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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rk Nov 05. 2017

나는 실격인가 합격인가

다자이 오사무- 인간 실격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를 처음 만난 건 웹툰 <생활의 참견>에서였다. 작가가 어린 시절 <인간 실격>에서 인상적인 대목을 소개하는 장면이 있다. 


신주쿠 보도 위에서 주먹만 한 돌멩이가 느릿느릿 기어가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아, 돌멩이가 기어가고 있구나. 단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돌멩이는 그의 앞에서 걷고 있는 꾀죄죄한 아이가 실에 묶어 질질 끌고 가는 것이라는 것을 금세 알아차렸다. 

아이에게 속은 것이 우울한 게 아니다. 그런 천변지이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자신의 자포자기가 쓸쓸했던 것이다.  

 

이 대목에 나 역시 인간의 쓸쓸한 무기력함을 느껴 허겁지겁 <인간 실격>을 사서 읽었던 기억이 있다.   


두 번째로 다자이 오사무의 이름을 들었던 건 영화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에서다. 마츠코가 동거했던 작가 지망생에게다. 천재 작가였던 그는 다자이 오사무의 환생이라는 평을 들었고 결국 그는 요조처럼 혹은 다자이 오사무처럼 자살한다.   

비록 <생활의 참견>에 나온 구절은 <인간 실격>이 아니라 다자이 오사무의 다른 작품 <만년>에서 나온다. 기차에 치어 자살한 마츠코의 동거남과 달리 요조와 다자이 오사무는 물에서 죽는 걸 선택했다. 둘 다 다자이 오사무에 관련된 내용은 맞지만 부품 하나가 빠진 것처럼 어딘가가 잘 맞지 않는다. 이런 에피소드는 다자이 오사무와 <인간 실격>의 주인공 요조와 닮은 구석이 있다는 느낌이 든다. 완벽하지 않고 어딘가 부자연스럽고 불편한 느낌 말이다. 그래서 좋다. 


‘참으로 부끄러운 삶을 살았습니다.’으로 시작하는 <인간실격>의 주인공 요조는 참 신비로운 인물이다. 작가의 자전적 삶을 그려냈다는 평을 받았을 만큼 요조만큼이나 다자이 오사무도 참 대단한(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사람이다. 어렸을 적 아버지를 무서워했던 요조 


아버지는 늘 바쁜 사람으로 집에 계시는 일이 거의 없었다. 집에 있어도 아이들과 함께 있지는 않았다. 나는 이 아버지를 무서워하고 있었다.   


우리 집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아버지였다. 그래서 아버지 앞에서는 항상 예의 바르게 하고 있었다.

 

거기서 오는 두려움, 고립과 소외감을 가지고 성장하는 요조. 그리고 생을 마감하는 요조와 작가 다자이 오사무.   


나는 이 책을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 읽어보라고 권한다. 분량이 많지 않아 읽기 편하고 일본 특유의 우울함과 음울한 내면을 잘 그려낸 소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감정을 이해하지 못해 스스로를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요조의 삶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일본의 불안하고 우울한 시대상을 넘어서 현대인의 우울함과 겉돌 수밖에 없는 현실에도 잘 대응한다. 


이 소설을 읽을 때면 최승호 시인의 <북어>가 생각난다.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귀가 먹먹하도록 부르짖고 있었던, 케케묵은 먼지 속에서 꼬챙이게 꿰어져 있던 대가리들의 일침처럼 나는 인간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ps-책 표지에 실린 에곤 쉴레의 그림이 너무도 잘 어울려 민음사의 책을 구입했다. 


ps- 최승호 시인의 북어 전문 

북어- 최승호

 

밤의 식료품 가게
케케묵은 먼지 속에
죽어서 하루 더 손때 묻고
터무니없이 하루 더 기다리는
북어들,
북어들의 일 개 분대가
나란히 꼬챙이에 꿰어져 있었다.
나는 죽음이 꿰뚫은 대가리를 말한 셈이다.
한 쾌의 혀가
자갈처럼 죄다 딱딱했다.
나는 말의 변비증을 앓는 사람들과
무덤 속의 벙어리를 말한 셈이다.
말라붙고 짜부라진 눈,
북어들의 빳빳한 지느러미.
막대기 같은 생각
빛나지 않는 막대기 같은 사람들이
가슴에 싱싱한 지느러미를 달고
헤엄쳐 갈 데 없는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느닷없이
북어들이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
거봐,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귀가 먹먹하도록 부르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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