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_주변 사람들
Y는 배실배실 웃다 서두를 꺼냈다.
“그런데 푸댕댕이 말이야~”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사람의 말을
평소보다 3배, 아니 4배쯤은 열심히 듣자 다짐하였지만
푸댕댕의 덕후가 아닌 입장에서 솔직히 질렸다.
질린 얼굴을 알아차렸으면서 Y는 구차하게도 멈추지 못했다.
‘그래, 나도 알지.’
이전에 Y가 듣건 말건 오늘의 최애에 대해 풀어놓다
영 듣는 이의 표정이 성에 차지 않으면
이해하면서도 혼자 토라져 버럭 하곤 했지.
아니나 다를까 방심한 사이,
Y는 듣는 이의 반응이 성에 차지 않아 서운하다며,
다시는 나랑 놀지 않겠다고 방을 뛰쳐나갔다.
Y가 무언가에 빠진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앞만 보고 직선으로 나아가다가도
갑자기 생각지 못한 것에 빠져 주변을 당황하게 하는 Y다.
그녀가 최근 빠진 것은, 그 시작은, 판다다.
푸댕댕(본명: 푸바오)은
오랜만에 중국에서 한국(에버랜드) 땅을 밟게 된 판다 아이바오와 러바오의 외동딸로,
2020년 7월 20일 국내에서 처음으로 자연 분만에 성공하여 태어난 판다라고 한다.
에버랜드는 사기업답게 이를 활용하여
스토리, 굿즈, 유튜브를 통해 푸댕댕의 사랑스러움을 열심히 홍보하였고
2022년 Y는 그중 한 영상을 보고 다소 늦게, 그녀에게 빠져 버렸다.
사람이 아닌 존재에게 빠진 Y는
곧 에버랜드의 다른 동물들과 전 세계의 판다들의 안녕을 빌기 시작했다.
'구독, 좋아요, 댓글, 알람 설정'까지 차곡차곡...
'판다, 호랑이, 물범, 코끼리, 재규어...'
Y의 사랑도 커져만 갔다.
시험 준비로 자주 불안하고 우울하던,
가족 외 사람을 만나지 않아 비어져 가던 Y의 세상이 금세 가득 찼다.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듯한 배실거림이 웃겼지만 그런 Y를 보고 같이 웃을 수 있어 좋아졌다.
세상에는 Y와 같은, 더불어 Y의 사랑을 자극하고 돕는 이들이 많았다.
Y가 구독하는 유튜버 중에는 호랑이만 올리는 유튜버들이 있었다.
그는 쉬는 날이면 동물원으로 향했고 하루 종일 호랑이를 찍어 라이브 방송을 했다.
그 자리에 서서 편의점 음료와 간편식으로 끼니를 때워 가며.
동물원 관계자가 아니었다.(친해지기는 한 듯 하지만)
그는 그저 호랑이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영상을 보고 구독과 좋아요 버튼을 누르고 댓글을 남기는 사람들도
호랑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내가 판다의 습성에 이어 국내 호랑이의 계보, 각 동물원 실정까지 전해 듣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애정이 가득한 댓글을 남기는, 호랑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나이와 성별, 계기는 다양했지만
어느 날 훅 들어온 호랑이 덕에 사는 맛이 생겼다는 것은 같았다.
같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는 한껏 다정할 수 있어
Y를 통해 엿본 그들의 댓글은 나도 웃게 했다.
Y가 언급한 생일 선물 리스트에 푸댕댕과 다른 동물 친구들의 인형이 자리한 것도 당연했다.
내년에 서른이 되는 Y에게
선물이지만 사면서도 돈이 아깝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보니 꽤나 귀여운 판다와 호랑이, 랫서 판다 인형을 건넸다.
“지금까지 받은 선물 중에 제일 맘에 들어, 언니!”
‘언니’라고 했다.
5만 원에 나는 ‘너’에서 ‘언니’가 될 수 있었다.
Y는 시험이 끝나자마자 쉬는 날 엄마 손을 잡고 서울대공원에 갔다.
추위를 뚫고 리프트를 타고 올라
생후 6개월이 지나 처음 공개된다는 아기 호랑이 삼둥이(해랑, 사랑, 파랑)를 보았다.
