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모토 바나나- 아르헨티나 할머니
요시모토 바나나 (본명은 요시모토 마호코)는 에쿠니 가오리, 야마다 에미이와 함께 일본의 3대 여류작가로 꼽힌다. (우리나라만큼 일본도 세계 3대, 4대 이런 거 참 좋아한다. 일본의 영향을 한국이 받았다는 설도 있다.)
최근엔 그 인기가 줄었지만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바나나 열풍'으로 한국에서도 인기를 꽤나 끌었던 작가다.
그녀의 작품은 짧고 읽기 쉬운 문장으로 구성돼 있어 출퇴근길에 하루면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중에서 특히 <아르헨티나 할머니>는 문장을 그대로 옮겨도 A4용지 3장을 못 넘길 듯한 분량이다.
<주온>에서 나올법한 아이가 표지 그림으로 있는 <아르헨티나 할머니>는 비석을 만드는 주인공인 미쓰코의 아버지가 사별 후 아르헨티나 사람으로 추정되는 마을의 할머니와 사랑을 나누고, 주인공이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는 이야기다.
가벼운 동화책을 읽는 느낌으로 두껍고 몇 번을 읽어도 이해하기 힘든 문장을 읽는데 지친 현대인의 피로를 해소해준다. 그 가벼움 때문에 순수문학이 아니라는 비판도 받지만 그만큼 독자들의 환호를 받는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은 서브컬처 문학으로 세계적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궁금했던 것은 작중 인물을 알래스카 할머니도 아니고 콜롬비아 할머니도 아닌 아르헨티나 할머니로 정했을까 하는 것이었다. 추측이지만 작가는 일본에서 가장 먼 곳에 있는 곳의 인물을 가공하고 싶어서지 않았을까.
지구 상에서 완벽하게 반대에 위치하고 있는 곳을 대척점이라고 한다. 좀 더 전문적으로 설명하자면 지구 상의 한 지점과 지구의 중심을 연결하는 직선의 연장이 지구의 그 반대 측 표면과 만나는 점을 뜻한다.
우리나라의 대척점은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 부근이다. 그러니까 일본의 대척점도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 부근일 것이다. 대척점에서 태어난 아르헨티나 할머니와 미쓰코는 태어난 거리만큼이나 성격도 판이하게 다르다. 나이도 다르고 말이다.
아르헨티나 할머니인 유리는 집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쾌활하고 사랑스러운 성격을 지니고 있다. 반면 미쓰코는 어렸을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와 교류도 많지 않아 퉁명스럽고 조용한 성격이다.
미쓰코는 유리와 새살림을 차린 아버지가 못마땅했으나 훗날 고백하기로 '엄마를 잃고 고아처럼 흩어졌다가 다시 한 가족을 이루지 않았는가. 그 모든 것으로 보아 오히려 구원을 얻은 것은 아빠와 내가 아닌가.'라며 마음을 열고 유리를 의심한 것을 부끄러워한다. 그렇게 미쓰코는 유리의 성격과 삶에 동화된다.
일본인 아버지와 아르헨티나 사람으로 추정되는 유리가 함께 만나 낳은 사내아이는 대척점에서 있던 두 인물이 함께 만든 사랑의 결실이다. 그 아이를 남기고 유리는 갑작스러운 심장발작으로 세상을 떠나지만 유리의 피를 받은 이 아이는 고집스럽지만 아주 상냥하다.
미쓰코는 자신의 배다른 동생을 보면서 이렇게 말한다.
'동생에게서 받은 것도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지금까지 이 세상에 없던 사람이 어떤 인연으로 이 세상에 찾아와 나를 좋아해 준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다.'
지구 반대편에 존재하는 사람이라는 신비감, 묘한 동경, 막연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아르헨티나 사람을 설정해 만든 꾸밈없는 이야기는 잔잔한 재미와 소소한 감동을 주기엔 충분하다. 그래서 아르헨티나 아니었을까.