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과 함께한 향기의 기록

"그때의 향은 사라졌지만, 그때의 나는 남아 있다"

by 멜로우가든 천민주

돌아보면,

제 삶에는 언제나 향기가 곁에 있었습니다.


그 향들이 뚜렷하게 기억나는 날도 있고,

무심히 지나간 듯하지만 나중에 가슴 한 켠을 건드리는 향도 있죠.



조향을 배우기 전에도 저는

향기와 꽤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었더라고요.


샴푸, 비누, 엄마의 향수, 학교 복도 냄새,

방금 막 비운 교실의 나무 책상 향까지.


말하자면 제 성장기엔 언제나 ‘냄새의 페이지’가 있었던 거죠.



성인이 되고 나서의 향은

조금 더 취향과 연결되어 있었고,

사회인이 되며 맡은 향은

때론 책임감과 스트레스 냄새 같기도 했어요.



조향을 시작한 이후부터는

‘향을 기억하는 사람’에서

‘향을 기록하는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어떤 향을 조합하던 날의 기분,

노트에 적힌 수많은 시향의 메모,

테이블 위에 말라 있던 시향지 한 장까지도

이젠 모두 제 성장의 단서가 되어 있더라고요.



예전엔 한 가지 향이 마음에 들면

그 향만 계속 고집했는데,

요즘은 계절이나 감정에 따라

나도 모르게 손이 가는 향이 달라집니다.



그걸 보며 알게 됐어요.

내가 바뀌고 있다는 걸,

그리고 그게 나쁘거나 흔들리는 게 아니라는 걸요.



향은 그 시기의 나를 꽤 솔직하게 드러냅니다.


무언가를 이겨내고 싶을 때는

조금 강하고 선명한 향이 어울렸고,

지치고 무기력할 때는

그저 부드럽고 아무 자극 없는 향이 마음을 눌러줬죠.



그래서 저는 향을 ‘기록’이라고 생각합니다.


일기처럼 쓰지 않아도,

매일 향을 고르는 그 순간에

나의 하루와 감정이 스며 있거든요.



성장이란 게 사실 그렇게 거창한 건 아닐지도 모릅니다.


무언가를 더 잘하게 된다는 것보다,

예전보다 조금 더 나를 잘 아는 것.


그리고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 것을

스스로 알아볼 수 있는 상태.



그런 의미에서 향은

제가 저를 알아가는 데 아주 고마운 도구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오늘도 문득 스치는 향 하나에

예전의 내가 잠깐 떠오르기도 하고,

지금의 내가 한 뼘 더 자라 있었음을 느끼기도 합니다.



향이 완성된 순간보다

그걸 만들어가는 과정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 것처럼,

저 역시 그렇게 천천히

조금씩 나를 완성해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 모든 시간들에는

언제나 작은 향기 하나가 함께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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