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irk Oct 29. 2017

마지막 장면을 지울 수만 있다면

장훈-택시 운전사

요즘 너무 문화 편식을 하는 게 아닌가 싶어 한국영화를 보기로 결정했다. <옥자>를 볼까, <택시 운전사>를 볼까 하다가 2017년 첫 천만 영화인 <택시 운전사>를 보기로 결정했다.



광주 민주화 운동 이야기다. 서울에서 택시 기사로 일하는 김만섭(송강호)이 광주의 참상을 보기로 결정한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치만)를 태워 광주로 향하고 그곳의 참상을 보여준다는 내용이다.   


교과과정에 실려 있고 다양한 소재로 탄생한 ‘광주 민주화’ 운동이기 때문에 줄거리 요약은 이 정도면 될 것 같다.  



<택시 운전사>는 당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세트를 구성하는데 애쓴 느낌이 한껏 느껴진다. 당시 풍경뿐만 아니라 시대적 배경도 녹아내려고 했다. 배경 뒤로 보이는 야한 영화 광고는 당시 3S 정책을 사람들에게 상기시킨다.   


이 광고는 민주화 운동이 끝나도 몇 년 후에 다시 보이는데 이는 수많은 사람이 민주화에 젊음과 목숨을 바쳤음에도 여전히 국가통수권자는 전두환이라는 뼈아픈 현실을 보여준다. (영화가 만들어질 당시는 아마 박근혜였겠지.......)   


영화 마지막, 택시 손님의 목적지는 광화문이다. ‘이게 나라냐’라며 추운 겨울에, 소중한 휴일에 촛불을 들고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기 위한 광장을 가득 메운 광화문이라는 장소로 영화를 끝낸 것은 훌륭한 선택이었다.   


영화가 만들어질 당시에는 박근혜 탄핵 집회가 없었지만 광화문은 MB 때부터 집회하면 생각나는 곳이다. 그래서 광화문 촛불 시위에 나갔던 사람은 영화를 보면서 더 깊은 감동과 함께 인물들의 이야기에 공감했을 것이다. 광주시민들에게 미미하게나마 빚을 갚았다는 기쁨에 웃음 지은 사람도 많지 않았을까. 



초반에 사이드 미러가 부서지는 장면도 재밌다. 이는 김만섭이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시위하는 대학생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삶에만 관심을 갖는 소시민인 김만섭이 위르겐 힌츠페터를 만나 변화하는 과정이 영화의 큰 주제인데 이를 초반에 김만섭의 재산 목록 1호이자 밥벌이 수단인 택시의 사이드 미러를 부수면서 비유적으로 캐릭터의 성격을 알려준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광주에서 올라온 김만섭이 딸을 안고 우는 장면이다. 감동적이어서 인상 깊었던 게 아니라 딸의 이마에 있었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아서 인상 깊었다. 김만섭이 광주에 있었던 시간은 고작 이틀, 영화에서 주검이 널려있고 피와 살점이 낭자한 지옥 같은 곳에서 있었던 시간은 고작 이틀이었다. 이틀 동안 세상과 단절된 광주에선 그 많은 사건과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그 시간은 광주 사람들에겐 영겁 같은 시간이었지만 밖에서는 어린아이 상처 하나 제대로 아물지 않은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



광주 민주화 운동은 너무 엄청난 사건이기 때문에 영화, 책, 다큐멘터리, 뉴스 등으로 나왔던 소재다. 게다가 너무 비극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다룰 때도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그런 점에서 논평이 자유롭진 못하지만 어쨌든 이 영화에서 아쉬운 점은 위르겐 힌츠페터다와 마지막 장면이다.



크게 세 가지 정도가 아쉬운데 첫 번째로는 일본에 있던 피터(위르겐 힌츠페터의 애칭)가 한국으로 오는 설정이 너무 약하다. 2~3분 정도만 할애하면 충분히 정당성을 부여해 관객들이 매끄럽게 공감할 수 있었을 텐데 갑자기 한국으로 입국하는 장면으로 전환할 때 벙 찌는 느낌을 받았다.   


