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진 결혼식장 대신, 나의 빈집
단단히 자리 잡았다고 믿었던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걸 나는 그때 알았다. 결혼 이야기가 오가기 시작했을 때, 나는 설레었다. 직장 때문에 마음이 다쳐 있던 나에게 ‘누군가에게 기대어도 된다’는 생각은 달콤한 위안이었다. 어릴 적부터 나는 가족의 온기를 잘 모르는 사람이었다. 할머니가 내 엄마였고, 친엄마는 술에 취해 가끔 전화를 걸어 내 마음을 흔들곤 했다. 미안하다고 울던 목소리는 내겐 익숙한 불편함이었고, 그래서 나는 감정이 마른 사람이 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한 가정을 꿈꿨다.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나를 믿어 주고 지지해 줄 사람들이 내 곁에 있다는 상상은 오래전부터 내가 간절히 바라온 일이었다. 남자친구와 함께 예식장도 예약하고, 스드메 계약도 마쳤다. 그런데 준비가 진행될수록 기분은 자꾸 가라앉았다. 속에는 걱정이 자라나고 있었다. 예물에 대한 요구, ‘남편을 하늘처럼 모셔라’는 말들 그들이 진심으로 나를 딸처럼 대해줄 거라 믿었던 만큼 현실의 요구들은 나를 움츠러들게 했다. 우리 집 사정까지 다 말했는데, 그건 별개의 문제가 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더 큰 상처는 남자친구에게서 왔다. 그는 일 끝나면 게임을 하고, 술에 취해 들어오곤 했다. 나는 외로움과 갈증으로 자주 울었고, 그런 내 눈물 앞에서 그는 “알고 있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진짜로 알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어느 날, 그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실에 도착했을 때는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었지만,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며칠 뒤, 그가 술에 취해 집에 들어왔을 때 내 이상한 촉이 발동했고, 그 촉은 틀리지 않았다. 카카오톡 알림이 떠 있었고, 화면 속 메시지는 바로 병원 간호조무사였던 여자에게서 온 것이었다.
남자친구: “그동안 했던 행동들 미안해. 다음에 밥이라도 먹자.”
병원 간호조무사: “괜찮아. 어렸을 때 일이잖아. 다음에 시간 될 때 보자.”
두 사람은 서로의 첫사랑이었다는 사실을 나는 그제야 알았다. 기막힌 우연으로 병원에서 마주치다니, 어이가 없었다. 숨이 막혔다. 이미 아파 있던 마음이, 그 메시지 하나로 찢겨 나갔다.
다음 날, 나는 소리 내어 원망했다.
“직장도, 너도, 왜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 거냐.”
그는 무릎을 꿇고 빌었다.
“다신 안 그럴게.”
하지만 며칠 뒤, 또 술에 취해 들어온 날, 같은 여자에게서 또 연락이 왔음을 확인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날 밤, 나는 파혼을 선언했다. 계약서를 찢고, 3년의 시간들이 마치 비수가 되어 내 가슴을 찍는 듯한 통증 속에서 울며 짐을 쌌다. 짐이 왜 그리 많은지 모르겠다. 추억과 기대들이 박힌 물건들까지 모두 무겁게 느껴졌다. 친구들마저 내게 남아 있는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떤 사람들을 만나야 할지 너무도 무서웠다. 붙잡는 손길도, 무릎 꿇는 모습도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
언니가 있는 동네로 도망치듯 왔다. 신세 지기 싫어 2일 만에 집을 구했다. 텅 빈 집에 나 혼자 이삿짐을 나르며, 술 없이는 잠들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한 달 동안 집 안은 어두웠다. 불을 켠 날이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내 세상이 한순간에 무너졌고, 나는 그 무너진 잔해 속에 홀로 남겨져 있었다. 세상은 공허했고,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