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소년이 온다
누군가는 의식 있는 척하지 말라고 비난할 수도, 혼자서 고귀한 척 주접떤다고 힐난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항상 광주 민주화 항쟁에서 목숨을 잃고 청춘을 바친 사람들에게 부채 의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들의 희생으로, 그들의 죽음으로 우리는 그나마 최소한의 자존감을 지킬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다. 여기에는 타협도, 논란의 여지도 없다.
예일대 철학과 교수인 셸리 케이건은 '인간은 뼈와 살과 피가 전부인 기계와도 같은 물리적 존재다. 그래서 죽음이 곧 완전한 끝'이라고 강조해 말했다. 그러나 죽음 이후에 남겨진 사람들을 생각하면 그의 생각에 선뜻 동의하기 힘들다.
국가권력에 의해 희생된 또 다른 희생자인 故 백남기 농민은 광주 민주화 운동 유공자이기도 하다.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 5.18 유공자 신청을 하라고 주변에서 권했으나 "죽은 사람들도 있는데 살아남은 내가 무슨 공을 따지겠는가"라며 유공자 신청을 거부했다.
민주화를 이룩하기 위해 흘린 피는 살아남은 자의 삶과 가치관을 변화시켰다. 누군가는 또 다른 가치관을 위해 투쟁했고, 누군가는 정계에 입문했으며, 누군가는 글로 그들에게 진 빚을 갚았다.
모두 여섯 장으로 구성된 한강의 옴니버스 소설인 <소년이 온다>는 1980년, 5월에 광주에 있었던 여섯 사람의 시선에서 사건을 서술한다. 동호, 정대, 은숙, 진수, 선주, 그리고 희생자의 어머니.
당시 15살에 불과한 동호나 정대는 민주주의, 국민주권 등의 역사적 사명을 가지고 있던 것은 아니다. 그저 도와달라는 사람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아서, 피 흘리며 쓰러지는 사람들을 외면할 수 없어서 그들을 도왔고 결국 역사라는 태풍에 휘말린 것이다. 불쌍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주저함 없이 돕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미안함과 고통스러움이 몰아친다. 이 고통을 피할 수도, 외면할 수도 없다. 그들의 참상을 기억하고 고통받는 것이 살아남은 자들의 역할이다.
살아남은 이들의 삶도 순탄치는 않다. 23살의 교대 복학생 김진수 5월 18일 이후의 삶에서 우리는 그의 순수함을 확인할 수 있다.
김진수와 나는 여전히 식판 하나를 받아 한 줌의 식사를 나눠 먹었습니다. 몇 시간 전에 조사실에서 겪은 것들을 뒤로하고, 밥알 하나, 김치 한쪽을 두고 짐승처럼 싸우지 않기 위해 인내하며 묵묵히 숟가락질을 했습니다. 실제로 어떤 사람들은 식판을 내려놓고 소리쳤습니다. 참을 만큼 참았어. 그렇게 네가 다 처먹으면 난 어쩌란 말이야. 으르렁거리는 그들 사이로 몸을 밀어 넣으며 한 남자애가 더듬더듬 말했습니다. 그, 그러지 마요. 좀처럼 입을 떼지 않는, 늘 주눅 든 듯 조용한 아이였기에 나는 놀랐습니다.
우, 우리는....... 주, 죽을 가, 각오를 했었잖아요.
김진수의 공허한 눈이 내 눈과 마주친 것은 그때였습니다.
순간 깨달았습니다. 그들이 원한 게 무엇이었는지. 너희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애국가를 부른 게 얼마나 웃기는 일이었는지, 우리가 깨닫게 해주겠다. 냄새를 풍기는 더러운 몸, 상처가 문드러지는 몸, 굶주린 짐승 같은 몸뚱어리들이 너희들이란 걸, 우리가 증명해주겠다.
