계속 웃다가 결국 모두의 열기를 식히는 한 소리를 듣고 만다.

그 순간이 좋아서 그 속에서만 영원히 웃고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다 

그럴 수만은 없다는 걸 알아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결정을 내린다.

좋아하는 것만, 마음 가는 대로만 따를 수 없는 것이, 모두를 기다릴 만큼 느긋하지 않은 것이 

계속 마주쳐야 하는 세상이니까.     


‘빙빙’, ‘돈다’라는 말이 나오면 냅다 노래를 부른다.     


“빙빙 돌아가는 회전목마처럼~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빙빙 돌아올 우리의 시간처럼(정확하지 않아서 뭉개며 희미하게 부름) 

인생은 회전목마(클라이맥스라 우렁차게 부름)!!”     


제법 핏대를 세우고 한 명이 부르기 시작하면 곧 떼창이 시작된다.

노랫말은 꽤나 이곳저곳 데어 본 어느 해탈자의 말씀인데,

‘빙빙’과 ‘회전목마’ 그리고 누구나 좋아할 만한 박자와 리듬으로 

여전히 어린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이 구절을 어린이들은 열성을 다해 부르다 

하나같이 랩 앞에서 멈추고 만다.

'빙빙 돌아가는 회전목마처럼' 

나는 언제 들을 수 있을지 모를 그 구절이 나올 때마다 

그것이 동요이든 아니든, 냅다 오른쪽, 왼쪽으로 몸과 함께 손을 흔들고 싶어 진다. 

작은 것에도 흥을 뿜어낼 기회를 놓치지 않는 이 어린이들.

세상 온갖 것에 열렬히 반응할 준비가 된 사람들 옆에 있는 것은 피곤하지만 

충전의 시간이기도 하다.

난 손과 목소리, 무릎을 내어 주고 

처음인 마냥 세상을 보고 감탄할 수 있는 눈, 

무섭든 더럽든 뭐든 만질 수 있는 손, 

고우나 미우나 함께 노래 부를 때는 저절로 크게 나오는 목소리, 

모른다고, 좋다고, 싫다고, 귀찮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목소리,

궁금한 마음, 견디는 마음, 잘 웃을 수 있는 마음 그런 것들을 얻는다.     


이미 지치고 화가 난 선생님이 이전에 선생님이랑 약속한 것을 말해보라 하면 

냅다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내 새끼손가락에 거는 것처럼,

옆에서 다른 애들이 지도를 받든 지 말든지 개의치 않고 

냅다 어른의 등에 기대고 안아버리는 것처럼,

그래서 어른에게 작은 혼동을 주는 것처럼,

어린이들처럼,

용기는 조금 부족하지만 ‘냅다 오는 모든 것을 안아버릴까?’ 생각한다.

선풍기 바람만으로 충분한 오전 11시 잔잔한 여름 방학의 시간을 보내다 감상에 젖어

자신이 아는 방식으로, 받은 방식으로 낯선 세상을 마주하기 위해

자신에게 오는 세상을 냅다 안고 보는 이 어쩔 수 없는 사랑스러움이 그립다는,

무서운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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