두 번째로는 외국인이 보는 광주 민주화 운동의 느낌이 전혀 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이나 <인생은 아름다워>은 어린아이의 눈을 빌려 나치의 악행을 고발한다. 자극적이진 않지만 한번 곱씹어보면 더 감정을 극대화할 수 있는 것이 타자의 눈을 빌려 사건을 바라보는 것이다. 


<택시 운전사>에서도 충분히, 아이는 아니지만, 외국인의 눈을 빌려 광주 민주화 운동을 바라볼 수 있었다. 오히려 선진국인 독일인의 눈을 빌린다면 본 군부의 추악함 더 여실히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예를 들면 광주 시민들이 다치는 장면에서 “그 더러운 히틀러도 자국민을 이렇게 다루진 않았어.” 라든지 양심의 가책 없이 시민들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군인들을 보고 “한국인 징병제라며. 그럼 저 군인들도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광주 시민 같은 사람이었잖아. 근데 어떻게 아무런 생각 없이 한 민족에게 총을 겨눌 수 있어?”라는 대사를 넣어줬으면 어땠을까?   


그런 대사가 너무 간지럽다면 쓰러진 광주 시민을 보면서 유대인에게 미안함을 고하면서 감정을 절제하며 히틀러와 전두환에게 욕설을 퍼붓던지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생각보다 <택시 운전사>에서 피터의 연기가 돋보이지 않았다 다. 피터 역할을 맡은 토마스 크레치만은 많이 절제하긴 하지만 연기가 나쁜 배우는 아닌데 유독 <택시 운전사>에서 눈에 띄지 않는다. 나름 주인공급 역할인데 말이다. 


물론 실존 인물이기 때문에 너무 각색하는 것은 어려웠겠지만 쓰러지는 시민들을 보면서 기자의 소명과 생명을 지켜야 한다는 두 가지 가치 충돌에 괴로워하는 모습을 넣어 피터에게 크레치만에게 할애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마지막으로는 황태술(유해진)을 비롯한 광주의 택시 운전사가 군부에 쫓기는 송강호와 피터를 돕기 위해 장렬히 전사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탄식이 나왔다. 그 엄청난 경계를 뚫고 그렇게 많은 택시가 어떻게 광주를 빠져나왔느냐는 비논리적 전개가 아쉬운 게 아니라 과하게 감동을 쥐어짜려는 감독의 선택이 아쉬웠다. 


때론 감정의 절제를 이용해 감동을 극대화할 수 있는 것인데 아직 감동이 부족하다는 감독의 노파심으로 생긴 이 장면은 오히려 그동안 느꼈던 감정을 흐릿하게 만든다. 너무 과하다. 이런 비판을 감독도 많이 받았는지 인터뷰에서 이 장면을 굳이 넣은 것은 광주 민주화 운동에서 소시민들의 활약상을 넣고 싶다고 밝혔는데 이걸 참지 못해 그동안 쌓아 올린 이야기의 흐름을 망쳐버렸다.   


영화 마지막 세월이 흐른 후 김만섭이 크레치만의 소식을 보면서 “고맙긴 이 사람아. 내가 더 고맙지.”하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이 장면에서도 그 기사를 보면서 감정을 절제하면서 대사 없이 촬영했다면 감독이 느끼길 원하는 감동을 관객들이 얻었을 텐데 괜히 오글거리는 대사를 넣어 끝맺음이 깔끔하지 않다.   


코코 샤넬은 “외출하기 전 마지막으로 걸친 액세서리는 빼라.”라고 조언한 바 있다. <택시 운전사>에겐 코코 샤넬의 명언이 필요한 듯 보인다.


(물론 나치 스파이로 밝혀져 엄청난 비난을 받긴 하지만)


매거진의 이전글 이 감독 뭐야. 무서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