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irk Nov 05. 2017

입소문이 사실이군요

릴리 프랭키- 도쿄 타워

사람은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면 우월감에 사로잡힌다. 이를 자신감으로, 개성으로 삼고 거친 세상을 살아가는 원동력으로 삼는다. 그러나 정반대의 경우도 있다. 남들도 나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으면 머쓱했던 감정이 사라지고 묘한 안도감에 안정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경우가 릴리 프랭키의 <도쿄 타워>를 읽었을 때다.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이기도 한 이 소설의 클라이맥스 부분을 지하철에서 읽고 있었다. 갑자기 훌쩍훌쩍 눈물이 나기 시작했고 남들이 볼세라 눈물을 닦았지만, 눈물이 멈추지 않아 결국 책을 덮고 감정을 추슬렀다. 주책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도쿄 타워>는 이미 일본에서 “전차나 버스 안에서 읽는 것은 위험하다. 눈물 콧물로 얼굴이 엉망이 될 테니.”라는 유명한 입소문을 남겼다고 한다.   


<도쿄 타워>는 마사야라는 남자아이의 성장 소설이다. 후쿠오카 고쿠라라는 곳에서 태어난 마사야는 다정한 엄니와 함께 산다. 집안일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마사야의 아버지는 함께 살지도, 그렇다고 엄니와 이혼을 하지도 않지만 마사야에겐 딱히 나쁜 존재로 인식되진 않는다.   


없는 살림에 어렵게 살아가는 마사야는 그의 삶을 처절하게 저주하거나 불평하지 않는다. 그의 성격 탓도 있겠지만 거기엔 너무도 헌신적이고 착한 엄니의 존재 때문이리라.   


미술 대학에 진학해 어렵사리 졸업하고 도쿄에 자리를 잡아 엄니와 함께 살아가던 마사야. 그러나 곧 엄니는 암에 걸려 세상을 떠나고 엄니를 그리워하며 소설을 끝이 난다.   


 <도쿄타워>는 어려운 단어와 유려한 문장으로 관객을 울리는 소설이 아니다. 담담하고 투박한 단어와 문장이라 더 깔끔하고 투명하다. 그래서 공감이 쉽다.   


대학생이 돼 혼자서 살게 된 마사야는 넘치는 자유에 대해 이렇게 표현한다. 

도쿄에는 길거리를 돌아다니면 발에 밝힐 만큼 자유가 굴러다닌다. 

고향이 귀찮아져서, 부모의 감시의 눈이 싫어서, 그 멋진 자유라는 것을 원하며 허위허위 찾아오는 것이지만, 너무도 쉽사리 눈에 들어오는 자유에 김이 빠져서 차츰 그것을 갖고 놀아대게 된다. 


막연한 자유처럼 부자유한 것은 없다. 


취직, 결혼, 법률, 도덕. 귀찮고 번거로운 약속들. 금을 그어 갈라놓은 룰. 자유는 그런 범속한 곳에서 찾아냈을 때 비로소 가치가 있다. 



대학 진학률이 90%가 넘어가는 한국 사회에서 대부분 20대는 대학생활에서 엄청난 자유를 맛본다. 취업을 포기한 니트족 (NEET·Neither in Employment nor in Education or Training) 역시 마찬가지다. 청년 5명 중 1명은 니트족이라고 하는데 어쨌든 그들에게도 엄청난 자유가 주어진다. 그러니까 대부분의 20~30대는 막연한 자유를 몇 년은 만끽하는 세대다. 

마사야가 말한 막연한 자유에 대한 설명이 이해가 된다는 사실이 조금은 서글프지만 그로 인해 자유의 가치가 언제 발휘되는지 알게 된 것도 소득이라면 소득이다. 물론 그 막연한 자유가 언제나 그립지만 말이다.   

엄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 마사야는 이렇게 적었다.   


희망사항이던 ‘언젠가’는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다가오지 않지만, 몹시도 두려워했던 ‘언젠가’는 돌연히 찾아왔다. 


