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irk Feb 22. 2018

장인 정신 발동

도로타 코비엘라, 휴 웰치맨- 러빙 빈센트

미술사의 한 획을 그은 인상파. 사실 ‘인상파’라는 말은 ‘루이 르루와’라는 작품이다. 
   
카미유 피사로는 제1회 인상파 전시회에 출품한 <하얀 서리>로 인해 신문기자 루이 르루와로부터 “지저분한 캔버스 위에 팔레트 부스러기를 뿌려놓은 것 같다."라는 야멸찬 조롱을 당했다. 

Hoarfrost at Ennery (하얀 서리), 1873, Oil on Canvas, 65x93 cm


1872년 모네가 파리의 전시회에 출품한 ‘인상, 해돋이’라는 작품에 대해서는 “그저 모호하고 야만적이며 형편없는 그림이다. 예술의 본질은 찾아볼 수 없고 표면적인 인상만 남아있다"라고 비평한 데에서 ‘인상주의’라는 말이 유래했다. 이런 비판 덕분에 루리 르루와는 역사에 남을 수 있었다. 


인상, 해돋이, 1873, Oil on Canvas, 48x63cm


인상파 화가 중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인물은 단연 빈센트 반 고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고흐의 인기는 특별하다. 국민 가수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에서도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 간 고흐란 사나이도 있었는데’라는 가사가 나온다.
   
1990년 소더비에서 8,250만 달러에 팔린 <가셰 박사의 초상>, 1998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 출품되어 7,150만 달러에 낙찰된 <자화상>, 2017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8,130만 달러에 거래된 <들판의 농부> 등 천문학적인 금액에 거래되는 빈센트의 그림들은 전 세계인이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다. 


가셰 박사의 초상, 1890,  Oil on Canvas, 67x56cm


이런 사랑이 빈센트의 화풍과 스토리를 스크린으로 옮겨놓았다. 빈센트의 그림이 살아 움직이는 <러빙 빈센트>는 배우들이 촬영한 영상 위에 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다시 이어 붙여 만들어졌다. 이렇게 영화 역사상 최초의 ‘유화 애니메이션’이 탄생했다. 



영화에 들어가는 6만 5,000개 프레임의 각 장면은 115명의 화가가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그려낸 것이다. 이렇게 탄생한 영화를 감상하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폴란드 영화 협회가 영화 제작비를 지원하고, 애니메이션 동화로 쓸 유화를 그리기 위해 전문 유화가를 재교육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킥스타터의 크라우드 펀딩으로 모금했다.
   
반 고흐의 대표작 ‘별이 빛나는 밤에’ 수놓은 강렬한 별은 뱅글뱅글 돌더니 새로운 오브제로 변신하고, 새로운 오브제도 순식간에 또 다른 고흐의 작품으로 재탄생한다. 유려하게 움직이는 고흐 풍의 유화는 우리에게 새로운 감동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러빙 빈센트>는 빈센트 반 고흐가 죽은 지 1년 후, 아를에서 시작한다. 아를의 우편배달부 롤랭은 그의 아들 아르망에게 고흐의 편지를 테오에게 전달하라고 말한다. 아버지를 이길 수 없었던 아르망은 테오를 찾아 파리로, 테오가 죽은 것을 알고 난 후 빈센트와 가깝게 지낸 가쉐 박사를 만나기 위해 오베르로 가게 된다.
   
그 과정에서 아르망은 빈센트가 만난 사람들에게 고흐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빈센트가 죽인 이유를 나름대로 추리하는 것이 영화의 주제이다.



사실 빈센트의 죽음은 아직까지 많은 추측이 존재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고흐의 죽음은 자살이었다. 그러나 반 고흐가 자살을 한 것이 아니라 지역에 사는 십 대 불량배에게 살해되었다는 설도 존재한다. 혹은 십 대 불량배에게 총을 맞은 후 치료를 거부했다는 가설도 있다.
   
마제리 박사의 주장처럼 자살을 하려는 사람은 보통 복부를 쏘지 않고, 화가가 총을 자신의 몸에 가까이 겨냥하기 힘들다는 것 그리고 총을 쏜 후 손에 남는 그을음 흔적이 없었다는 점이 근거이다. (물론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은 타살이 아니라 자살이라고 못 박고 있다)
   
영화는 초반 빈센트의 죽음을 쫓는 미스터리 극으로 시작하지만 막판엔 이런 중심 소재가 흐지부지되는 경향이 있지만 휘몰아치는 고흐풍의 유화가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러빙 빈센트>는 충만한 매력을 보유하고 있다. 



과거 화가들은 대상을 그대로 옮기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생각했다. 이를 미메시스(Mimesis)라고 한다. 이런 경향은 사진기가 발명하기 전까지 이어졌다. 사진은 1826년 니엡스가 발명했으니 1860년에 대략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인상파와 시기가 겹친다. 미메시스는 사진보다 잘할 수 없으니 화가들은 사진과 다른 화풍을 개발했다. 그중 하나가 인상주의이다. 어떤 풍경을 보고 느낀 인상. 그러니까 고흐는 밤하늘을 ‘별이 빛나는 밤에’처럼 느낀 것이다. 고흐는 많은 풍경과 사물을 그의 그림처럼 강렬하게 느꼈다. 평생 그렇게 사는 것은 축복이 아닌 저주였겠지만 한 번쯤은 그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하게 된다. 



가쉐 박사의 가정부는 그를 ‘악마’ ‘광기’라고 말하고 라부 여인숙의 딸은 ‘조용하고 친절한 사람’ ‘매일 성실하게 그림 그리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가쉐 박사의 딸은 그를 ‘천재’라고 치켜세운다. 빈센트 반 고흐는 스스로를 “난 내 예술로 사람들을 어루만지고 싶다. 그들이 이렇게 말하기를 원한다. 마음이 깊은 사람이구나.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구나.”
  
영화의 주요 배경과 등장인물은 모두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에서 차용했다. 아를의 노란 집과 기찻길, 오베르 교회와 강가 그리고 정원, 파리 거리의 몽마르트 전망대 등. 이 영화를 보고 가슴 뜨거운 뭔가를 느꼈다면 고흐의 바람이 성공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이거 완전 뮤지컬 영화 아니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