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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rk Oct 29. 2017

영봐 봥, 두 번 봥

오리오 파울로-인비저블 게스트

천천히 따져봐야겠지만 인생에서 본 스페인 영화는 아마 <판의 미로>가 유일했을 것이다. 친구의 추천을 받아 본 <인비저블 게스트>는 내 인생의 두 번째 스페인 영화가 됐는데 앞으로 스페인 영화에 좋은 선입견이 생기지 않을 정도로 두 영화 모두 훌륭했다.



 성공한 사업가 아드리안은 불륜 상대인 로라를 죽인 용의자로 지목된다. 아드리안에게 주어진 시간은 3시간. 단 한 번도 패배한 적 없는 변호사와 함께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이야기를 맞춰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2017 전주 국제영화제를 통해 국내 첫 공개된 <인비저블 게스트>는 상당한 호평을 받았지만 스페인 영화이기도 하고 홍보도 잘 안 돼서 100만 명에 채 못 미치는 관객을 동원하는데 그쳤다. 너무 아깝기도 하고 제작비가 얼마 들지 않는 스릴러라는 장르 특성상 한국에서 리메이크한다고 한다. 감독이 버지니아 굿맨의 역할을 김혜자 씨가 맡았으면 한다는데 개인적으로는 나문희 씨가 의외로 잘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순박함과 이성적인 양극단의 연기를 해야 하는데 노령의 여배우가 누가 있을까? 은근히 장미희 씨도 잘 어울릴 듯도 하고.



스릴러는 사실 영화와 감독의 기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장르다. 마지막 반전을 위해 이런저런 요소를 애매하게, 그러나 너무 붕 뜨지 않게 곳곳에 흩뿌려놔야 한다. 영화를 편안하게 보고 싶어 하는 관객들도 찾을 수 있게 쉬운 힌트도, 팔짱 끼고 감독이 숨겨놓은 반전을 찾고야 말겠다는 관객들을 위해 나름 정교한 장치도 구성해야 한다. 


 전자만 신경 쓰면 영화의 완성도는 낮아지고, 후자만 신경 쓰면 대중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제작비가 얼마 들지 않은 대신에 이런 딜레마를 극복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스릴러 영화, 반전 영화는 두 번 보면 더 재밌다. 물론 두 번 보지 않을 영화는 한 번 볼 가치도 없다고 누군가가 말했지만 특히 잘 만든 스릴러 영화는 특히 두 번 볼 가치가 있다. 


 감독이 숨겨놓은 장치, 애매하고 이해가 잘 안 되었던 요소나 설정은 전부 감독의 치밀한 계획 아래 구성됐다는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냥 지나갈 수 있는, 도리아를 변호해줄 변호사 버지니아 굿맨이 예상보다 일찍 도착한 것도 영화를 다시 보면 새롭게 다가오는 미세하지만 꼭 필요한 설정이다. 


 영화의 반전을 알고 나면 버지니아 굿맨이 자신의 아들을 죽인 도리아 앞에서 대단한 연기를 펼쳤다는 사실에 감탄하게 된다. 비록 우리에게 익숙한 국어나 영어가 아니라서 감정을 읽어내는데 다소 어려움이 있을 순 있지만 말이다. 



(젊은이도 묻었냐고 물어보는 버지니아 굿맨. 영화를 끝까지 보면 사실 이 젊은이가 자신의 아들이다. 주인공에게 진실을 받아내기 위해 연기를 펼치는 엄마의 모습을 영화를 다시 보면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여기서도 무심코 지나갈 수 있는 설정이 있다



희생자의 아버지 토마스 가리도는 로라의 차를 고쳐주기 위해 자신의 집으로 가면서 아내와 연극 동호회에서 만났다고 말한다.


이후 로라가 가리도의 집에 갔을 때 집안을 구경하는 장면에서 연극과 관련된 힌트를 한번 더 뿌려준다.



억울하게 죽은 다니엘 엄마 엘비라가 어떻게 그토록 감정을 죽이고 연기를 할 수 있었는지 설정을 해놓은 것이다. 무심코 봤으면 몰랐을 설정, 특히 스페인어였기 때문에 이해하기 힘들었던 설정과 대사를 통해 감독은 엘비라가 출중한 연기력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를 만들어놓았다. 


 등장인물의 심리를 반영하는 배경화면이나 무대 소품이 설정도 재밌다. 고립된 주인공의 심정을 혼자서 높게 솟구친 빌딩을 통해 반영하는 장면이나



외롭고 공허한 싸움을 펼치는 주인공의 심정을 잿빛 하늘과 넓은 배경을 통해 잘 표현했다.



아직 자신의 무죄 논리를 완성하지 못한 주인공의 상황을 공사 중인 빌딩으로 묘사했고



경찰서에서 주인공의 불안한 심리는 불안정한 역삼각형 구도의 액자와 뿌옇게 처리된 배경화면으로 처리했다.



확실히 스릴러, 반전 영화는 보물찾기 하는 재미가 있다. 이미 <인비저블 게스트>를 봤다면 한 번 더 보면서 감독이 뿌려놓은 힌트들을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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