나는 몇 겹으로 교차되는 횡단보도에서 흘러가듯이 오고 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그저 단순한 거리 풍경에 불과했던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몹시도 크게 보였다. 

모두들, 참 대단하다, 참 애들 쓰고 있구나. 인간이 어머니로부터 태어나는 한, 이 슬픔을 면할 수는 없다. 인간의 목숨에 끝이 있는 한, 이 공포를 마주쳐야 하는 것이다.   



문장 자체로도 훌륭하지만, 특히 이 문장이 더 와 닿았던 이유는 우리 엄니도 마사야의 엄니처럼 헌신적이고 훌륭한 어머니라는 사실과 막내 작은 아빠도 마사야의 엄니처럼 암으로 생을 마감하셨기 때문이다. 그 두 가지 이유가 얽히고설켜 눈물샘을 더 자극했을지도 모른다.


 막내 작은 아빠는 상투적이지만 법 없이도 살 분이셨다. 울산의 중견 기업의 공장장으로 경제적으로도 풍족하셨고 슬하에 아들 하나 딸 하나를 훌륭히 키워내셨다.   


자주 뵙진 못했지만 만날 때마다 5만 원이고 10만 원이고 꺼내서 내게 주시곤 했다. 으레 겸양을 떨면서 괜찮다고 사양을 하면 웃으면서 지폐를 접어 내 주머니 깊숙이 넣으시곤 하셨다.   


울산에 계시던 작은 아빠가 서울에 자주 찾아오셨다. 그래서 서울에 있는 우리 집에도 자주 찾아오셨는데 그때마다 계속 용돈을 주셨다. 

“작은 아빠. 이렇게 계속 주시면 언제 다 갚아요?”라고 웃으면서 용돈을 받으면 작은 아빠도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갚어야.”라고 말씀하셨는데 내게 그 ‘언젠가’는 찾아오지 않았다.   


암이라고 했다. 작은 아빠가 서울에 자주 오신 것도 암 치료를 받기 위해서였고 다른 항암치료를 받는 사람처럼 머리가 빠지진 않았지만, 상당히 수척해지시고 피로해하셨다. 작년 연말에 우리 집에 오셔서 함께 식사하셨는데 해가 넘어가고 얼마 안 있어 금방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화장하기 전 마지막으로 봤던 작은 아빠는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닮은 모습으로 누워계셨다. 작은 엄마나 자식들의 슬픔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아빠도 엄마도 누나도 나도 한동안 멍하니 있는 시간이 많아졌었다.   


이런 경험들 때문에 <도쿄 타워> 마지막 부분에선 책장 넘기기가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하루에 100페이지씩 읽어대던 책을 마지막 30페이지 정도는 이틀에 나눠 읽을 정도로 힘들었지만 엄니가 있는 사람들은 꼭 읽어보시길.     



릴리 프랭키는 <책방 대상 2006> 수상 소감을 다음과 같이 했다. 

여기저기서 상을 받고 책이 많이 팔린 것보다 더 기쁜 일은, 이 책을 읽고 한참이나 목소리도 듣지 못했던 부모에게 전화를 걸게 되었다든가 뭔가 쑥스럽지만 오랜만에 함께 식사를 하자고 불러냈다든가 하는 독자들의 반응입니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다 읽고 책을 덮자마자 벌써 다른 영역으로 가버리는 것이 아니라 단 1분 1초라도 책을 읽은 이의 생활이나 감각에 지속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 제게는 가장 큰 기쁨입니다.  


   

태어나면 죽는 법이지만 너무 허무하게 가버린 작은 아빠를 추억할 수 있었고. 작은 아빠와 내가 함께 만들었던 추억을 상기할 수 있었고. 희망사항이던 ‘언젠가’를 작은 아빠에게 드리지 못한 못난 자신을 책망할 수 있어서 나 역시 울고 웃을 수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실격인가 합격인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