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는 엇나갔지만, 그 과정은 진심이었다
조향을 하다 보면, 늘 잘되는 조합만 있는 건 아닙니다.
머릿속에서 그렸던 향이 실제로는 전혀 다르게 펼쳐질 때도 있고,
완성됐다고 생각했던 향이 시간이 지나면서 엉뚱한 방향으로 변해버리기도 합니다.
예전에, 브랜드의 시그니처 향 개발을 맡았을 때가 있었습니다.
첫 의뢰였고, 꽤 중요한 프로젝트라 부담도 컸습니다.
조심스럽게 분석하고, 이미지와 무드를 분해한 뒤 가장 어울리는 향의 구조를 만들어냈습니다.
향료의 밸런스를 다듬고, 시향지를 정성껏 준비해 전달드렸죠.
하지만 며칠 뒤, 클라이언트의 반응은 예상과 달랐습니다.
“정성은 느껴졌지만… 우리가 그리던 분위기와는 좀 달라요.”
당황스러웠습니다.
나름대로 고민도 많이 했고, 객관적으로 봐도 나쁜 향은 아니었으니까요.
그런데 곱씹어보니, 저는 ‘좋은 향’을 만들고자 했지만
그들의 브랜드 감성과 메시지를 완전히 담아내지는 못했던 겁니다.
결국 방향을 다시 설정하고 처음부터 조향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감정선을 더 살펴보고, 향의 흐름을 다시 정리하고,
브랜드가 진짜 전하고 싶었던 무드에 집중했습니다.
시간은 더 들었지만, 그 이후 나온 결과물은 훨씬 정확하게 전달됐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첫 시도는 분명 실패였습니다.
하지만 그 실패가 있었기에 더 나은 조향이 가능했고,
결과적으로는 제가 더 깊이 있게 브랜드 향을 해석하게 되는 계기가 됐습니다.
그래서 저는 실패한 향도 버리지 않고 남겨둡니다.
어딘가 어긋났던 조합이지만,
그 속엔 그때의 생각과 고민, 진심이 담겨 있으니까요.
그 향을 다시 맡으면, 당시의 과정과 감정이 고스란히 떠오릅니다.
향은 완벽해야만 기억에 남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실패했던 향일수록 오래도록 잔상이 남고,
그 잔상이 다음 조향의 단서가 되어주기도 합니다.
그렇게 실패의 향도, 언젠가는
새로운 조합의 시작이 되곤 합니다.
그래서 저는 믿습니다.
조금 어긋나고, 어설프고, 완성되지 않았던 향조차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 있고 아름답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