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 스며든 향기들

"처음엔 몰랐지만, 언제나 곁에 있었던 향기"

by 멜로우가든 천민주

조향사를 꿈꾸며 자라온 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우연히 이 길을 선택한 것도 아닙니다.

돌아보면, 향기는 늘 조용히 제 곁에 있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특별히 의식하지는 않았지만

삶의 많은 순간에 자연스럽게 스며 있었던 향들.

그 향들이 켜켜이 쌓여 지금의 저를 만든 것 같습니다.


처음 기억나는 향은 엄마 화장대 위에 있던 향수였습니다.

그 시절 엄마의 향기는 고급스럽고 어른스러워 보였고,

몰래 뿌렸다가 들켜서 혼나고도 다시 손이 갔던 향이었죠.


그걸 뿌리면 마치 초등학생이 아니라

어디선가 멋지게 걸어 나오는 어른이 된 기분이 들었습니다.

중고등학생이 되면서는 향수보다 샴푸 냄새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당시에 인기 많던 친구들은 꼭 머리에서 좋은 냄새가 났거든요.

그래서 저도 이것저것 바꿔 써보며 실험을 했지만,

“무슨 샴푸 써?”보단 “오늘 운동했어?”가 더 많이 들렸던 기억이 납니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감성이 한껏 올라오던 시기였죠.

그때는 향초가 유행이었고,

저도 책상에 조그마한 캔들을 하나 켜두고

일기나 글을 쓰며 그럴듯한 시간을 보내곤 했습니다.

물론 옆에 컵라면이 있었고, 감성은 3분이면 끝났지만요.


사회에 나와 첫 직장을 다니던 시절,

하루 종일 실내에 앉아 있으면서도

머릿속은 끊임없이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반복됐습니다.

그때마다 제 손에 꼭 쥐고 있던 건 핸드크림이었죠.


아무도 모르게 손등에 살짝 짜서 코 가까이 가져다 대는 그 순간,

잠깐이지만 제 안에 쌓인 긴장이 조금씩 풀리곤 했습니다.

그 시절을 떠올리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말은

“이거 무슨 향이에요? 어디 거예요?”일 겁니다.


그리고 지금, 저는 조향사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향을 ‘찾는’ 사람이 아니라 ‘만드는’ 사람이 되었죠.


예전처럼 향에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일이 줄긴 했지만,

문득 스치는 어떤 향에 여전히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이 있습니다.


지하철 옆자리, 골목길을 걷다가,

마트 세제 코너에서 스친 익숙한 향 하나가

예고 없이 감정을 건드리고,

마음이 한 박자 천천히 쉬게 만드는 그런 순간들.

그럴 때마다 생각합니다.


제가 이 일을 선택한 건,

향을 잘 알고 있어서가 아니라

사실은 향 하나에 너무 쉽게 감정이 움직이는 사람이기 때문이었구나.


돌아보면 향은 늘 제 옆에 있었습니다.

화장대 위, 샴푸 속, 책상, 회사 서랍, 그리고 지금 제 작업대까지.


삶은 거창하게 만들어가는 것보다

그저 매일 스며드는 것들로 채워지는 게 더 많을지도 모릅니다.

그 향기들처럼요.


오늘도 문득 떠오르는 향 하나가

당신의 하루에 은근히, 조용히

스며들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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