후에 김진수는 자살을 택한다.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약 1년 전, 1980년 5월 26일 광주에서 5차 궐기대회가 끝난 뒤 마지막 항쟁에 참가했다가 총상을 입은 한 여대생의 '오월 일기'가 공개됐다. 그녀는 "오월 이후 평범하게 사는 것에 대한 미안함이 있었다"라고 밝히면서, '부끄러움'때문에 이 일기를 공개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녀에게 그리고 김진수에게 죽음보다 더 두려운 것은 부끄러움이었을 것이다.
마지막 장에서 동호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한다.
나무 그늘이 햇빛을 가리는 것을 너는 싫어했제. 조그만 것이 힘도 시고 고집도 시어서, 힘껏 내 손목을 밝은 쪽으로 끌었제. 숱이 적고 가늘디가는 머리카락 속 까장 땀이 나서 반짝반짝함스로. 아픈 것맨이로 쌕쌕 숨을 몰아쉬스로. 엄마, 저쪽으로 가아, 기왕이면 햇빛 있는 데로. 못 이기는 척 나는 한없이 네 손에 끌려 걸어갔제. 엄마아, 저기 밝은 데는 꽃도 많이 폈네. 왜 캄캄한 데로 가아 저쪽으로 가, 꽃 핀 쪽으로.
동호의 공감, 도덕적인 행동이 민주주의 같은 대의만큼이나 밝고 대단한 일이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는 듯하다. 작은 친절, 타인에 대한 공감이 사라진 지금 밝은 곳으로 가려고 하는 15살 소년의 움직임은 그렇게 살지 않았던 우리에게 심한 부끄러움을 안긴다.
착잡한 심정으로 모든 장을 다 읽고 난 후 작가의 말에서 소설에서 나온 인물이 모두 실존인물이고 모든 사건이 실제로 벌어진 일이라는 걸 안 순간 겨우 붙잡고 있던 이성의 끈은 끊어지고 엄청난 감정의 파도가 몰려온다.
책에 나오는 모든 사건은 역사에 기록된 사건이자 작가가 취재를 통해 조사한 내용이다. 그래서 작가는 자신이 쓴 책인 <소년이 온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소년이 온다>는 제 소설이라는 느낌이 안 들어요. 소년, 그러니까 그분들이 써주고 전 제 삶의 시간과 감각을 빌려준 것이 아닐까 해요.
어떤 마음가짐을 갖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은 크게 바뀐다. 한 소년은 불쌍한 사람을 돕기 위해 광주 시청으로 향했고, 정의를 바르 세우고 싶어 검사가 되고 싶다던 한 소년은 제2의 김기춘이 된다. 물론 나랏님들은 개돼지를 보면서 승리감에 취해 깔깔대며 웃겠지만 기억하자. 죽음보다 더 힘든 것은 부끄러움이란 사실을.
<소년이 온다>에선 이런 구절이 나온다.
패배할 것을 알면서 왜 남았느냐는 질문에, 살아남은 증언자들은 모두 비슷하게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습니다. ……
스스로가 용감하지 않지도, 강하지도 않다는 것을 당신은 알고 있다. ... 하지만 동시에 당신은 안다. 그해 봄과 같은 순간이 다시 닥쳐온다면 비슷한 선택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초등학교 때 피구 시합에서, 날쌔게 피하기만 하다 결국 혼자 남으면 맞서서 공을 받아 안아야 하는 순간이 왔던 것처럼.
1979년 가을 부마항쟁을 진압할 때 청와대 경호실장 차지철은 박정희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캄보디아에서는 이백만 명도 더 죽였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런 대통령이 임자라고 부르며 좋아했던 전두환은 차지철의 말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광주를 망치고 민주주의를 망친 장본인과 사람들, 그들에게 고통받은 사람을 잊어선 안 된다.
한강의 표현대로 우리는 그것을 기억하려 애쓰기보다는 "그들을 지켜봤던 우리의 고통"을 없애는데 집중한다. 잊으라고 강요하는 목소리가 스스로의 내면에서 나오는지, 부끄러운 사회에서 강요하는 것인지 조용히 귀 기울여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