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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rk Apr 11. 2018

애착 관계의 중요성

린 램지- 케빈에 대하여

 심리학자 해리 할로우는 조지아 대학교수로 재임하던 시절 사랑에 관해 알아보기 위해 위대한 실험을 진행했다. 이를 위해 할로우 교수는 인간과 94%의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는 붉은 털 원숭이 새끼를 어미로부터 격리시켰다. 그리고 우유가 나오지만 철사로 만들어진 어미와 헝겊으로 덮여 있지만 우유가 없는 어미 인형을 배치했고 새끼 원숭이가 무슨 인형을 선택하는지 지켜봤다. 
  


 당시 많은 학자는 새끼 원숭이가 우유가 나오는 철사 어미에 애착을 보일 것으로 예상했다. 배고픔이라는 1차적 욕구가 따뜻함, 편안함 같은 2차적 욕구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모든 새끼 원숭이는 고민의 여지없이 헝겊 어미 쪽에서 하루를 보냈다. 물론 배가 고프면 철사 어미 쪽으로 가 우유를 먹었지만 그러고 나서는 따뜻한 스킨십을 할 수 있는 헝겊 어미로 달려갔다. 

 새끼 원숭이에 장난감을 주자 철사 어미 쪽에서 자란 원숭이들은 아무런 관심이 없었지만 헝겊 어미 쪽에서 자란 원숭이는 천천히 장난감에 접근했다. 놀라운 것은 헝겊 어미에도 우유를 나오게 하자 철사 어미와 함께 지냈던 원숭이들은 우유를 소화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설사를 자주 했다. 심지어 헝겊 어미를 아예 없애버리고 공포 자극을 주자 새끼 원숭이는 철사 어미 쪽으로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구석에서 몸을 웅크렸다. 원숭이에게 차가운 물을 끼얹거나 뾰족한 물건으로 찌르는 자극을 주는 조건에서도 그들은 헝겊 어미 쪽으로 갔으며 헝겊 어미에 안겨 찔려 죽어간 원숭이들도 있었다.
   
  지금 시대에선 그다지 충격적이지 않게 느껴지는 실험 결과지만 이 실험을 할 당시 미국의 육아 환경은 상당히 마초스러웠다. 아이는 아이 방에서 따로 재우는 게 당연했으며 아이가 운다고 안아주면 나약한 아이가 된다는 생각이 지배하던 시기였다. 해리 할로우의 ‘애착 실험’으로 현대의 육아법이 탄생했고 정서적으로 건강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선 엄마의 사랑과 부드러운 신체 접촉의 중요성이 대두되었다. 
   
  2011년 개봉한 린 램지 감독의 영화 <케빈에 대하여>를 소개하는 매체에서는 대부분 사이코패스 또는 소시오패스로서의 케빈 캐처도리안 (에즈라 밀러)에 집중한다. 이렇게 영화를 소개하면 영화를 이해하긴 쉬워진다. 하지만 이 영화를 이렇게 해석하면 우연히 사이코패스를 낳은 에바 캐처도리안(틸다 스윈튼)은 피해자이자 선(善)으로 해석된다. 과연 케빈을 우연히 낳은 사이코패스로, 에바를 사이코패스 아들을 낳은 피해자로 해석하는 게 맞는 것일까? 



 
 유명한 여행작가인 에바는 여행지에서 만난 프랭클린 (존 C. 라일리)와 관계를 통해 아이를 갖게 된다. 자유로운 여행가 생활을 하다가 '아이'라는 족쇄가 생긴 에바. 


12시가 넘어간 신데렐라처럼 에바의 삶은 변한다


다른 임산부들의 행복한 표정과 달리 긴장하고 불만족스러운 에바의 표정


아이가 태어났음에도 그녀의 얼굴에서 행복을 찾아볼 수 없고
 칭얼대는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다 지친 그녀는
공사장 소음으로 아이의 울음소리를 덮어버린다.
그리고 이어지는 에바의 후련한 표정.



철사 어미 밑에서 자란 아이는 커서



 마치 처키 같은 표정을 짓는 불만 가득한 아이가 된다. 아들의 반항에 그녀의 태도는 변하지 않는다. 아이의 정서를 망친 본인의 책임은 알지 못한 채 에바는 어린 아들에게 이런 말을 서슴없이 한다.



이런 관계 속에서 케빈은 시종일관 반항 어린 눈빛으로 에바를 쏘아쏘아볼 뿐이고 결국 에버는 케빈의 청력 이상이나 자폐증을 의심하여 병원을 찾는다. 하지만 정상이라는 의사의 진단에 에바는 안도하기는커녕 오히려 살망한 기색을 드러낸다. 왜? 케빈의 비정상적인 행동에 대한 죄의식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심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즉, 케빈의 더딘 발달이 자신의 부족함이 아니라 케빈에게서 찾길 원했기 때문이다. 유아기에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엄마와의 애착관계는 케빈이 사이코 패스적 기질을 가지게 만드는 결정적인 이유가 된다.

 중간중간 케빈은 여전히 엄마의 사랑을 갈구한다. 둘째가 태어났을 때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엄마의 애정을 모조리 빼앗긴 케빈의 표정에서 이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에바는 애초에 설정한 서먹서먹한 관계를 개선하지 못한다. 어린 케빈 역시 이러한 관계를 반전시킬 기술은 없다. 이렇게 엄마와 아들은 미성숙한 정신 상태를 지닌 채 살아가게 된다.



배꼽이 드러날 정도로 작은, 어린 시절의 옷을 입는 케빈. 그의 미성숙한 정신상태를 보여준다.


이렇게 시간을 보낸 모자 관계는 파국으로 치 닿는다. 모든 사건에 범인을 케빈이라고 생각하는 엄마. 이런 의심을 즐기듯 묘한 행동을 하는 케빈.



잘못 설정된 애착관계의 말로는 끔찍했다.







범죄의 대가로 교도소에 간 케빈은 2년이 자니 18세가 가까워져 소년교도소에서 성인 교도소로 이송될 준비를 하게 된다. 이때 케빈을 만난 에바는 왜 그런 짓을 했는지 묻는다. 그러자 케빈은 이렇게 대답한다.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모르겠어."
I used to think I knew. Now I'm not so sure.





 이 영화는 미국의 작가 라이어널 슈라이버의 소설 <케빈에 대하여>를 기반으로 만들었다. 사이코패스 아들을 둔 어머니를 다뤘던 이 소설과 시나리오를 받아 본 에즈라 밀러는 케빈을 사이코패스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런 의견을 받아들였는지 실제 영화에서는 원작과 다르게 해석할 여지를 많이 남겨 둔 편이다.

 케빈이 저지른 범죄의 지분은 엄마와 케빈 중 누구의 책임이 더 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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