아기 호랑이들은 유리창 너머의 세상과 사람들에게 자꾸자꾸 다가갔고
엄마 호랑이(펜자)는 야무지게도 아기 호랑이 뒤에 서서 유리창 밖의 사람들에게 으르렁거렸다고 한다.
이에 질세라 Y와 나의 엄마 역시
Y의 뒤에 서서 저 호랑이들의 이름은 무엇인지 물으며
기뻐 날뛰며 신나게 조잘거리는 Y를 어이없지만 흐뭇하게 바라보았다고 한다.
이후 미뤄둔 수술을 하고 오래 걸으면 안 되는 Y는 기어코 가족들 몰래 택시를 타고
혼자 호랑이들을 보러 갔다고 고했다.
호랑이는 Y에게 ‘푸르르’거리며(프루스텐) 애정 표현을 했다고 한다.
(Y는 홀로 즐거웠던 이 추억을 자랑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려 영상을 보여주며 겨우 나에게만 고했다.)
다시 기뻐 날뛰는 Y를 보고 타박하며 고개를 절래하면서도 웃음이 나왔다.
오랜만에 바뀐 Y의 프사를 보고 Y의 친구들은 연락을 해오기 시작했다.
“Y, 너 이제 호랑이에 빠져 버린 거야?”
Y의 시간에 이제 사람들도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어느 날 Y는 두 팔 한가득 꽃을 들고 나타났다.
Y의 절친한 플로리스트 친구 S는 아픈 몸을 이끌고 양재 꽃 시장에 가
꽃을 골랐고 먼 길을 지고 와 꽃꽂이를 했다.
분명 하나만 주면 Y가 자신의 방에 놓지 않고 거실에 둘까
두 개를 만들어 그냥 꽂아 봤다며 무심히 건넸다고 한다.
S는 이유 없이 몸이 아파져 마음도 아파지고 늘 사람이 싫어서 엉엉 우는데도
Y를 생각하며 꽃다발 하나 꽃바구니 하나를 만들어 건넸다.
S의 손과 팔은 마음만큼 아리다는데도.
사람이 싫은 사람에게서 그런 다정한 마음이 왜 나오는 걸까?
그 마음에 사람에 지쳐 집에 들어온, 우리 가족의 얼굴은 환해졌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지만 늘 건강하고 맛난 것을 먹이고 싶은 S.
S를 보고 싶지만 사람에게 질려버린 S가 부담스러워할까,
역시 사람이 버거운 내가 S 앞에서 뚝딱거릴까,
여느 때처럼 언젠가 한 번 꼭 만나고 싶다는 말만 의미 있게 내어 본다.
덧붙여 Y에게 네 유일한 친구 S한테 잘하라고 할 뿐.
S는 꽃을 만지는 사람답게 평소에는 식물에게 사랑을 준다고 한다.
그래서 아끼던 식물을 S의 어머니가 말도 없이 가지치기를 했을 때
화를 내며 엉엉 울었다고 한다.
그런 S가 건넨 꽃을 최대한 오래오래 두기로 했다.
Y 역시 S의 꽃을 죽이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S의 꽃들은 다른 꽃들보다 물을 자주 갈게 된다.
그래서인지 향이 오래가고 오래도록 고개를 들고 있다.
거실에서, 각자의 방에서 오래된 꽃향이 진동을 한다.
S의 향이다.
사람이 싫어서 사람이 아닌 존재에게 마음을 쏟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자니
사람이 좋아진다.
사람이 좋은 지금도 좋지만 그래도 싫어지면 다른 걸 좋아해야지.
동물원은 절대로 가지 않겠다고 다짐하였지만
다짐이 다짐으로만 남듯이.
Y의 면접이 끝나고 정말로 몸이 괜찮아지면,
이 겨울이 끝나기 전 서울대공원과 에버랜드, 봉화의 국립 백두대간 수목원에 가서
호랑이도 보고 판다도 보고 물범, 코끼리도 보기로 했다.
에버랜드는 절대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가지 않겠다는 다짐이
그렇게 녹고 있다.
그 반짝반짝한 눈과 올라가는 입꼬리를 오래 볼 수 있게,
부디 Y의 이번 덕질이 오래오래 갔으면 좋겠다고 바라본다.
그래서 한국의 동물원에서 생을 보내고 있는 판다, 호랑이 가족들의
행복과 안위까지 바라본다.
너머 다른 존재들에게까지도 닿으면 더 좋고.
사람이 다시 좋아지면 더 좋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