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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rk Dec 16. 2017

고음과 저음 사이

체리필터-내 안의 폐허에 닿아

<낭만 고양이>, <오리 날다>, <달빛 소년>, <내게로 와> 등 희망찬 가사와 밝은 멜로디로 큰 사랑을 받았던 체리필터. 생각해보면 자우림과 체리필터의 성공으로 2000년대 여성 보컬을 앞세운 다양한 밴드가 탄생했다. 러브홀릭, 럼블피쉬, 매드 소울 차일드 등등.


체리필터 하면 영어 선생님 출신으로 화제를 모았던 보컬 조유진과 보컬의 손가락을 펄럭이는 습관이 생각난다. 모든 그룹이 그렇듯 보컬이 가장 많은 관심을 받기 때문에 다른 멤버들은 찬밥 신세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나마 <무한도전>에 나왔던 손스타(손상혁/드러머)가 그나마 인지도가 있는 편이다.



데뷔 초반 김윤아가 이끄는 자우림과 묘한 라이벌리를 형성하기도 했지만 2000년 대 중반 이후 별 다른 소식이 없다가 김 다 빠진 <나는 가수다>에 나와 반가운 얼굴을 비추기도 했다.


체리필터의 히로인 조유진을 보면 밝은 사람이란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녀가 보여주는 무대 매너와 표정,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함박웃음을 짓는 순수함 등을 보면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체리필터의 대부분의 노래는 그녀처럼 밝다. 작사, 작곡, 편곡까지 하기 때문에 스스로도 곡의 주제와 가사에 대해 많은 신경을 쓴다고 한다.  

 

그중에서 가장 어두운 노래는 <내 안의 폐허에 닿아> 일 것이다. 메가 히트한 <낭만 고양이>가 수록된 2집 앨범 <Made In Korea?>에 있는 곡이다. ‘하고 싶은 것은 너무나도 많은데 주머니엔 달랑 몇 백 원이 전부인 게 서러웠’다는 우울한 가사도 즐겁게 부르는 체리필터 답지 않은 곡이라 더욱 꽂혔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낭만고양이>도 가사를 들어보면 그다지 밝지만은 않다. ‘서럽게 울던 날들 나는 외톨이라네’, ‘슬픈 도시’, ‘한 없이 밑으로만 가라앉고 있는데’, '홀로 떠나가 버린 깊고 슬픈 나의 바다'.   


크라잉넛의 한경록이 작사한 이 곡에 대해 조유진은 “신나게 들리지만 사실은 외롭고 우울한 내면을 그리고 있는 시적인 곡”이라고 설명했다. 


참고로 원래 <낭만 고양이>의 원래 제목은 <고양이>였는데 너무 밋밋하다고 생각했던 멤버들이 당시 말버릇인 ‘낭만’을 제목 앞에 붙여서 만들었다고 한다.   


ex- 너 뭐 먹을래? 나는 ‘낭만’ 짜장면.  <슬램덩크>의 이명헌 같은 버릇 (말 끝마다 용을 붙이는) 


어쨌거나 저쨌거나 <내 안의 폐허에 닿아>는 고음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음에 약하다는 조유진의 저음과 함께 조유진의 강점인 고음을 함께 들을 수 있는 곡이다. 저음으로 깔리는 보컬 뒤로 강점인 돌고래 소리가 쓱 깔린다. (휘슬이라고 불리는 창법)   


이건희 회장에게 시끄럽다고 공연 도중 내려오기도 했지만, 최근 앨범은 대중적인 인지도를 얻지 못했지만 故신해철이 말했던 것처럼 ‘Ultra A급의 국제적 수준에 이른 보컬리스트’가 부르는 4, 5집도 여전히 뛰어난 완성도를 자랑한다. <내 안의 폐허에 닿아>를 좋아하신다면 5집 앨범의 <피아니시모>도 꼭 들어보자. 




체리필터- 내 안의 폐허에 닿아


그대로 여기 있었을 뿐 
단 한치도 나아가지 못했던가 
끝내 황폐한 내 맘속을 
숨겨온 것뿐인가 

그냥 거기에 머물렀고 
언제 다시금 불안한 일탈을 꿈 꿀 런지 나의 깊은 절망 
많은 날들을 희망에 기대 여기저길 서성였고 
그 젊은 날 난 절망을 배워 그 발걸음 멈춰 세웠네 

내 안의 폐허에 닿아 차갑게 가득 

어둠이 드리운 내 맘을 펼쳐보았네 
살아온 날들이 흘러 회색 빛 가득 눈물이 드리운 내 맘이 

부딪혀 깨어지는 소리를 들었네 
그래 나 아무것도 버리지 못했던가

그대로 여기 있었을 뿐 
조각난 모든 상처의 얼굴들 
다시 되돌려 하나씩 더 뚜렷이 각인할 뿐 

이젠 지우고 떠났으면 
돌아서려니 너무나 정다운 
그리운 얼굴 긴 그리움 

내 안의 폐허에 닿아 물거품처럼 
짧은 이별을 말하는 너를 보았네 
수많은 시간을 돌아 소리쳐 봐도 
너무 쉽게 날 잊고 굳게 입을 다문 너와 마주했네 

난 아무것도 그래 난 아무것도 
버리지 못했네 


내 안의 깊은 폐허 속에 
잊지 못하는 기억과 상실에 
메마른 눈물 흘리는 
작은 새가 노래하네 

이제 날아가야 한다고 
검게 그을린 날개를 펼치며 
목쉰 소리로 노래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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