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네스를 먹고 흑맥주는 마시지 않기로 했는데,
이번 여름 ‘사랑 범벅 스타우트’는
두 잔이 기본이다.
누구와 같이 한약 맛이 아니라,
약간 씁쓸한데 부드럽고 고소한 그것은
분명 올여름 큰 수확이었다.
술은 좋아하지만 혼술을 하지 않는 내가
가끔 처음 맛본 그 맛이 생각나
나답지 않게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끌고 가면,
모두들 ‘도대체 뭔데?!’하고 궁금해하다가
고개를 젓는다.
대부분 한 입 맛보고는
모두 다른 라거와 에일을 찾았고
얼마 전 우리 동네까지 놀러 와준
몇 안 되는 친구 한 명도
그 한 모금에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것의 이름은 원래 ‘피넛 포터 스타우트’였는데
친구와 간 날 ‘사랑 범벅 스타우트’로
이름이 바뀌어 있었다.
사장님, 아무래도 작명에 실패하신 것 같아요.
한 모금 마시면 나나 사랑에 빠지지
나 말고는 도통 사랑에 빠질 기미가 없다.
‘사랑 범벅’은 어쩌다 나온 이름일까.
아무 식재료들이 튀김옷을 입고
떡볶이 소스를 뒤집어쓴 후
‘튀김 범벅’이 된 것과 같이,
어떤 것이든 사랑을 범벅시키면
장땡이라 이건가.
그럼 사장님, 튀김옷과 떡볶이 소스에
버금가는 맥주를 만드셨어야죠.
약합니다. 약해.
물론 나에겐 충분해,
아무래도 맥주는 이제 추워서
못 마시겠다고 생각한 그날
‘사랑 범벅 스타우트’만 네 잔을 마시고
간만에 터진 입을 주체하지 못하고
신나게 사랑 푸념을 해댔다.
이랬다 저랬다 말을 늘어놓다 보니
마음도 말도 커져
무슨 세기의 짝사랑 중인 듯해
웃기기도 싫기도 했다.
밤과 술과 헛소리는
스스로를 속일 수 있을 만큼 잘 어우러지는 게 좋았고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그 사람과 만나는 내일
무언가를 해내고 싶다는 압박이 생기는 건 싫었다.
어제와 다르게 해가 쏟아지던 날이었다.
그래서 좋기도 싫기도 했다.
오래오래 변수 없이 같이 있을 수 있다는 게 좋았고
꼬실 힘도 의지도 없게 만드는 햇빛이 싫었다.
아니 사실 나쁘지만은 않았다.
사랑 범벅 스타우트에 버무리 된 마음을
탈탈 털어
양지바른 곳에 잘 말릴 수 있었다.
바람을 쐬어주고 햇빛도 쐬어주니
마음이 맑아져만 갔다.
맑아진 마음과 함께 눈도 맑아졌다.
그 사람은 참 아무 걱정 없이 해맑게 웃고 있는데
난 같이 웃지 못했고,
그 사람은 목소리가 크고 흥이 많고 순수했는데
난 그 모든 게 너무 버거웠다.
그 사람과 있으면 편해서 말은 술술 나왔으나
실은 난 ‘사랑 범벅 스타우트’를,
그 사람은 ‘얼음 콜라’를 말하고 있었다.
조용한 목소리로 그게 아니라고 말했지만
목소리가 작아 그 사람은 듣지 못했다.
갈증이 나 저 시원할 게 분명한 얼음 콜라를
그냥 마셔 버릴까 고민한다.
다시 갈증을 불러일으킬 게 분명한
저 얼음 콜라를.
아무래도 그 사람 옆에는
자잘한 것에도 머리를 굴리고 힘이 빠지는
내가 아니라
아무 생각 없이 같이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잘 어울린다.
해가 지고 나서는 다시 망각이 시작되나 했으나 오늘은 취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잘 놀았으니 됐다.
과다한 햇빛이 날 꽉 붙들어줬다.
아무래도 당분간 이 짓을 반복할 것 같다.
사랑 범벅 스타우트를 마셨다,
땡볕에 그것을 말려 두었다,
얼음 콜라를 마실까 말까 고민하는 짓.
이 모든 걸 박살 내는데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지만
이렇게 두드리다 보면 금이 가기는 할 것 같다.
혼자만의 마음만큼 상처받기 쉬운 게 있을까!
그 사람만 모르면 되니
되도록 여기저기에 꺼내놓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여기저기에 꺼내놓는, 꺼내놓을 이 감정이
그만큼 빨리 닳고 닳아 휘발되기를 바라면서.
정작 나를 오래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게 아이러니 하지만.
누군가에게 더 주지 못해 안타까운 사랑이 처음이라는 50대의 지인이 생각났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은
바로 어제부터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연락이 됐다며
하늘을 나는 기분이라며 술을 샀다.
그런 사랑을 할 수 있을까?
글로 사랑을 배우기는 싫지만
사랑을 사랑으로 배우는 것도 무서우니
‘사랑 범벅 스타우트’에 고개를 내저은 친구가
주고 간 『사랑의 기술』은
이번이 아닌
그 언젠가를 대비해서 부지런히 읽어 두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